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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Oct 16. 2021

사쓰마와리

기자의 꽃이라는데

사쓰마와리(察廻·さつまわり) [명사]
기사를 얻기 위해 경찰에 출입하는 것. 신문이나 잡지 기자가 사용하는 단어. (일본국어대사전)


    사쓰마와리는 경찰의 '찰(察)'과 '돌 회(廻)'를 더한 단어로, 많은 기자 사회의 은어들이 그렇듯 일본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두 개의 은어가 갈라져 나왔다. 각사 사회부에서 일선 경찰서에 주로 출입하는 기자를 '사쓰'라고 한다. 기자가 취재원과 출입처, 그 외 각종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취재원과 친교를 쌓거나 정보를 얻는 취재 방식을 '마와리'라고 부른다.


    '사회부 기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미디어 등지를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남루한 기자상을 떠올렸다면, 아마도 그것은 '사쓰'일 것이다. 최근에는 사회부에 딸린 '사건팀'이나 '기동팀' 등으로 많이 순화해 나가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아직도 사쓰라는 말을 즐겨 쓴다. 구체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경찰기자라고 생각해"라고 하기는 하지만, 경찰서로 모여드는 각종 형사사건 말고도 정말 많은 것들이 취재 범위, 속칭 '나와바리'에 포함된다.


    종로, 혜화·도봉, 마포, 중부, 강남, 광진, 영등포, 관악. 서울에서는 이 8개의 '라인'에 출입기자가 한두 명씩 배치돼 일선 경찰서와 소방서, 검찰, 법원, 대학교, 시민단체 등을 모두 취재한다. 각종 기자회견과 집회·시위, 형사 절차로 이어지지 않는 분쟁과 각종 사회적 논란, 날씨, 유명인의 별세 소식 등도 물론 취재 범위에 포함된다. 라인 하나에 기자가 두 명이라면 최선임을 1진, 후임을 2진이라 부른다. 1, 2진과 인접한 라인의 기자들은 짝꿍이 되어 업무를 백업한다. 경찰청은 바이스(부팀장·Vice-captain)가, 서울지방경찰청(시경)에는 캡(팀장·Captain, 차장급)이 출입하며 서울 전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는다.


    (왜 사쓰가 검찰과 법원을 취재하냐는 궁금증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사쓰와 법조 기자들의 업무 영역이 조금 다르다. 법조팀 기자들은 법무부와 대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 서울가정법원,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취재를 담당한다. 사쓰는 서울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지검·지법을 담당한다.)


    사쓰는 '기자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고, 수많은 기자들 중 인지도 역시 단연 독보적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기자라는 직업에 기대하는 바와 사쓰의 근무 환경이 가장 잘 들어맞기 때문이리라. 사건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참된 기자. 뒤집어보면 무슨 일이 있든 만만한 사쓰가 가장 자주 차출된다는 뜻이다. 서울에 있던 기자가 갑작스럽게 총을 맞고 지역에서 벌어진 큰 사건사고를 취재하러 가는 일은 흔하다. 알고 지내는 방송기자가 어느 날 저녁 메인 뉴스에서 태풍이나 눈보라를 맞으며 힘겹게 스탠딩을 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한다.(태풍 오는 날 일선 기자들을 길바닥에 내보내 비바람을 죄다 맞으면서 스탠딩 하게 시키는 데스크들의 우산과 차를 다 빼앗고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가게 만드는 법이 있으면 좋겠다.) 심지어 해외에서 벌어진 사고를 취재하라고 출장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외부인에게는 흥미롭게만 보이는 직업적 특성 덕인지 EBS <극한직업>의 '사회부 기자' 편(2008),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의 '초심' 편(2013)에서 사쓰가 소개된 적도 있다. 사실 수많은 3D 업종 및 전문직 종사자들과 비교하면 기자가 그들과 같은 선상에 오르는 것이 민망하기는 하다. 사건팀 근무는 영속적이지도 않고, 근무 도중 기자실이나 카페로 피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추울 때는 따뜻한 곳에서, 더울 때는 시원한 곳에서 일하는 종류의 근무 환경과는 대체로 반대되기는 한다.


    여름은 사쓰가 타 죽는 계절이다. 민소매 셔츠를 입었다가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새빨갛게 타니까 거의 늘 얇고 긴 셔츠를 입는다. 반바지나 치마는 꿈도 못 꾼다. 치마를 입으면 맨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수 없고, 반바지를 입으면 뜨거운 돌바닥에 살갗이 그대로 닿기 때문이다. 반팔이 입고 싶은 날에는 외부 취재를 나가기 전 팔토시를 끼우고 위에 쿨링 스프레이를 마구 뿌렸다. 간혹 땡볕 아래서 근무하는 친한 경찰들에게 뿌려 주기도 했다.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라도 피부가 갓 구운 빵처럼 잘 익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휴가 날짜는 잡지도 못했는데 경찰들로부터 "보현 기자, 어디 좋은 곳 다녀왔어?"라는 말을 들을 때는 괜히 억울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으면 샌들 모양의 검고 흰 자국이 나 있고, 시계를 벗으면 시곗줄만큼의 흰 선이 손목을 두르고 있다. 열사병에 걸릴 수 있으니 손풍기는 필수다.


    반대로 겨울은 사쓰가 얼어 죽는 계절이다. 옷이라기보다는 필수 이동수단으로 기능하는 롱 패딩 양 호주머니에 일회용 손난로를 넣고 다녀야만 한다. 특히 손난로가 없으면 손가락이 곱아서 타자를 칠 수가 없다. 이것으로도 모자라서, 다이소에서 파는 싸구려 장갑을 사서 손가락 끄트머리를 잘라낸 뒤 타자를 칠 때만 쓴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휴대폰과 전자담배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배터리를 방전시키고 장렬히 전사하기도 한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등산용 접이식 방석을 가지고 다니는 편이 좋다. 흐물흐물 늘어진 엿가락이 되거나, 반대로 꽝꽝 얼어 터진 동태가 되지 않으려면 방석으로 길바닥의 열기와 냉기를 조금은 차단해야만 한다.


    SBS <피노키오>(2014)는 이런 꼬질꼬질한 사회부 기자(정확히는 수습기자이지만)의 모습을 조금은 더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호평을 받았던 모양이다. 정작 나는 어떤 한 장면 때문에 손발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고 소리를 지르면서 끈 뒤로 다시는 보지 않았다. 라이벌 방송국의 사건팀끼리 공교롭게도 같은 식당의 같은 방에서 회식을 하는데, 자신들이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갑자기 강변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자기 검열을 한다면 또 모를까, 우리는 타사 기자들과 스스로를 함부로 비교해 가며 '우리만이 참된 기자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차피 하는 일은 다 비슷하고, 다 같이 힘들게 사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보고 시간이나 마감 때쯤 머리를 쥐어뜯거나, 기자실 간식 바구니를 털어 오거나, 커피 빨대를 물어뜯으며 쌍욕을 짓씹고 있거나, 갑자기 담배를 챙겨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너희 회사도 또 육갑하고 있어?"라 등을 도닥여줄지언정 "네가 그래서야 '참 기자'가 될 수 있겠어?"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혹여 사건팀끼리 '쪼인' 회식을 한다면 캡들의 지휘 아래 이름 외우기 게임을 하며 술잔을 돌리는 1차 자리가 서너 시간씩 이어지고, 모두 꽐라가 되어서 식당을 네 발로 기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큰 사건이 터져 담당 라인의 기자가 중도에 뛰쳐나가야 하는 징크스도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 뭐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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