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으슬으슬한데 생리도 없고... 혹시?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충격과 공포의 하루

by 안녕하세요

Q.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누구에게 언제 처음 알렸고, 그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아침에 보는 소변으로 임신테스트를 한 후, 2시간 뒤에 남자친구에게 알렸어요. 말을 꺼낼 때 쯤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을 정했을 때였고요.

둘다 직장인이라 퇴근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그가 얘기했죠. 준비해야 할 게 많지만 그래도 결혼과 임신을 잘 준비해보자, 하고요. 저만큼이나 상대방도 놀랄 것 같아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어요.



두 줄이 뜬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시계를 보니 6시 15분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샜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이성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각해야 했다. 선택지를 최대한 늘려서 장단점을 따졌다.


1. 낳지 않는다

그럼에도 낙태를 하게 되면 조금 더 계획적인 결혼과 출산을 준비할 수 있고, 아이를 원치 않으면 그만한 대처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낙태는 불법인 데다 몸이 망가지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생긴 선물을 쉽게 떨쳐내고 싶진 않았다.


2. 낳는다

남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결혼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은 삶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이런 내게 출산은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의 엄마로써 나만의 울타리를 꾸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는 마음에게 물었다. 어차피 이성은 거들 뿐,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는 성격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 남자 친구와 결혼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그와 좀 더 가까워지고, 좀 더 오래 보길 원하고 있었다.


내게 결혼과 출산은 더 나은 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엄두조차 나지 않던 결혼을 경험할 기회, 사랑해서 만난 배우자와 오랫동안 반려자와 육아 동지로서 성장할 기회, 무엇보다 부모를 성장시켜준다던 아기와 엄마로서 관계 맺을 기회. 그 기회가 조금은 기대되기도 했다.


혹시 모를 행복의 기회를 이렇듯 아기의 존재로 묻어가려는 내가 게으르고 비겁하게도 느껴지지만, 아기의 존재가 명분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나를 행동하게 만든 건 확실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기까지 30여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찍 일어난 탓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처리해야 할 일은 최대한 집중해서 빨리 끝내고 대부분을 시간을 초기 임신 정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먹으면 좋을 것이나 안 좋을 것, 임신이 맞다면 그다음의 절차 등.


한참을 알아보다 볼일을 보려고 간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문득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서른세 살에 자연임신이면 나름의 생식 능력은 괜찮다고 봐도 되는 것 아닌가. 매달 난자가 쓸모없이 사라지는 게 그렇게 슬펐는데, 이제는 소임을 다해 뿌듯한 자경단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축하받을 만한 일이다. 자꾸 위축되기보다 나 자신을 믿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제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을 남자 친구에게 말하는 일이 남았다.



임신처음1_수정.jpg 남자 친구에게 처음 임신 사실을 알린 날의 카톡.



"대박..ㅎㅎ"


모바일 메신저로 임신 소식을 전해 들은 남자 친구의 첫 반응이었다. 짧은 감탄사 안에 당황, 놀라움, 두려움, 걱정 등의 감정과 함께 약간의 설레는 감정도 옅게나마 느껴졌다. 나만큼이나 놀랐을 것 같은 남자 친구를 배려해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야근을 미뤄둔 채 30분 거리의 회사 앞으로 왔고, 같이 산부인과로 향했다.


산부인과에는 우리 말고도 한 쌍의 남녀가 쇼파에 앉아 있었다. 둘은 말이 없었고, 여자는 얼굴을 감싼 채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있었다. 왠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커플인 것 같았다.


성인이 된 후 건강검진 때문에 산부인과를 찾은 적은 있어도 이런 일로 찾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애엄마가 된 지금도 검사를 위해 다리를 벌리는 건 왠지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초음파 검사 결과, 점처럼 작은 아기집만 있는 상태고 심장소리 등은 아직 들리지 않았다. 6주차라고 했다. 나나 남자친구나 얼떨떨한 건 마찬가지였다.



KakaoTalk_20180705_224148648.jpg 처음 아기집을 확인한 날.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 가운데, 묘하게 설레는 마음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산부인과를 나와 순대철판볶음을 먹었다. 나와 같이 멍때리고 있던 그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현실적인 문제가 좀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이랑 출산, 잘 해보자.” 나만큼이나 두려웠을 그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해 준 점이 고마웠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는 나와 헤어지고 싶지앟고 아이를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보다 커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여러 날 고민해도 같은 답이 나올 것 같던 미래에 대한 고민은, 그렇게 하루 만에 결정됐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고심해서 빠르게 결정내리는 유형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내 마음이 크게 변할 것 같지 않아서, 앞으로 닥칠 절차를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빠르게 결정했다. 남자친구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아마 이렇게 쉽고 빠르게 결정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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