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가 안 보인다
'기렉시트'라는 말은 이제 사어가 되었다고, 누구도 그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시점에서 새삼 깨달았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별안간, 정말로 탈퇴해 버리며 수많은 물음표를 남긴 지도 5년이 넘었고, 유력 언론사의 에이스란 에이스는 전부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홍보실로 숨 가쁘게 빨려 들어가던 시기도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선언과 함께 종말을 맞았다. 돈이 언제까지나 흘러넘칠 것 같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대체로 채용을 줄이는 분위기이고, 외신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의 본격 도입과 함께 사무직 인력이 대거 감축되고 있다는 살벌한 뉴스가 들려온다.
에이스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채우려는 언론사 차원의 움직임이 아직 멎지는 않았다. 어벙하고 물정을 몰라 쉽게 쥐어짤 수 있는 젊은이들을 우선 채용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그나마 업계에서 방귀 좀 뀐다고 인정받는 매체들은 주기적으로 신입기자를 채용한다. 경력기자는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허리 초입 연차 기자들을 중심으로 채용한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므로, 누군가 내게 적을 옮기고 싶다면 지금이 최적기라는 말을 해 주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하루 세 번 우울증 약을 챙겨 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으며, 지금은 배우자가 된 당시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안 죽기 투쟁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신통치 않았을 것이다.
어영부영 한 회사에 몸담은 채로 강산이 바뀌었다. 공채 입사자 동기 중 아직도 이 회사에 몸담은 사람은 극소수다. 한 번은 어느 데스크가 면전에서 "이제 ○○기(입사 기수)는 나갈 사람은 다 나갔지"라고 무신경한 말을 뱉은 적이 있다. 우리 세대부터는 좋은 기회라 여겨지는 때가 오면 냉큼 붙잡아 올라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80~90년대 학번이 주류인 데스크들은 이것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특정 언론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그 회사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던 때는 이미 지나지 않았던가. 나는 표정 관리를 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패배감과 모멸감이 치고 올라와서 참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말을 들어 보면, 경력기자에게는 내가 미처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고충이 있지만, 나만이 능력이 없어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이곳에 볼품없이 주저앉아 있다는 피해의식마저 느껴졌다.
한때 몸담았던 부서에서, 쓰기 싫어 몸부림을 치며 눈물을 죽죽 쏟던 종류의 기사가 올라오는 것을 볼 때마다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나 자기 연민에만 빠져 있어서야 될 일도 안 된다. 우선 내가 구상하던 퇴로가 막혔다는 것을 차분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시간을 많이 썼다. 그리고 우울증 약을 털어 넣던 시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떠오르던 질문들을 다시 받아들였다. 기자질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 욕구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매체가 존재하긴 하는가.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다른 퇴로를 꾸준히 찾을 생각이다. 몇 개월간 머리를 굴렸는데도,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대로 가면 꿈과 이상으로 눈을 반짝이던 후배들을 쥐어짜며 그 눈빛을 밝히던 불씨를 내 손으로 조금씩 꺼뜨려야 하고, 한때 내가 품었던 불씨도 스스로 짓밟아 없애야 한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내가 이 조직에서 목격한 생존자들은 온통 그런 사람뿐이다. 괴물이 되는 것이 무섭다. 나는 사람으로 눈을 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