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수세보원曰 병을 고치려면 자존심을 지켜가라

by 김커선
유학자 이제마 선생

오늘은 이제마 선생의 동의수세보원 속 '자존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마 선생은 사상체질학의 창시자시죠. 아니 의사가 웬 자존심을 이야기합니까? 그래서 사상체질학이 재미가 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이제마 선생과 시대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도록 할게요.


이제마 선생은 19세기 구한말에 활동했었죠. 지금 우리는 아프면 흔히 병원을 찾고 의사에게 진료를 받습니다만 조선시대에는 의사를 만나고 약을 지어먹으려면 큰돈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나 허준 선생 같은 의사를 만날 수 없었던 거죠. 짐작하듯 조선 의서는 모두 한자로 쓰여 있었습니다. 어떤 병에 어떤 약을 쓰라고 책에 쓰여 있어도 그걸 읽고 해석하려면 학문적 소양이 필요했죠. 그래서 유의(유학자 의사)가 등장했습니다. 책으로 의술을 익혔으니 유의는 침을 다루기보다는 약재를 가지고 병을 치료했습니다. 이제마 선생 역시 무과에 급제한 유학자였습니다. 따라서 유교적 세계관이 사상의학에 녹아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의 사단론 원리가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의 사상체질론으로 전개됩니다. 그럼 병을 고치는 데 왜 자존심 필요하다는 걸까요?


동의수세보원 '수양하라'

이제마 선생의 동의수세보원 속 태음인 편을 펼쳐 봅니다.

태음인에게 복부팽만과 부종은 위중한 증상이었다. 단순히 손발이 부었다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복부에 종양이 있어서 복수가 차는 등의 증상으로 열에 아홉이 죽을 정도로 위중한 병이었다. 이때 건율제조탕은 어렵긴 하지만 써 볼 수 있는 처방이다. 약을 쓰더라고 성공적으로 치료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화려한 것, 즐거움 쾌락에 해당되는 걸 삼가야 하고 수양을 잘해야 한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병이 중하니 약으로 치료 안 될 수 있어, 그러니 수양하라니요. 아 저만 재밌을 수도 있겠네요. 사상체질학에서는 병을 치료하려면 삼가라, 수양하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이제마 선생이 수양을 강조하는 건 두 가지 경우였습니다. 병증이 경증이라면 특별히 약을 쓰지 않고 생활 조절, 수양으로 병 관리가 가능합니다. 또 다른 경우는 병이 워낙 중증이라 약물만으로는 효과를 안정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울 때입니다. 이때는 약을 보조적으로 쓰고 생활 섭생이나 마음 수양을 좀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병세는 얼마나 심신을 수양 잘하느냐, 자기 자신을 잘 가꾸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죠. 가히 유학자다운 솔루션 아니겠습니까?

마음에 뜻하는 바가 있어 실패해서 좌절이 쌓이거나 이질, 설사, 배뇨장애 문제가 계속 있고 식후 배가 팽만하고 다리에 힘이 없는 문제가 있을 때 병이 악화되어 부종까지 온다. 이런 증상을 부종만큼 심각하게 여기고 조기에 대응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쾌락을 좇으려는 욕망을 잘 가라 앉히고 자기 마음에 존중하고 곤경 하는 마음을 잘 가지고 보조적으로 약물을 써야 효과가 있다.

보세요, 여기도 나오네요. 태음인은 특성상 쾌락이나 즐거움을 좇으려는 경향이 강하죠. 욕망을 가라앉히고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 즉 경심을 잘 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요? 궁금해지던 찰나, 사상체질학을 강의하던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머리가 띵해 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존중하시나요?"


병을 이기는 진짜 자존심

교수님께서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풀어내는데 순간 솔직히 충격받았습니다. 상대 앞에서 나를 숙이지 않고 드러내야 자존심이 살아있지라고 치부해 버렸었는데 제가 여태껏 해 보지 않은 질문과 답을 자꾸 던졌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예의를 차리고 공손하게 대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교수님께서 그 이상의 이야기를 툭툭 무심하게 던지는데 전부 제 가슴에 들어와 숙숙 깊이 꽂히고 있었습니다. 소음인인 교수님의 다정하고 소곤거리는 말투를 상상하시면 더 와 닿을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존중하시나요? 말은 쉽지만 굉장히 어려운 거죠. 자존심이 있으신가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예요. 존심 양성(尊心養性)은 이제마가 강조하던 구절이에요. 자존심의 개념이 뭔가요? 본문에는 공경기심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경심, 존심양성, 자존심 다 비슷한 맥락입니다.

자존심은 자기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뭐가 중요하고 뭐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라고 물어봤을 때 자기가 생각해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있겠죠. 그런데 자신의 무의식적인 마음이나 생활 속에서 자기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중요하게 대우해 주면서 사느냐는 굉장히 어려운 거죠. 자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공경할 수 있느냐 쉽지 않아요.

스스로 떳떳하고 부끄럼 없이 계속해서 노력하고 발전하면서 자기에게 정말 뭐가 중요한지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찾아보고 사실 그래야 가능한 거죠. 이제마와 같은 고전 유학자들이 꿈꾸었던 일상생활에서의 수양이나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이 일치되는 게 아주 희귀하고 대단한데 있지 않아요.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자존심을 지켜가면 되죠. 사실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귀중한 거, 그 사람의 가치를 나도 존중해 준다는 뜻이잖아요. 굉장히 어렵죠 어려워요. 그런데 그게 병을 치료하는 첩경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표면적인 쾌락을 좇는 건 자기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를 소홀히 하는 것과 맞물려 있어요. 아닌가요? 하하. 많이 맞물려 있어요. 당장 눈 앞에 거 당장 내 입, 내 눈, 내 손이 즐거운 걸 좇는 것은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나 자신,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존중을 넓혀 주변 사람에 대한 존중을 소홀히 하는 것과 맞물려 있어요. 눈 앞의 쾌락이나 즐거움을 너무 좇지 않으려고 단순히 이걸 억제해야지 한다고 억제되는 게 아니에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뭐야, 너 자신이 정말 중요하다고 소중하다고 생각해?' 이런 질문에 대해 얼마나 잘 답변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도 하고 노력도 해 봐야 해요.

태음인에게 부종 같은 병은 이미 힘든 병이라서 단순히 약에 의지하는 걸로는 해결이 안 될 거기 때문에 이런 원초적인 본질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 아닙니까? 사실 요즘은 그렇습니다. 병 자체를 치료하는데 관심이 집중되어서 그걸 만든 습관이나 환경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할 때가 많습니다. 이제마 선생은 경증은 경증대로 중증은 중증대로 병을 치료하려면 수양하라고 강조합니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존중하는 마음을 지키고 넓혀서 다른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존중하라고 말이죠.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존감의 '진짜' 정의를 듣고 나니 그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 그걸 생활 속에서 잘 실천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상대를 존중한다는 게 앞에서 공손히 인사하고 예의를 갖추고 칭찬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존중하는 거라니, 여태껏 나는 단 한 사람도 제대로 존중한 적 없구나 하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진짜 자존심이 무엇인지 이제라도 알았으니 실천할 일이 남았습니다.


지내면 지낼수록 건강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 건강을 지키는 자존심, 진짜 자존심을 저와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잘 적용시켜서 모두들 건강을 잘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3가지를 물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꼼꼼히 기억해 두고 그 사람이 존중하는 가치를 저도 존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가 뭔지 궁금합니다. 3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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