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어" 말하자 안방서 숨죽여 울던 엄마

'단란한 삶으로 보상해야겠다' 무거운 책임감 느껴

by 안녕하세요

Q. 남자친구와 상의는 하고 어느 정도 결정은 했는데,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상황이 너무 걱정돼요.


A. 저도 그랬어요. 임신, 결혼, 출산 등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 중에 가장 떨리고 두려운 순간이었죠. 큰 불효를 했다고 생각했고, 부모님께 드린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라도 행복하게 사는 모습 보여드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려고 결국 무리한 일정도 소화하는거니까요.



남자친구와 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오늘 밤에 ‘중대 발표’가 있을 거라고. 청소년기를 거쳐오며 애교 많은 딸에서 과묵한 딸로 태세 전환한 지 오래라, 어떤 얘기를 할지 궁금하면서도 사뭇 걱정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이제 막 저녁 먹고 치우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부모님에게 충격을 안겨드릴 걸 생각하니 너무 죄송했지만, 가급적 빨리 말해야 결혼 준비 과정상의 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6년 만난 여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하고, 1년 간의 준비를 거쳐 결혼한 오빠 때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니까.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부모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바로 질문이 되돌아왔다. 남자친구? 서른세 살 때까지 나는 부모님에게 공식적으로 남자친구를 소개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내게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알게 모르게 걱정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내 딸이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과는 어떤 미래까지 그리고 있는지 등등. 그렇게 켜켜이 쌓은 궁금증을 한 단어에 몰아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응 맞아. 그런데 늦어도 이번 달까지는 봐야 해. 의아해하는 부모님께 이 모임의 ‘본론’인 내 근황을 알리는 말을 전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어. 내가 아기를 갖게 됐거든. “


부모님의 표정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할 말을 잃은 채 정지된 화면처럼 몇 분을 앉은 자세 그대로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시선을 떨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얼마나 만났어? 결혼 준비하기에 괜찮은 사람이야?”


2년 만났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결혼할 준비가 돼 있냐는 물음에는, 나보다 어리고 갑작스러워서 덜 준비돼 있다고 했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셨다. 자금 마련, 집 구하기 등 어른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아직 하나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더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서둘러 시간을 맞춰보라고 말한 뒤 그 가시방석 같은 자리를 피해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왔다고 무거운 공기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씻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갑자기 안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끄윽 끄윽, 숨을 애써 넘기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울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내가 부모님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그제야 파악됐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예전 말처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 때문에 결혼해야 하는 듯한 현실이 속상하셨을 것이다.


GettyImages-jv11350359.jpg 엄마에게 준 상처는, 내가 단란하게 사는 모습으로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어머니는 자신의 근무하던 병원에서 처음 아버지를 만나셨다. 급성 위염으로 입원한 아버지를 그저 환자로만

대하던 어머니에게, 할아버지는 “한 번 만나 보라”며 결혼 자리를 주선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선뜻 이성적인 매력을 못 느꼈던 어머니는 그저 할아버지의 인상이 좋았고, 그 인상에 끌려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연애결혼이니 여성이 인권이니 하는 담론 자체가 척박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나하나 장단을 짚어가며 한 결정이고, 이런 나 자신이 대견했다.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저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에 불과했을 것이다. 혼전 임신이 크게 비난받던 시대를 살아온 당신의 심정은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암담한 것 같았다.


밤을 꼴딱 새우고 나니 출근 시간이 다가왔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부모님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임신 증상이 시작되려는지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회사에 도착하자 어머니에게 모바일 메시지가 왔다. 몸조리 잘하고, 남자 친구 보는 날짜를 조만간 잡아 보자는 내용이었다.


결혼으로 행복을 찾고자 하는 바람이 의무로 뒤바꼈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나는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책임감과 두려움, 죄송스러움과 불안함이 한 데 섞인 복잡한 출근길이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엄마와 크게 다툴 일은 없었지만, 서로 많이 참으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혼주의 한복 등 양가 부모의 의견 조율이 필요할 때, 나는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그리며 불안에 빠져 엄마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결혼식 당일에도 혼주 화장을 담당하는 메이크업 숍에 30분이나 늦은 엄마를 보며 왠지 모르게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내려야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결혼식 전날 엄마는 결혼식 문제로 크게 싸웠다고 한다.


“그래도 골치 아픈 인생의 관문을 빨리 잘 통과했어. 어떻게 보면 잘 됐어.”


출산 후, 순한 아기가 내 어릴 적 모습과 닮아 보인다는 엄마는 이제 그때의 일은 다 잊었다고 했다. 적령기가 훌쩍 넘은 자신의 딸이 언제 누구를 만나 결혼하나 했는데, 이런 계기로 인생의 중요한 관문을 빠르게 넘긴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도 했다. 결과가 좋으니까 힘들었던 과거까지 다 괜찮아지는 건가. 나조차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한데, 엄마는 벌써 더 잊은 것처럼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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