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3일
정신과에 반 년째 다니면서 좀 웃겼던 것. 내가 진료 시간마다 "으아아아아아설거지하기싫어요설거지너무싫어요으아아아아악" 이러면서 몸을 뒤틀었더니만, 의사 선생님이 내 상태와 증상 같은 것을 물을 때마다 꼭 "이번 주에는 설거지 했어요?"라고 묻는다. 오늘도 진료 끄트머리에 "설거지는 잘하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래도 사흘에 한 번은 해요. 개수대에 컵만 잔뜩 쌓여 있는데, 물은 마셔야 하니까……."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반쯤 젖히고 파하하학 하고 웃었다. (아, 왜요!)
내가 다 나아서, 엄밀히는 '약물을 계속 복용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담담하게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고 병원에 그만 다니게 되면, 의사 선생님은 날 어떤 환자로 기억할까. '예전에 내 환자 중에 설거지를 정말로 싫어하는 환자가 있었지……' 같은 생각을 할까. 우울증이 재발한 뒤로 온갖 정신과 의사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서 보는데, 의사들도 사람이라(당연함)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감상 같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아무튼 나는 설거지가 너무 싫다. 쓸데없이 싱크대가 높아서 키가 작은 내 명치까지 오는 것도 싫고, 개수대가 좁아서 옷과 바닥에 거품과 물이 튀는 것도 싫고, 고무장갑 안쪽에 땀이 차서 진득진득해지는 것도 싫고, 배수구에 음식물이었던 온갖 찌꺼기들이 엉겨 붙어 냄새를 풍기니 때때로 치워 줘야 하는 것도 싫다. 어른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으므로 어쨌든 하기는 한다. 그런데 마음이 고장 나면 하기 싫은 일 중에서도 가장 미루기 쉬운 쪽부터 손을 대지 않게 된다.
그래서 자가진단의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로 '설거지를 얼마나 불평하지 않고 재빨리 해치울 수 있는가'를 두고 있다. 개수대는 깨끗하고 부엌 선반은 꽉 찬 걸 보니 이번 주와 저번 주는 그럭저럭 살 만했던 모양이다. 생각난 김에 분리수거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