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내세우는 논의 방식, 현실 문제 해결에 걸림돌일 뿐
Q. 임신 전까지 남자친구랑 꿀떨어지는 얘기만 하다가, 집이니 양육이니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려니 왠지 어색해요. 이렇게 하나씩 얘기하는 거 맞나요?
A. 집, 직업 등 현실적인 얘기를 다른 어떤 관계보다 더 깊게 그리고 자주 나눠야 해요. 결혼처럼 결속이 높은 관계가 꼭 나눠야 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공통점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접점을 넓혀가면 좋은데, 저도 아직 잘 못 하고 있는 대화 방법이예요.
"점심 먹었어?"
"응. 먹었지."
"...."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청약이 당첨된 날, 각자의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후 모바일 메신저로 묻는 안부에서 뭔가 뾰로통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보금자리가 정해졌는데, 왜 감정이 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언제까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지 보자. 원인을 모를 이 냉랭한 분위기는 다음날까지 이어졌고, 결국 저녁을 먹으면서야 겨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청약이 당첨된 바로 그 사실 때문이었다.
남편은 청약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는 내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자신은 경기도에 집을 얻고 싶지 않은데, 자신이 한 얘기를 무시한 채 지원하더니 당첨 후에도 자신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은 채 기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부모님 집을 떠나 내가 주체적으로 집을 고른다는 생각에 들떠 그의 반응을 살피지 못했고, 한 두 번의 지원으로 당첨된 사실에 다시 한번 들떴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남자 친구의 생각이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서울 지역에서 살길 원하는 남편은 어느 정도의 고정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직장과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고 봤고, 육아 환경은 아직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도 그렇지 그의 생각이 철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남자 친구는 내가 자신의 의견을 철없게 생각한다는 점에 한번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부부는 '같은 배' 탄 사이... 감정싸움보다 타협안 제시하고 협상해야
우리 커플에겐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감정이 상했을 때 바로 얘기하기보다 삭여두다 곪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우리는 그 기분이 금방 드러났고, 이런 서로를 알게 될 때면 대화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이런 상태에선 서로의 얘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기분을 먼저 우선하다 보니 대화가 잘 되지 않고, 각자의 집에 이렇게 돌아가면 계속 안 좋은 기분을 유지하게 돼 삶의 질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패턴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건강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선택해야 했다. 앞으로 우리는 평생 출산, 육아, 이직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며 함께 늙어갈 사이다. 이런 사이에서 생기는 작은 오해나 의견 차이마다 감정이 상한다면, 밥을 먹고 잠자는 보금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다행히 우리는 누군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보내면 대화가 잘 진행되는 편이었고, 남자 친구보다는 대화를 이끌어가는 데 능숙한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기로 했다.
들어보니 남편은 10여 년 넘게 청약통장에 돈을 붓고 있었고, 서울에서 자취한 기간을 활용해 서울에 집을 얻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나아가 곧 세상에 태어날 아기에게도 서울의 본적을 유지해 문화생활 등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반면 나는 어떤 집을 '좋은 집'이라고 보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경기도의 부모님 집에서 서울의 직장까지 출퇴근하면서 주거 비용을 대지 않았던, 싱글 시절 나의 경험이 만든 주관만 있을 뿐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남편의 의견에 이해 못할 부분이 없었고, 결국 남편의 직장에 가깝고 내 직장에선 조금 멀더라도 교통은 편한 신혼집을 차리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서 전세대출을 받아 살면서 계속 청약에 지원하기로 결론 내렸다.
과도하게 극단적인 생각이 아니라면, 모든 의견 차이는 조금씩 접점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정신과 의사는 저서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에서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인간 뇌에 있는 3종류의 소통 형태에 집중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뇌는 파충류, 표유류, 인간의 뇌 속성을 모두 갖고 있다. 평소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다로 움직이는 인간의 뇌는, 공격을 받거나 위협을 느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파충류 뇌로 전환해 공격과 방어의 태세를 갖춘다. 위험을 느끼고 본능에 충실해지는 셈인데, 이런 경우 허용적이고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결혼, 험준한 산에 '감히' 당신과 오르겠다는 결심
결혼을 정의 내리자면, 상대방에 대한 낭만에 기대 감히 험준한 산에 오르기로 덜컥 결정하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한 번 법적으로 맺어진 부부는 평생을 함께 하며 모든 일상을 공유하는데, 연애 단계에서 흔히 사랑이라고 느끼는 설레는 감정은 길어봐야 3년 간다고 한다. 게다가 퇴근 후에는 양가 부모님에게 안부를 묻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반복된다. 개인적인 취미와 유흥으로 가득 찼던 싱글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진다는 얘기다.
우리는 공연을 보는 동호회에서 만나 가까워졌다. 공연 중에서도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트는 페스티벌을, 그중에서도 빠르고도 비트가 강한 '하드 스타일' 장르의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을 즐겼다. 만나왔던 2년간 수십 개의 페스티벌을 다니고, 해외여행만 2번을 다녀왔다. 이상적인 배우자상이나 자녀 계획, 노후 설계 등을 고민하는 사이가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둘이 만나 갑자기 출산, 결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과제를 해결해야 할 파트너가 됐으니 불협화음이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러니 결혼하기로 결심했다면, 결혼과 출산에 필요한 모든 쟁점을 남김없이 모두 꺼내어 놓고 오랫동안 얘기해보길 권한다. 이때 중요한 건 나와 다른 상대방의 경험과 주관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다행히 우리는 갈등 방식이 심하게 부딪혔을 뿐,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타인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공통점을 바탕으로 논의를 시작하고, 수긍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자. 이 결론이 철없는 낭만커플인 우리를 예비 부모이자 부부로 거듭나게 해 준 첫 열쇳말이었다.
1. 만난 지 얼마 안 돼 아기가 생긴 커플이라면 더더욱, 결혼식이나 신혼집 위치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결혼을 결심했으니 자산 현황이나 집 마련 과정에서 포기하기 어려운 점 등을 가감 없이 꺼내놓고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
2. 중요한 건 상대방과 내가 살아온 경험이 다르다는 점이지,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는 점이 아니다. 서로의 경험이 내린 결론운 존중하되, 포기하지 못하는 가치와 포기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서로 얘기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3. 싸우게 되는 패턴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이때 누가 먼저 갈등 해결해 나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그렇게 시작된 대화가 상호작용을 거쳐 합의점에 이르게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