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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해지고 싶지 않은 여자들

거울과 분열된 자아

by 보현

얼레벌레 시네필의 나라 한국에서 지난달 말 기준으로 총 56만여 명에 이르는 관객을 동원한 문제작 〈서브스턴스〉가 드디어 OTT 플랫폼에 올라왔다. 오랜 호러 팬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몇몇 하위 장르는 그다지 즐기지 않을 정도로 입맛이 까다롭기도 하고, 소위 B급 영화 중에는 보고 있노라면 전두엽이 살살 녹아 귓구멍으로 줄줄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영화들이 이미 많기 때문에, 〈서브스턴스〉를 두고 '개 미친 영화'라느니 뭐라느니 하는 말들은 영 호들갑으로밖에 들리지 않아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순전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술이 좀 들어가 알딸딸한 상태에서 마침 큼지막한 썸네일이 눈에 띄기도 했고,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아마 몇 년은 안 볼 영화일 것 같아서 도전해 보았다. 그리고 며칠째 영화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영화를 비판적으로 읽는 방식에도 수긍할 만한 부분들이 있다. 예컨대 여성의 고통을 포르노처럼 전시하고 신체를 조각조각 잘라 관음할 수 있게끔 늘어놓는 등의 표현 방식은 결국 메시지를 증발시켜 물화된 여성 신체라는 이미지만을 남겨 놓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으며, 대체로 여성들이 루키즘과 성적 대상화에 의한 압박을 전 생애에 걸쳐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탈피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는데도 2024년에 와서야 이를 꺼내 드는 것은 무척 게으르다는 식의 비판들이다.


하지만 나는 2시간 20분 내내 그저 엘리자베스가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스카까지 수상할 정도로 재능 있는 배우가 단지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아름다운 외모가 조금 시들었다는 이유로 추저분한 남성 제작자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이, 출처와 성분도 알 수 없는 괴상한 약물을 맞아 젊고 아름다워진 뒤 거머쥔 것들이 고작 앞집 사는 남자의 추파, 남자들과의 하룻밤, 화려한 파티, 포르노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선정적인 피트니스 쇼의 진행자 자리 따위에 불과하다는 것이 슬펐다. 그 와중에 카메라가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의 모습을 진득하게 훑어 내려가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그들의 외모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면서도 "이런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인지부조화 비슷한 것을 느꼈다.


아름다운 외모를 무기로 남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를 욕망한다는 것이 비단 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물화하고, 타자화하며 살아남는 여성들만이 갇힌 굴레는 아니다. 얼굴로 먹고살지 않는 일반인이어도, 운이 좋게 유전자 배합이 좀 잘 돼서 외모로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삶을 살았더라도 마찬가지다. 엄밀하게는 '아름다워지고 싶다'까지도 아니고, '추해지고 싶지 않다' 쪽에 가깝다. 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 그리하여 종래에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기인한 욕망. 내 경우를 들자면, 일전에 외모를 가꾸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고 쓴 적이 있지만, 실은 다른 건 몰라도 체중이 느는 것, 군살이 붙는 것만큼은 끔찍하다.


의식적으로 그러려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마 나 역시도 의지와는 관계 없이 평생 분열된 채로 살겠지. 거울에서 고개를 돌리려 하면서도 거울을 곁눈질하다가 완벽하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고는 잠시 심란해지고, 그러고는 다시금 거울에서 눈을 떼려고 애쓰겠지. 어떤 마음일지 잘 아니까 엘리자베스를 안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그에게도 해 주고 싶었다.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아요. 타인은 그럴 수 없어도, 당신만큼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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