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는 기생수가 있다
휴대폰 [명사]
1. 손에 들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걸고 받을 수 있는 소형 무선 전화기. (표준국어대사전)
2. 기자의 세 번째 수족이자 두뇌.
얕은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떨어졌음을 알게 된 때는 이미 택시가 저 멀리 출발하고 난 다음이었다. 딩동, 블루투스 연결이 끊어지는 소리만이 허망하게 이어폰에서 울려 퍼졌다. 멀어져 가는 택시 꽁무니를 그저 바라만 보다가 일단 점심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취재원과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식사는커녕 대화에도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맞은편에 앉은 취재원에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당장 오후에 걸어야 할 전화, 받아야 할 전화가 있었고, 수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모아 둔 연락처도 그 손바닥만 한 기계 안에 다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다 못한 후배가 자기 휴대폰을 건네주며 등을 떠밀어 내보냈다. 다산콜센터와 카드사 등 온갖 군데에 전화를 돌리는 뻘짓 끝에 결국 5만 원 돈 정도를 기사님께 주고 휴대폰을 무사히 되찾았다.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노트북도 그렇지만, 휴대폰이 없어도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휴대폰을 가지고 정말 온갖 일을 한다. 보고도, 메모도, 녹음도, 사진 촬영도, 각종 자료 확인도, 아카이빙도, 이메일 체크도 모두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 휴대폰을 이용한 기사 작성과 교열, 송고 등도 가능하다.
유심칩이 탑재된 노트북이 있어도 휴대폰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특히 코로나19의 유행 이후 현장에 나갈 일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는 전화 취재의 비중이 크게 늘어서 늘 휴대폰을 달고 살아야만 한다. 때문에 노트북 무게로 이미 묵직한 기자들의 백팩에 보조배터리 한두 개쯤은 꼭 들어 있다. 잠시간 손발 하나쯤 잘려 나가는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다.
노트북은 쉬는 동안 몸에서 좀 떼어 놓을 수 있더라도, 휴대폰은 그럴 수가 없다. 상황이라는 것이 날짜를 가려 가며 일어나지는 않는 탓이다.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은 기업인들이 근래 몇 년 간 차례로 세상을 떠나던 날도 왠지는 모르겠지만 주말인 경우가 많았다. 이때 휴대폰이 꺼지거나 알림 소리를 듣지 못해 세상모르고 잠만 잔다면 아주 큰일이 나는 것이다. 동료 기자 B가 실제로 그런 일을 겪었다. B는 그날 오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죽을 고생을 해야 했다.
친구들은 나의 비정상적으로 빠른 메신저 답장 속도에 당황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양손과 휴대폰은 이미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기자들은 중요한 알림이나 전화, 메시지를 놓치는 게 무서운 나머지 스마트밴드나 스마트워치라는 '개목걸이'를 스스로 채우는 경우도 더러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휴대폰을 보지 않는 행위가 용인되는 단 한 가지 경우의 수는 시차가 수 시간 이상 나는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것뿐이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유심칩을 빼놓고 한시적 자유를 만끽할 수 있던 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