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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Aug 31. 2020

나도르 가는 길: 떠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모로코 나도르행을 계획하다

유럽을 다닐 만큼 다닌 듯한 기분이 든 어느 날이었다. 처음엔 화려한 건축물이 즐비한 도시를 헤매고 탁 트인 자연경관에 감탄하며 넋을 잃고 돌아다녔다. 크든 작든 유럽의 도시는 근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멋이 있었고 나름의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었다. 이래서 유럽 유럽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1년 가까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한 건축물과 유적을 보고 있자니 거기가 거기 같고, 여기도 거기 같은 게, 마음속에 감동이나 흥취가 딱히 일어나지 않았다.부족한 나의 인문학적 소양 탓도 있겠으나 어쨌거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가봐도 덤덤하고 로마의 들끓는 관광객들 속에선 피곤한 마음부터 들었다.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에 들어가니 ‘이걸 또 언제 다 보나' 밀린 방학숙제처럼 한숨부터 나왔다. 사진도 건성, 감상도 건성, 죄다 건성건성이었다. 유럽을 벗어나 색다른 곳을 여행할 때였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머무는 동안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다 보니 모로코가 눈에 띄었다. 나도르행 티켓 가격이 5 원이  되었다. 나도르는 모로코 동쪽 끄트머리 해안에 위치한 아주 작은 도시였다.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횡단하며 모로코를 여행하면   같았다. 당장 편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도르가 관광도시가 아닌  알겠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딱히 정보가 나오지 않앗다. 론리플래닛이나 독일의 유명 여행 가이드 북을 뒤져봐도 겨우  단락 언급되고 마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나도르행 비행기의 착륙지는 말만 나도르공항이었지 이웃 소도시의 변두리에 자리했다. 비행기표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공항에서 나도르 시내로 가는 교통편은 택시가 거의 유일한 것 같았다. 택시라니, 내가 비행기보다  피하고 싶은 최후의 교통수단이 바로 택시였다. 택시가 편한  나도 알지만 이용요금이 비쌌고 나같은 초짜 여행자 바가지 쓰기에도  좋았다. 이미 이란 테헤란에서 비슷한 경험을 는데 비행기 티켓값보다 택시요금이  나올  있었다. 웹상에서 도움을 구했더니 다행히 모로코 현지인에게버스편에 한 정보를 들을  있었다. 공항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가면 나도르행 버스를   있다는 것이다. 물론 관건은 그 5킬로미터를 어떻게 이동하느냐였다. 나는 여차하면 걸어서 이동할 작정을 했다.


숙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선 온라인에 등록된 나도르의 숙박 업소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 3 이상급 호텔로  예산과 맞지 않을뿐더러 이 역시 비행기 티켓 가격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런 식이면 저렴한 비행기값에 어울리지 않는 호화 여행이 벌어질 판이었다. 나는 다시 웹상에서 모로코 현지인에게 도움을 구했더니 나도르 시내 심에 보석상점 거리 주변으로 자그마한 모텔급 숙소가 많다는 정보를 얻  있었다. 그중에 비교적 깔끔하고 안전하다는 숙소를  군데 추천받기도 했다. 물론 지도로 검색이  되었기에, 대략적인 위치만 표시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르   가기  어려웠다. 군사기밀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지역 정보를 수집한다는 구글맵도 모로코에선 기를  펴고 있었다. 나도르 구글맵은 휑하고 깨끗했다. 새삼 모로코가 예상보다 폐쇄적인 나라일거라 짐작되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여행준비가 생각보다 깔끔하게 된 셈이었다. 

나도르 공항은 나도르에서  차로 40분쯤 걸리는 외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나도르에 갈 수 있을까?

출발일이 일주일, 닷새, 사흘... 하루하루 앞으로 다가올수록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도르에 관한 정보가 제한되어 있으니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점점 골치가 파왔다.

때마침 모로코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2016 10 30, 생선 노점상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상인이 쓰레기 분쇄 차에 끼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발단이 되어 강압적인 정부에 분노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2011 튀니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과일 노점상이 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한 사건은 시민혁명을 불러왔고  알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소위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정부라니 정치가 진일보했겠거니 싶겠지만 실상은  알리 독재 시절보다 치안이나 정국 사정이  불안해진 결과를 낳았다. 튀니지의 많은 지식인들불안정한 조국을 떠나 유럽으로 이주했남아 있는 현지인들 우울감과 패배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친구 카렌이 모로코의 불안한 정세를 예의 주시하라고 당부해 왔다. 필리핀 마닐라행 악몽이 다시금 소환되었다. 저렴한 티켓이라고 덜컥 마닐라로 떠났다가 자칫 목숨을 잃을뻔했던 사건말이다.

모로코 사정을 알면 알수록 불안감이 져가더니 여행 전날이 되자 소화불량 징조까지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2016 11 30, 모로코로 출발할 날이 닥쳐왔다.



상상도  했던 일들의 연속

오후 8시가 넘어서야 마침내 나도르 공항에 착륙할  있었다. 공항은 자그마해서 입국도장을 받고 출국장을 빠져나오니 오후 8 2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택시 기사 몇몇이 다가왔지만 의사소통이  된다는  알아차리고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나는 지도를 확인하며 걸어갈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대로를 따라가지 않고 공항 주차장을 통과하면 길을 지를  같았다. 주차장에 다다옆으로  오솔길로 접어드려는 찰나였다.

"어디로 가는 길이에요?"

뒤를 돌아보니 이십  초중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주차관리 요원이 영어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청년을 붙잡고 나도르행 교통편에 대해 물어보았고 청년은 친절하게도 일일이 대답을  주었다. 게다가 오솔길 대신 대로를 따라가는  낫겠다는 조언해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다시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 잠깐만 잠깐만요."

주차관리 청년나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검은색 차량의  중년 남성 운전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분이  나도르로 답니다. 제가 이야기해 놨으니  분이 태워다 주실 거예요. 그런데 지금 손님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중이라니 시간이  걸리겠네요."

생각지도 못한 행운기분이 좋은 나머지 나는 껑충껑충 뛰어서 검은색 승용차로 다가갔다. 10분이고 20 분이고 족히 기다릴  있었다. 청년이 승용차 운전자와 나를 서로 소개해 주었다. 청년은 이내 형광봉을 이리저리 흔들며 차량을 관리하기에 바빴다. 승용차  대가 주차장을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청년은 손짓으로 차를 세우더니 허리를 숙이고 운전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

"이쪽으로 잠깐  보세요." 청년이 나를 불렀다.

" 분들이 지금 나도르로 가는 길이라네요. 여기 함께 타면 되겠어요."

승용차 안을 들여다보니 히잡을  중년 여성  명이 타고 있었다. 야밤에 아주머니  분과 동승한다니 이보다  안심될  있을까? 비록 필리핀 마닐라에서 여자들과 어울리다 여자들에게 강도를 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을 향한 나의 신뢰는 여전했다.

참한 주차 관리 청년 덕분에 나는 택시보다 더 편하고 안전한 교통편을 얻게 되었다. 그것도 무료로. 그렇게 곧장 세 여성이 타고 있는 승용차에 배낭을 끌어안고 올라탔다. 아주머니들은 나를 살짝 경계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밝게 웃어주었다. 의사소통이 안 됨은 물론이었다. 나는 쪽지에 미리 적어 둔 숙소의 이름과 개략적인 위치를 운전자 아주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아주머니는 여기가 어딘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출발했다.


나도르 중심가에 다다랐고, 곧이어 나를 태워 준 아주머니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숙소를 찾아 나서야 했다. 시내 중심가라고는 했지만, 상점들은 이미 문을 닫고 난 뒤라 거리는 조용하고 휑했다. 살짝 긴장이 되었다. 혼자서 10분 넘게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불을 환히 밝혀놓은 문 열린 옷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가게 안에는 점원 두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숙소가 적힌 쪽지를 보여주며 위치를 물어보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청년들은 하던 일을 다 접더니, 나를 데리고 함께 거리로 나섰다.

청년들 덕분에 숙소를 마침내 찾긴 찼았으나 벌써 예약이 다 차서 방이 없다고 했다.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인정이 넘치는 청년들은 나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인근 숙소를 서너 군데 더 돌아다녀 주었다. 든든했다. 머지않아 구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많이 낡긴 했지만 비교적 깔끔해 보이는 숙소를 발견했다. 1인실이 하루에 한화로 6천 원이었고, 샤워는 따로 천 원을 추가하는 조건이었다. 단, 물은 찬물뿐이었다. 기대도 못한 와이파이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이 곳이라면 안심이었다.

야심한 시각에 기꺼이 나와 함께 숙소를 찾아 준 청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건넬 기념품도 하나 없었다. 대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는 작별했다.

간밤에 나를 안전히 숙소인근까지 데려다준 아주머니 세 분 & 하던 일도 접고 나를 숙소로 안내해 준 친절한  옷 가게 청년(?)들



자연은 항상 길을 찾아준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3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공항을 나와 나도르에 도착해 숙소를 찾는 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졌었다. 먹은 게 소화도 안 될 지경이었고 마냥 불안하고 막막했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실타래 풀리 듯 일이 술술 풀렸다. 영어를 할 줄 알던 선한 인상의 한 청년이 첫 도움의 스타트를 끊자, 이후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타나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단 한 시간 만에 나도르에 무사히 도착한 것은 물론 나름 쾌적한 숙소까지 구할 수 있었다. 오늘 뭔가 모험다운 모험을 했다는 뿌듯한 감정이 벅차올랐다. 가슴이 두근두근 대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대로 감정을 삭이며 잠들기가 아까웠다. 나는 짐을 대충 정리한 후 거리로 나왔다.

인근 버스터미널 주변은 늦은 밤에도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그들 틈에 끼어서 길거리 음식을 사 먹으고 사람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걸었다. 어느새 내 앞에 바다가 보이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별, 철퍼덕 거리는 파도, 그리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지금 나는 더없이 평안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온갖 불안과 긴장과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감정의 간극은 놀랄 만큼 극과 극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수(數), 양(量), 공간, 시간 따위의 한계에 얽매인 존재였던가를 새삼 되새기고 있었다. 아무리 짱구를 굴리고 최선을 다해 예측해 봐야, 항상 그 너머에는 내가 결코 예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펼쳐지기 마련이었다. 내가 아는 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 불과했다.


"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귀 기울여야 해요. 그럼 모든 게 풀릴 거에요."

"그런데 그게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머리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죠?"

인도의 한 명상센터에서 다사지(명상센터 교사)를 붙잡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다사지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시험을 해봐요, 시험을 해보면 알아요."


정말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가 맞는지, 그 소리를 따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사실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나는 굳이 쉬운 길도 돌아 돌아, 없는 역경도 만들어가며 굳이 이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결국 내 예상을 넘어서는 일들이 벌어지고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게 되는 과정을 내 오감으로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말이다. 한 번 두 번 신기하고 마법 같은 경험이 쌓일수록 한층 더 가슴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자연에 대한 믿음도 단단해져 갔다. 그래서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없는 역경을 만들어서라도 헤쳐가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었다.

"시간을 넘어, 공간을 가로질러,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연은 언제나 길을 찾게 마련이야."

가슴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이 알려 준 길을 따라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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