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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지 않는 주니어들

잘 생각했다 얘들아

by 보현

아주 놀랍고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입사한 주니어들 중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배우자와 니혼슈, 위스키 여러 종류를 고루 맛보기 시작했는데 어떤 술이 맛있었다고 추천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격세지감이 든다. 한국 사회의 음주 문화가 아주 더럽다지만, 기자 사회는 그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엉망이다. 기자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직업이므로,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한 수단으로 술자리를 이용한다는 이유에서 다들 술을 퍼붓는다. 이런 가르침은 때로는 점잖게, 대체로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해 내려왔다. 수습기자 시절 잠깐 배치됐던 부서에서, 한 기수 위의 선배와 점심을 먹던 중 "취재원들과 가까워지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선배는 잠깐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마음의 벽을 쉽게 허물어뜨리려면 그 방법이 가장 쉽다고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들 고기능 알코올 의존증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다. 술자리가 2차, 3차, 4차까지 이어지며 모두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하는 것을 대체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을 넘어, 기자로서의 미덕이라고 여겼다. 웃기는 소리다. 술을 들이붓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밑바닥을 공유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면, 취재원이 아닌 기자들끼리도 따로 모여 술을 마실 이유가 없다.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밤 10시쯤 머리를 말리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혀가 꼬인 채로 "우리 술 마시고 있는데 나오너라" 하고 전화하는 사람도 많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정말로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는 분위기'라는 게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매출부서로 돌아간 친구가 말하길, 요즘은 예전처럼 저녁 술자리 약속으로 캘린더를 꽉 채우고 위장이 뒤집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세대별 주류 소비량의 변화라든지, 뭐 이런 건 경제뉴스에서 많이 다룬 것들이니까 그냥 넘어가고,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술 때문에 저지른 실수'를 '관대하게 용서'하는 일도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술 때문에 사내에서는 물론 취재원들과 사이에서도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킨 주폭을 "우리가 남이가!" 같은 흰소리를 하며 감싸 주던 아저씨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본인의 의지나 나름의 사정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주니어들은 고기능 알중 아저씨들이 꼴에 선배랍시고 "네가 그러고도 기자냐"라든지 "기자란 모름지기……" 운운하기 시작하면 조용히 한 귀로 흘렸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오래 일하려면 그게 정신건강에 좋다. 천년만년 기자로 살 것도 아니고, 취재원과 하루가 멀다 하고 사이좋게 인사불성이 된다고 해서 세상을 놀라게 할 특종을 계속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하는 시간 동안 직업인으로서의 윤리 의식만 갖추고 있으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술은 죄가 없다. 새들도 발효된 열매를 일부러 찾아 먹고 땅바닥에 배를 까고 누워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다채로운 재료와 효모로 빚어서 코끝과 혀끝을 즐겁게 해 주는 맛있는 술은 얼마든지 있다. 1병에 5000원씩 하는 맥주와 소주를 2대 1 비율로 섞어서 5분에 한 잔씩 비우다가 전날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다음날 아침 홀라당 까먹고 일어나서 불안해하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다. 이제 나는 소츄에 더운물을 타고, 얼음에 위스키를 부어서 조금 홀짝인 뒤 딱 좋은 기분으로 보리차를 마시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나는 폭음을 그만두고 나서야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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