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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18. 2021

경찰

나의 첫 번째 선생님

경찰 [명사]
1. 경계하여 살핌.
2. 국가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조직.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고 범죄의 예방과 수사, 피의자의 체포, 공안의 유지 따위를 담당한다.
3. '경찰 공무원'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사회부를 떠나 온 지 오래된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갓 입사했을 때와 사회부에 있었을 때는 각기 다른 언론사의 신입 공채 시기가 비슷했다. 어느 철만 되면 경찰서 민원인 대기실이나 로비는 백팩을 메고 주변을 어리바리하게 둘러보는 수습기자들로 늘 바글거렸다.


    수습기자들이 주로 만나는 경찰은 1진과 마찬가지로 주로 팀장(경위급)이나 과장(경정급)들이다. 그들은 입직 후 수많은 조무래기 기자들을 보아 왔고, 그들이 정식 기자가 되고 나면 얼마나 바람처럼 떠나갈지를 아주 잘 안다. 그래서 한 무리의 젊은 애들이 '나는 이런 곳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얼굴로 쩔쩔매는 수상한 풍경을 보더라도 그저 시큰둥하기만 하다. 게다가 일도 바빠 죽겠는데 언론사 교육 과정의 일부를 경찰에게 억지로 떠맡기다니 얼마나 귀찮겠는가.


    반면 수습기자들은 살면서 경찰서라는 장소에 별로 와 볼 일이 없다. 그들에게 경찰서는 지은 죄도 없는 사람을 무척 주눅 들게 만드는 장소다. 하지만 보고 시간에 1진에게서 떨어지는 불호령은, 어쩔 때는 경찰보다도 더 무섭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은 마치 1진에게 보고할 사건의 보고처럼 보인다. 전혀 아니지만. 아무튼 마음이 급한 수습기자들은 경찰을 어미 없는 오리 새끼들처럼 따라다니다 타박을 맞기 일쑤이다.


    세상모르는 수습기자들을 가엾이 여기는 경찰들도 드물지만 있다. 그런 이들이 있는 곳은 비슷한 기간 동안 하리꼬미를 도는 수습기자들에게 알음알음 '힐링 스팟'으로 통한다. 갖은 곳에서 면박을 당할 처지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사건은 못 주더라도 커피는 타 줄 수 있다"며 인스턴트커피를 타 주던 경찰도 있었고, 한밤중 비슷한 시간마다 찾아가는 나를 알아보고 야식을 나눠 주는 경찰도 있었다. 형사 용어를 틀리며 헛소리를 해 대도 혀를 차기보다는 참을성 있게 가르침을 준 경찰도 있었다. 어떤 의경은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마포경찰서 교통조사계 앞에 쪼그려 앉은 나를 보고 "추워 보인다"며 자기 장갑을 벗어서 주기도 했다.


    내가 경찰을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인간미가 있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현장을 밥 먹듯 드나들고 눈인사를 여러 번 교환하고 나면 말없이 신뢰와 우정이 쌓인다. 현장에 자주 나가는 사건팀 기자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취재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들과 어떻게든 스킨십을 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자연스럽게 그리 된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담백하게 다가가는 법도 경찰에게 배웠다. (몇 년 전 전국을 들썩이게 한 모종의 사건 이후로는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가 크게 문제가 되면서 취재 환경이 팍팍해졌다고는 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한다. 기자와 취재원 간의 관계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야 한다고 선배들이 가르칠 때 흔히 인용하는 말이다. 내가 날 서게 비판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의심보다 애정이 더 커졌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사건팀을 떠나겠다고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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