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레자식 같으니
뻗치기 [명사]
기자가 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취재 형태.
수 명, 혹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 하나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한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냥 기꺼울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시선과 카메라가 싫어서 활자 뒤로 숨어 버린 '조용한 관종'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간의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분명 전자였고, 수도 없이 기자들과 상식인의 복장을 예쁘게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한 가지 면모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그는 기자 수십 명을 몇 시간 동안 반짝 추위에 떨도록 내버려 두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쪽문으로 도망치듯 납시었다. 펜과 방송과 영상과 사진을 비롯한 기자 수십 명이 단체로 눈앞에서 물을 먹었다.
새벽 5시가 넘을 때까지 졸린 눈을 치떠 가며 기다리던 피의자/참고인이, 수사기관 조사를 마친 후 기자들이 있던 곳과 정확히 반대 방향의 문으로 유유히 걸어 나간 적도 있다. 나를 포함해 졸음과 사투를 벌이던 기자 두엇이 시원하게 물을 먹었다. 안면이 있던 수사관이 피곤한 얼굴을 비비며 나오다가 "보현 기자님, 아직도 거기 계셨어요? ○○○은 10분 전쯤 나갔는데?"라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해가 뜰 때까지 물을 먹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고 덜 억울했지만, 조사실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눈에 다크서클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기자들은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며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섬주섬 백팩에 노트북과 충전기를 챙기던 타사 기자의 등이 유난히 축 처져 보이는 날이었다.
기자 업무는 반쯤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자료 요청을 보낸 뒤 기다리고, 문의를 한 뒤 기다리고, 발표가 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중 물리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뻗치기'다. 극히 제한된 정보만을 지닌 채 특정 현장에서 기약 없이 무작정 뻗대며 (주로 사람을) 기다리고 보는 것. 중요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정치인이 될 수도 있고, 재판에 출석하는 경제인이 될 수도 있고,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유명인이 될 수도 있고, 압수수색을 하러 오는 수사관들이 될 수도 있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심사)을 위해 법정에 출석한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뻗치기를 하리꼬미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리꼬미가 수습 교육 과정 중 하나라는 아주 작은 의미로 축소되고 뻗치기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 말이란 조금씩 변하긴 하나 보다.
뻗치기가 필요한 현장은 대체로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논란에 휩싸인 정치인이나 기업인, 피의자나 피고인이 안락의자를 두고 기자들을 반길 리 만무해서 그렇다. 인체의 체온 조절 능력을 극한까지 시험해 봐야 할 때도 있고, 골반과 척추와 발바닥이 얼만큼의 하중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버틸 수 있는지를 시험해 봐야 할 때도 있다. 뻗치기에 이골이 난 동료 기자 A는 어쩌다 보니 입사 이후 배치된 부서에서 늘 뻗치기를 숨 쉬듯이 했고, 구두 한 켤레를 2년 이상 신지 못했다. 하루는 A가 진력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정치부에 갔을 때는 다들 정장 입고 있어서 되게 고상한 곳인 줄 알았어. 알고 보니 정장 입고 바닥에서 뻗치기, 구두 하루 종일 신고 뻗치기……. 집에 오면 발은 다 퉁퉁 부어 있고."
이렇게 고생 고생을 해 가며 기껏 몇 시간을 기다리던 사람이 괴괴한 침묵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경우는 숱하다. 기자들이 뻗치기를 할 것을 예상하고 새벽같이 출두해 밤도둑처럼 몰래 들어가는 치들도 있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양반임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기자가 많은 사람들이 깊이 관심을 가진 사안에 대한 대응을 시민의 대표로서 물었을 때 "후레자식 같으니"와 같은 준엄하고 추상같은 질책을 듣는 것보다야,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