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끼를 까겠다는데 이 망할 놈들
호르몬의 농간인지 뭔지, 30여 년을 살면서 '번식을 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이렇게 강했던 적이 없다. 단지 그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작년에 아버지를 여읜다는 엄청난 경험을 하면서 가족과 가정에 대한 가치관이 상당 부분 바뀌기도 했고, 남자친구는 내가 일이 너무 바빠서 청소를 할 시간이 없다고 펑펑 울던 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집을 다 뒤집어엎어서 집 정리를 해 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고, 지금 내가 기자치고는 '워라밸'이 상당히 잘 지켜지는 부서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좀 복합적이다.
번식에의 의지는 충만한데 상황은 썩 녹록지 않다.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로또 1등에 당첨된다든지 하는 이변이 없는 한 쭉 맞벌이를 해야 할 테고, 양가에서 육아를 도울 수 있을 만한 형편도 못 된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라던 우리 엄마는, 그럼에도 내 커리어를 망칠 수는 없으니 내가 꼭 아이를 낳겠다고 한다면 도울 거라고 하시지만, 뻔뻔하게 엄마에게 기대기에는 내 얼굴 가죽이 너무 얇다. 어떻게든 부부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다.
다만 나나 남편이 번갈아서 육아휴직을 1년씩 꽉 채워 쓰더라도, 복직 후 남편이 아기를 아침마다 사내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가 다시 데리고 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내가 갑자기 정치부에 날려 가서 하루 12시간을 넘게 국회에 처박혀 있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남편의 일이 갑자기 바빠지는 때가 올 수도 있다. 이외에도 내가 기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코로나 사태 초기처럼 역병이 돌아서 어린이집이 전부 문을 걸어 잠가야 한다거나, 기타 등등. 게다가 기혼자 선배들의 말로는 아이가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는 초등학교 입학 직후는 더 큰일이라 한다.
이 와중에 주 69시간이 어쩌고 하면서 사람을 일터에 꽁꽁 가둬 놓겠다는 흰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프다. 있는 연차도 간신히 소진하는 판에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쉰다는 발상이 가당키나 한가. 그 '노동개혁'이라는 것이 발표된 이후로 반발이 거세게 일자 고용노동부는 트위터를 통해서 "근로시간 제도개편이 출산 포기 등 저출산 문제와 연결된다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라고 발끈하고 나섰는데, 이게 저출생이 문제라면서 난리를 치던 정부의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막상 내가 새끼를 까겠다는데도 나라에서 별로 도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역시 답은 하나밖에 없다. 용산에 불을 질러야 한다.
* 정치 진영과 관련한 댓글은 사절함.
*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둘 다 싫어하고 안 찍었고 앞으로도 안 찍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