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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18. 2021

사람이 웬수다

술 [명사]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 적당히 마시면 물질대사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수습 때 그린 그림. 꼭 저녁 자리에서 반주를 권하는 데스크가 있고, 눈치가 보이니 사양할 수도 없다. 잠이 모자란 상태에서 소주가 들어가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기자들은 술을 정말로 많이 마신다. 일 때문에 마시는 게 맞기는 한데, 어쨌든 기자가 아닌 사람들보다는 빈번하게 폭음을 한다. 저녁에도 마시지만 낮술도 자주 한다. "그렇게 잘 마시는 편이 아니"라고 말하는 기자의 말은 반만 믿어야 한다. 나도 누가 주량을 물으면 잘 못 마신다고 하는 편이지만, 동료 기자들에게 기준을 맞추다 보니 스스로 그렇게 느낄 뿐이다. 내 주량은 입사 전과 비교해 두 배 정도 늘었다. 치사량은, 글쎄, 한 네 배 정도 늘지 않았을까.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겠다. 이 직업이 이렇게 애증의 존재가 될 줄 몰랐기 때문에 인생에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 중 하나인데,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기자가 되는 것을 꿈으로 정했다. 인턴 활동을 하다가 기자를 만나기라도 하면 눈이 번쩍번쩍해져서 그 하늘 같으신 선배들이 하는 말 하나를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곤 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어느 날은 호프집에서 강냉이를 주워 먹으며 용감하게 질문했다. "기자가 되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하나요?"


    그 선배는 본인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하고, 주량과 업무 능력은 별 상관이 없다는 아주 모범적인 답변을 돌려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역시 주변의 말술 기자들만 보다 보니 스스로를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문이 든다. 술이 세다고 해서 취재 능력도 그에 비례해 덩달아 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술과 술자리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면 불편한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꽐라가 돼서 아무말대잔치를 벌이는 와중에 외롭게 제정신을 유지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고 가정해 보자.


    코로나 사태 이전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취재원과의 술자리는 잦고, 그 술자리 대부분이 밤늦게까지 이어지고, 그러면 다음날 아침이 쾌적할 리 없다. 이게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 정도는 대충 용인이 된다. 취재원을 만나서 친교를 쌓는 것도 일이니까 일을 열심히 했겠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술을 마시고 부린 추태를 실수 정도로 보는 경향도 매우 크다. 술 문화에 한해서만큼은 기자 사회의 그것이 우리 사회의 평균 수준을 대폭 낮추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술을 마시기만 하면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며 욕설을 하고, 재떨이를 집어던지고, 급기야 남을 때리기까지 하는 사람도 다. 만일 공직사회나 일반 기업에서 이런 사람이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하면 기삿거리가 되겠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기자 사회는 자기 눈의 들보를 볼 줄 몰라서 이런 사람도 웬만하면 별 탈 없이 잘 산다. 불의한 것을 참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이 대거 입사한 근래 들어서야, 주폭 선배를 겨냥한 몇 뼘짜리 항의글을 쓰며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추세다. 회사에 비빌 언덕을 아직 만들지 못한 저연차 후배가 주폭과 같은 부서에 배치되면, 혹시나 주폭이 막내를 괴롭히지는 않을지 예의 주시하며 은밀히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MZ세대 파이팅! 우리 존재 파이팅!)


    커피와 식사보다는 술이 마음의 거리를 단시간에 좁히는 데 유효하다는 데는 대충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디나이얼 알코올 중독자들이 설치고 다니는 꼴을 집단 차원에서 묵인하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나 혼자 사는 우리 집 냉장고에는 맥주 한 캔 굴러다니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좋아하고 즐기지만, 술 때문에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봤다. 술이 아니라 사람이 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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