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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이란 뭘까

자긍심을 가지기 힘든 업무 환경

by 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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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기업의 홍보팀 사람과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연락이 왔을 때 누군지 바로 기억이 잘 안 나서 주소록을 열심히 뒤지고는 휴대폰을 붙잡고 몇 분간 머리를 굴려야 했을 정도로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중요하다면 중요한 용건이 끝나고 점심 약속을 잡아 만났다. 그사이 그는 승진을 해서 직함을 바꿔 달았고 나는 허튼소리를 후배들이 각 잡고 들어 주는 연차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그도 나도 짬밥을 허투루 먹은 것이 아닌지라 시답잖은 대화들은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각자 밥벌이의 거지 같음에 대해서 토로하던 중, 그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가슴에 쿡 박혔다. "내가 친한 기자한테 그랬어요. 다른 건 몰라도 노무 관련해서는 기자들이 기업한테 뭐라고 하면 안 된다고." 사실 맞는 말인지라 그릇에 코를 박고 국수만 열심히 먹었다.


"기자는 이래야지"라는 말은 내가 이 애증의 직업을 가지게 된 뒤로 정말 싫어하게 된 말 중 하나다. 기자의 덕목으로 꼽히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볼 때는 이해가 되지 않거나 심지어 경악스럽기까지 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일과 시간과 휴식 시간을 막론하고 업무 방면으로 더듬이를 세워 놓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도 때도 없이 기사 모니터링을 하고, 휴대폰은 항상 몸 가까이 놓는다. 내가 '개목걸이'라고 부르는 스마트워치·스마트밴드를 차고 다니는 기자도 숱하다.


그러다 보니 업무와 사생활을 가르는 구분선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 년 반 이상 나를 보아 온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아예 생각을 하지 말고 지내라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 중간 지점에 벽을 세워 주는 스위치를 내리려 하면 어디서 기자가 '워라밸'을 챙기려 드냐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그 모든 것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알량한 사명감이다. 그 알량한 사명감은 큰 사건이 발생하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뒤 새벽같이 뛰쳐나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때까지 현장을 지키면서도 수당 따위를 생각하지 않도록 막아 주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그 사명감에 금이 가게 만드는 불합리한 지시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본전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죽은 사람을 조회수 지피는 땔감 정도로 취급하는 지시가 그렇다. 덕택에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서 전화를 끊자마자 바닥에 휴대폰을 던져 버릴 뻔했던 날이 있었다. 아직 약정 기간이 꽤 남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간신히 참았다. 물건에 분풀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눈에 뵈는 게 없어질 뻔했다. 어디서부터 내려왔는지 뻔한 지시를 받느라 퇴근도 못 하고 있다는 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이런 심경을 토로했을 때 돌아올 말이 뻔해서 입을 다물게 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필요한 일이다. 기타 등등.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고,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을 모르겠어.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나까지 푹 젖어 들어 정말 중요한 것을 잊지 않도록 어금니를 악물고 이렇게 적어 놓는다. 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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