마음을 열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장면 하나. 짧은 시간 동안에 소맥을 때려 부어서 꽤 취했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것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 "언니처럼 생각해 달라" 같은 말들과 안쓰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 그래서 소맥이 반쯤 담긴 잔을 앞에 두고 마시지도 못하고 조용히 주룩주룩 울었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술을 마구 퍼붓고 집에 와서 속을 전부 게워내야만 했다.
장면 둘. 겨울을 앞두고 있어 제법 음산하고 쌀쌀한 날이었다. 실무진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 그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려서, 발에 익지도 않은 구두를 신고 꽤 길게 이어지던 지하도를 걷다가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계장님, 저 사실은 지금 이직하려고 면접 보러 가요. 그냥 계장님 목소리 들으면 힘이 날 것 같아서 전화 드렸어요. ○○신문이 보는 눈이 있으면 우리 ○○이 같은 인재를 당연히 뽑아야지, 같은 대답을 들었던 것도 같다. 물론 그 면접은 준비가 충분치 않았던 탓에 보기 좋게 말아먹었고, 5000원짜리 우황청심원 한 병 값이 아깝게도 당연히 똑 떨어졌다. (불현듯 기억이 났다. 왜 지금까지 이걸 잊고 있었을까.)
내가 취재원들에게 하는 일은 단 하나, 예의를 지키는 것뿐이다. 사람을 취재거리로, 버튼을 누르면 뭔가를 곧장 뱉어내는 자판기로 여기지 않는다. 내가 기자이기 때문에 코멘트나 자료를 무조건 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히 홍보팀은 사내에서의 위치가 기자인 나와 별로 다를 것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면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법무팀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라고 하시죠?"
"네, 죄송해요, 기자님. 양해 좀 부탁드릴게요."
"아니에요. 그럴 줄 알고도 '답정너'처럼 여쭤 본 거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게 마음을 열어 주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출입처를 옮기고 가끔 안부 연락을 하면서 남의 돈 벌기 어렵다고 푸념을 하다가, 곧장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해도 "우리 사이에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라고 다독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기자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