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 성장하거나 추락하거나, 모든 생일은 기적이다

한 30대 여성의 생일 나는 법

by 안녕하세요
KakaoTalk_20180305_021255577.jpg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우연찮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생일이란 사실을 알리고 다닌 덕에 생각보다 더 많은 축하를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더없이 행복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위화감이 들었다. 청춘이라기엔 다소 애매한 나이에 삶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데. 생애 중 이런 시기라도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축하를 받아도 되는 걸까.


어릴 때에는 태어난 사실 자체가, 그리고 1년이 다르게 성장하는 과정이 축하받을 만한 일이었다. 아이는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성취와 보람을 가져다준다. 밥벌이는 하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의 상태는, 가장 가까운 타인인 부모님에게 성취를 안겨주지 않은 탓에 다른 타인에게도 축하받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자녀의 취업과 결혼, 자녀영육에 대한 기대를 키워가는 동안 성인이 된 아이는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 진로를 꾸린다. 자신의 삶을 사는 이 아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의 삶에 놓인 사람과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다. 성장하거나 추락하거나, 성취를 보여주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 방향성이라면 어떤 행위도 받아들이고 축하해줄 만 하다. 그리고 그 존재를 주변에서 받아들여주는 행위. 모든 게 생일을 맞은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닐까.


누군가는 내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태어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으면 좋겠다고. 그 말에 헛웃음이 났다. 태어나보지 않았을 때 어땠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뭉클했다. 무의미하게 흘러갈 수 있는 하루가 쌓여 만든 생일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날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분명한 건 해가 쌓여가면서, 내면을 다루지 못해 혼란스럽던 내가 고요해지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눈에 띌 만한 성취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이런 인식이 내 주변 사람에게도 편하게 받아들여진다면 작은 성취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피부는 어제보다 좀 더 거칠어졌고, 뱃살은 어제보다 좀 더 늘어졌지만, 이 안에 담긴 어떤 존재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고 있다. 크고 작은 걱정 속에서도 축하받지 않을 만한 이유는 없는 생일이었다.


KakaoTalk_20180305_021255576.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상] 뒤통수 맞은 느낌이야,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