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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Jun 28. 2020

앙코르와트에서 삼 일간 헤매기

헤매기 전 이야기


사기당하며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보자

캄보디아 국경을 통과할 때부터 불쾌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른바 비자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태국 방콕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캄보디아로 이동하기 위한 버스 편을 알아보고 다녔다. 목적지는 앙코르와트 사원이 있는 씨엠립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카오산에 난립 중인 수십 개의 여행 사무실에 들러 버스표 가격을 체크했다. 카지노 버스 티켓 기준으로 다들 거의 고만고만했는데, 인도인이 운영 중인 한 여행사에서 유독 저렴한 미니버스를 발견했다. 유럽 여권 우대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꽤 저렴했다. 그래도 순순히 달라는 대로 줄 수는 없고 여행사 직원을 붙잡고 왜 이런 차별이 존재하는지 따지고 들었다. 나도 유럽 여권 가격으로 우대해 달라고 우겨댔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오만 떼만 사람들 틈에서 짬밥을 쌓은 더군다나 무려 인도인이 그냥 물러설리 만무했다.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줄줄이 대며 자기들도 너무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니 어느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결국 비우대 값에 표를 구입하고 말았다. 

어떻게 유독 여기만 버스티켓이 저렴했느냐, 그 이유는 국경을 넘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닳고 닳은 카오산의 장사치들이 넘쳐나는 호구 관광객들을 순순히 국경으로 보내줄 리 만무했다.


이른 아침부터 미니버스에 실려 이리 치이고 저이 치이며 캄보디아 국경 인근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린 곳은 일반적인 국경 사무소가 아니라 카페가 딸린 단층 목조 건물이었다. 카페에서 기다리면 사물실에서 한 명 한 명 호명하면서 비자를 내어준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거의 두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내 차례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사무실에는 콧수염을 기르고 제복을 입은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둘 있었다. 이들이 찍어주는 대로 도장을 받고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서 비자를 받았다. 밖으로 나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터넷에서 얼핏 알아봤던 수수료보다 너무 많이 준 것 같았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보다 앞서 비자를 받아 든 호구 유럽 여권 소지자들이 워낙 해맑게 앉아 있어서 내가 예민한 건가 하고 말았었다.

한참 만에야 또 다른 미니버스가 나타나 우리를 싣고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변이 번잡스러워지는가 싶어 둘러보니 이곳이 진짜 태국-캄보디아 국경이었다. 나보다 한참 뒤에 출발했던 카지노 버스는 이미 국경에 도착해 비자 수속을 밟는 중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왜 우리는 다른 곳에서 비자를 받았지? 

나는 국경을 넘어서면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캄보디아 공무원과 여행사무소가 결탁해서 차려놓은 비공식 캄보디아 비자 발급소가 국경 주변에 여럿 있었는데, 국경에서 돈만 주면 내어주는 비자를 이곳에서는 순진한 관광객들을 상대로 비싼 웃돈을 받아 챙기고 있었다. 태국과 캄보디아가 협공하여 이런 식으로 관광객 등을 쳐서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사기 낌새가 조금이라도 풍기면 눈에 불을 켜곤 했었는데 내가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줄은 몰랐다. 저렴한 버스 티켓은 미끼였던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의 코를 베어가려고 호시탐탐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바글대는 방콕 카오산에서 나는 참 순진했다.

 후덥지근하게 푹푹 찌는 날씨까지 더해져 캄보디아 입국 전부터 나의 분노 게이지는 상승하고 있었다. 다만 위안을 하나 삼자면 결국 이 저렴한 버스 티켓은 유럽인 우대용이 아니라 유럽인 호구 잡는 용이었다는 것, 애초에 차별은 있지도 않았었다. 원래 낚시감이 아니었던 한국인인 나는 괜히 싼 거 싼 거 찾다가 미끼를 덥석 문 꼴이었다. 자초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씨엠립 도착

국경에서부터 로컬 버스를 갈아 갈아타고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로 밤 8시가 다 되어서야 씨엠립에 도착했다. 도중에 버스가 끊기는 바람에 마지막엔 관광버스를 히치하이킹해서야 겨우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15시간이나 걸리다니, 참으로 긴 하루였다. 

골목 안쪽 구석에 위치한 호스텔에다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간단히 할 겸 시내 구경에 나섰다. 나의 취미 중 하나가 바로 현지 물가 탐색이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슈퍼마켓으로 현지인들이 주로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 물가 수준은 어떠한지등 현지 상황을 신속하게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곳이었다. 먹거리에 집착하는 나의 성향도 100% 반영되었기에 슈퍼마켓 구경은 그 자체로 매번 그렇게 설레고 신날 수 없었다.

 

대로변에 위치한 슈퍼마켓을 3군데 정도 들러봤는데 특색 있는 식료품이나 물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야채, 과일도 그다지 싱싱하지 않았고, 진열된 물품은 현지인보다 관광객에 걸맞았으며 예상보다 물건 값이 꽤나 비쌌다. 캄보디아는 미국 달러와 현지 화폐가 동시에 통용되고 있었는데 1달러 미만의 잔돈은 현지 화폐인 리엘로 그 이상 목돈은 미달러가 사용되었다. 달러로 표시돼 있어서인지 물가가 더 비싸게 느껴졌다. 씨엠립의 경제 수준이 어떠한지, 현지인들의 생활은 어떠할지 느낌이 왔다. 

씨엠립은 작은 마을이었지만 앙코르와트를 보러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밤에도 북적이고 있었다. 여행 좋아하는 한국인은 앙코르와트 방문객 수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를 내려주고 사라진 버스와 씨엠립에서 맞이한 첫째날 밤 풍경


앙코르와트 탐험 준비

내가 묵던 호스텔은 화교 가족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도미토리는 2층 침대 6개가 빼곡히 들어찬 12인실이었다. 2층 침대 위로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방에 빈틈이 없었다.

앙코르와트는 해자에 비친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해가 뜨기 전부터 방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장거리 버스를 타고 온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데다 밤새 모기와 싸워 대느라 잠이 부족했던 나는 조용히 침낭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아직 깜깜한 새벽, 사사삭 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늦은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방엔 나를 포함 달랑 네 명만 남아 있었다. 영어가 서툴러서인지 인사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일본인 여성 여행자가 구석에 둘 있었고, 나이가 꽤 많은 프랑스 아저씨가 건너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일출만 안 본다 뿐이었지 이들 역시 앙코르와트를  탐험하기 위해 서두르는 중이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앙코르 와트 사원을 포함해 멀리는 70km까지 떨어진 곳에도 유적지가 분포해 있다. 전체를 꼼꼼히 둘러보자면 일주일도 짧았다. 씨엠립에 머문 지 2주가 넘었다는 프랑스 아저씨 폴이 초보인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나섰다. 유적지가 넓은 만큼 코스를 잘 짜는 게 중요한데,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명소 리스트를 건네주고, 또 자신이 직접 꼽은 최고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장소도 귀띔해 주었다. 그리고는 이만 탐험을 떠나야 할 시간이라며 서둘러 호스텔을 빠져나갔다. 오전 9시도 안 되었는데 도미토리엔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오늘은 여독을 풀겸 시내도 구경할 겸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앙코르와트 3일 입장권을 끊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매우 넓어서 적절한 이동수단을 택하는 게 중요했다. 단체 관광객들은 대개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이를 타고 다녔고, 개인 여행자들은 주로 스쿠터를 이용했다. 나는 스쿠터와 자전거를 놓고 요모조모 저울질하다가 결국 자전거를 택했다. 자전거가 여러모로 좋아 보였던 게, 대여료가 저렴하단 이점도 있었고 주유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숙소에서 만난 프랑스 아저씨의 조언을 깜빡 잊고 말았다. "되도록이면 스쿠터를 대여하도록 해. 날씨가 너무 더워서 자전거를 타면 탈진할 수도 있어." 

왜 하필 이때 자전거를 고집했을까. 3일 내내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아래서 자전거로 하루 종일 돌아다닌 결과, 수도인 프놈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일사병에 설사에 감기몸살에 또 며칠을 앓아눕고야 말았다.

나는 폴 아저씨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가볍게 잊어버린 채 룰루랄라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4km 떨어진 앙코르와트 사원으로 일몰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세계 3대 불교 성지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테라와다불교(소승불교) 3대 성지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얀마의 바간,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이다. 그러고 보니 바간은 2008년경 다녀왔고, 몇 달 전 족자카르타에 있는 보로부두르에도 가 봤고, 오늘 앙코르와트 사원을 마지막으로 불교 3대 성지를 모두 방문한 셈이었다.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딱히 불교신자도 아니었지만 괜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갈색빛의 오래된 사원 앞에 서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형형색색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이 건물들은 혼자 우뚝 솟아 있지 않다. 주변과 어우러져 있어 그 위에 올라서면 나도 건물의 일부가 된다. 동시에 나 역시 이 자연, 넓게 보면 우주의 한 조각이라는 걸 되새기게 된다. 내 발자국 소리마저 울려퍼지듯 들리는 조용한 공간을 사부작사부작 걸어본다. 멀리 지평선까지 탁 트인 광경을 보는 것도 참 좋다. 미얀마의 바간이 그랬고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두루도 그랬다. 나는 그 고요한 느낌이 참 좋다.

미얀마 바간의 일몰 [출처-pixabay]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두루[출처-나나meme]
앙코르와트 탐험 시작

드디어 씨엠립에서 사흘 째 날이 밝았다. 오늘부터 사흘간 본격적인 앙코르와트 유적지 탐험이 시작될 참이었다. 호스텔의 도미토리 룸에서는 역시나 다들 해가 뜨기 전부터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질 수 없었다. 얼른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겨 자전거를 끌고 호스텔을 나섰다. 아침식사는 가는 길에 해결할 참이었다. 아직 어스름한 흙길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웰컴 투 앙코르 톰

거대한 도시라는 뜻의 앙코르 톰은 앙코르 유적군 내 가장 큰 유적지로 앙코르와트의 약 4배 면적이다. 특히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바이욘 사원이 인기 있었다. 햇빛의 위치에 따라 표정이 변하는 바이욘의 은은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관세음보살이 떠오른다. 벽면에 새겨진 조각품에는 참족과의 전투 장면이나 서민상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었다. 혼자 공부해서 알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가이드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내 가이드는 아니었고, 나는 주변에 관광객 무리가 보일때마다 슬그머니 백스텝으로 다가가 귀를 쫑긋 세웠다. 혼자 유적지를 볼 때와 차원이 다른 다양한 정보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크메르의 미소, 은은하쥬?
서민의 생활상이나 전투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사흘 동안 리스트에 있는 사원들을 모두 둘러보려니 일정이 빠듯했다. 무엇보다 적절한 시간 안배가 중요했던게 사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GPS 맵을 이용 해서 이동해야 했다. 바쁘게 자전거를 몰아 다녔다. 오전 10시가 넘었을 뿐인데 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그늘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아 내리쬐는 햇살을 온몸으로 맞고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더위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았다. 너무 더워서인지 식욕도 별로 없었다. 사실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아침은 조그마한 시장 같은데 들러서 리어카에서 파는 현지식을 먹었다. 점심도 관광지 주변에서 현지인들이 팔고 있는 주전부리나 과일 등을 사다가 때웠다. 저녁은 시내로 돌아와 역시 간단한 현지식으로 해결했다. 체력소모가 심한 것 치고 영양공급이 부실했다.

하루하루 할당량을 클리어하듯 리스트에 있는 곳들을 빠짐없이 들렀다.  매일 일출 전인 새벽 5시 30에 나가서 일몰까지 감상한 후 8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자전거로 이 넓은 유적지를 돌아다니는 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매일 땀범벅에 엄청난 흙먼지를 뒤집어쓴 꼴로 숙소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치열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비록 강행군으로 몸은 고단했지만 오늘 하루도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 속에서 잠이 들었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일몰, 매일 일몰을 보고 나야 일정이 끝이 났다
툼레이더의 따프롬

둘째 날에는 새벽부터 영화 툼레이더 촬영지로 유명한 따프롬으로 향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였다. 사람이 적은 이른 아침에 고요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서두를 건 없었다. 6시가 넘어서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빨갛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조용한 새벽길을 유유자적 달렸다. 자전거로 돌아다니는 여행자는 오늘도 나 하나뿐이었다.

고요한 아침시간에 떠오르는 일출, 시작이 좋다

 따프롬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12세기에 건립한 불교 사원이다. 따프롬은 거대하게 자란 나무뿌리가 사원을 감싸고 있었다. 억센 나무뿌리에 돌돌 말려 서서히 침식되어 풍화돼 가고 있는 사원. 그 모습이 신비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유명한 곳인 만큼 이른 아침부터 한국인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무리 지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적당히 붙어 서서 가이드의 이야기를 귀동냥하기 시작했다. 유명 사원일수록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고 가이드들의 목소리는 대체로 우렁차서 안 듣는 척하면서 듣기에 딱 좋았다. 마침 나의 외모는 한국인스럽지 않아서 시치미를 뚝 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가이드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가이드를 찾아서 얼른 자리를 이동했다.   


앙코르와트의 마지막 날

오늘은 빤띠아이 쓰레이를 시작으로 톤레 샵 호수에 들렀다가 일몰로 유명한 프레 룹에서 앙코르와트 탐험의 대미를 장식하기로 했다. 빤띠아이 쓰레이는 씨엠립 시내에서 37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가는 길은 험난했다. 비포장 길이 나오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물이 흘러넘쳐서 도중에 진흙투성이 길로 변했다. 자전거에서 넘어지면 끝장이었다. 조심조심 진땀을 빼며 자전거 운전에 집중했다. 한고비 넘기고 나니 시장기가 느껴졌다. 마침 이른 아침 현지인들로 복작이고 있는 삼거리 앞 식당을 발견했다. 커다란 솥에다 육수를 팔팔 끓여 쌀국수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쌀국수를 한 그릇 받아 들고 보양식 먹듯 국물을  들이켰다. 진한 베트남식 커피까지 한잔 걸치고 나니 오늘 하루 움직일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았다.

동남아에서 먹은 쌀국수중 손에 꼽는 맛이었다. 베트남식 찐한 원유 커피도 원샷
빤띠아이 쓰레이 보고 가실까요?
죽은 고목이 남다른 운치를 자아내는 톤레샵 호수도 보고 가시죠

이제 내일이면 앙코르와트와도 작별할 시간이었다.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아껴두었던 마지막 코스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프레 룹이었다. 일몰 시간에 맞춰서 도착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일몰 한 번 보겠다고 몰려든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원은 오래되었고 낡아가고 있었다.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은 약 300명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바쁜 관광객들은 해가 지기가 무섭게 기념사진을 찍고서는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은 나는 그제야 느지막이 사원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선 오래도록 지는 해를 천천히 감상했다. 앙코르와트에서의 보람차고 바빴고 신비했던 사흘간의 모험도 이제 끝이었다. 다치거나 쓰러지지 않고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무사히 끝마친 스스로가 대견했다. 주변이 캄캄해지고서야 다시 자전거를 몰아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시내로 돌아왔다.

프레룹에서 바라본 일몰

마침내 사흘간의 앙코르와트 탐험이 끝이 났다.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입장권 검사가 철저했다. 사원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 지키고 있었고 입장권을 보여줘야 안에다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런 엄격한 그들도 점심을 먹고 나면 그늘 아래에다 해먹을 설치해 놓고 그 위에 누워 있었다. 관광객이 나타나면 귀찮다는 듯 표를 검사했다. 처음엔 왜 저렇게들 누워 있을까, 움직임이 왜 저리 굼뜬가 의아했다.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다닌 지 사흘 째가 되자 모든 게 이해되었다. 유적지고 뭐고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나도 그늘 아래 가만히 누워만 있고 싶어 졌다. 더위를 뚫고 돌아다니기란 보통 의지로는 어려웠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지 4개월째, 마침내 동남아시아 특유의 아열대 더위에 질려버렸다. 이런 더위에 부지런을 떨다간 필히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현지인들의 생활방식이 옳았음을 느꼈다. 사흘간의 강행군을 하며 한국식으로 부지런을 떨던 나는 더위를 단단히 먹고야 말았다. 씨엠립을 떠나 프놈펜에 도착한 날부터 몸져누워야 했다.


풍화되고 있는 앙코르와트

빠른 속도로 침식되고 있는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지키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복원 사업을 돕고 있다. 사실 무너지면 무너진 대로 뿌리에 휘감기면 휘감긴대로 신비한 모습이었지만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앙코르와트는 사라질 것 같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앙코르와트에 들렀는데 수준 높은 예술이 주는 감동은 예상 밖이었다. 한편으론 70년대 후반 크메르 루주 정권이 벌인 킬링필드의 참혹한 역사가 아직까지 캄보디아의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1달러를 요구하는 땟국물이 흐르는 맨발의 아이들, 관광객을 상대로 애절하게 물건을 팔고 있는 가난하고 순박한 얼굴들, 어마어마한 앙코르와트 유적지 입장권 수익을 관리하는 베트남 기업, 관광객에게 팁을 요구하는 부패한 공무원들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이 엉망인 듯했다. 무너져 가고 있는 앙코르와트가 마치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캄보디아의 현실 한토막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무거운 마음이 들었던 앙코르와트 탐험기였다.

사흘간 나와 함께 앙코르와트 탐험을 떠나 준 고마운 잔차, 다 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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