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Oct 24. 2021

왜 내 병명을 욕으로 쓰시나요

환자는 짜증이 난다

    이 글은 특정 정치인, 정당에 대한 선호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글이다. 뭐 공평하게 혐오스러워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왜냐면 진영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정신병자'를 욕으로들 쓰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온갖 종류의 '정신병자'를 욕설처럼 들먹이는 것이 환자 당사자들에게는 몹시 불쾌한 일임을 인지하는 것도 그중 하나인 듯하다.


    나는 조금 수줍음을 타고 낯을 가리기는 하지만 밝고 쾌활하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직장인이다. 동시에 10년 이상 우울증을 앓아 왔고, 마지막 재발 이후 반년 가까이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이기도 하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으로 잠깐 경조증 삽화를 앓았고, 그 반동으로 우울증과 조울증 치료에 두루 쓰이는 약을 먹는 중이기도 하니, 조울증의 당사자성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할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의식이 과거보다는 개선되어서 꽤 캐주얼한 병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냥 정신질환자로서의 현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채로 살겠다는 게 아니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쫓아 버리기 위해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 내 모습, 더불어 생활 습관 및 사고방식을 교정하려 노력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겠다는 뜻이다.


    그러고 나니 정치를 업으로 하거나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의 말잔치들이 유독 불쾌하게 느껴져서 견디기 어렵다. 정신병을 욕으로 쓰는 일이 꼭 최근에 두드러진 것은 아니지만, 정치권에서 상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정신질환을 갖다 붙이면 확성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이다. 조현병이라든가, 조울증이라든가, 소시오패스라든가, 기타 등등.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현대의학을 찬양하게 된 환자는 병을 앓는 사람을 무슨 사회의 찌꺼기 정도로 매도하는 저런 말들이 과도하게 힘을 얻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여의도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싫다. 환자 본인에게 병에 대한 인식이 있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약만 잘 먹으면 사는 데 썩 지장이 없다. 최근 언론 노출이 잦아지면서 무슨 악마의 병 비슷한 취급을 받는 조현병도 마찬가지다.


    환자를 구원할 수 있는 길들이 탄탄하게 잘 깔려 있는데, 사회의 일원으로 별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거기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너 조현병이야?" 같은 말들이다. 게다가 저런 말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병에 대한 이해와 거리가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뭐 얼마나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정치를 하겠다며 나서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은 부류의 정신질환자 한 명 끌어안지 못하는 세상이 과연 좋은 세상일지는 의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