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글 다섯번째
- 내가 좋아하는 #차 #음료
누군가 내게 취향을 물어본다면, 나는 조금 난감해진다. 제법 어려운 질문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 일상을 물어보는 것은 대답하기가 쉬운데 좋다, 싫다의 기호를 묻는 질문은 뭐랄까 호불호가 있는 이런 문제는 나를 너무 곤란하게 만든다. 솔직히 굉장히 취약한 편이다. 양자택일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깨닫는 것이 힘들었다.
물론 진짜 싫은 것은 따로 있지만.
1을 택하는 순간 난 1을 좋아하는 사람, 2는 별로인 사람이 되는 상황이 싫었다. 그래서 늘 선택을 모호하게 했다. 빵이 먹고 싶지만, 지금 먹고 싶은 거지 다음에도 먹고 싶은 건 아닌데 저 사람이 날 빵을 더, 혹은 빵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기억하면 안되니까 그냥 둘 다 좋다고 하자! 둘 중 뭘 줘도 괜찮으니까! (참 복잡하게 사네..)
단편적인 모습으로 당신이 나를 정의내리지 않길 바랐고, 나아가 미움받기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받고 싶었던 거겠지.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뭐, 나 참 속알맹이가 까다롭고 예민하고 사랑받고 싶어했던 아이구나. 새삼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그런 모습을 숨기고자 부던히도 애쓰고 나를 숨기고 지우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색이 다 빠진 투명 셀로판지가 됐다는 이야기.
색을 다 찾은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 호불호를 이야기 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 선택을 먼저 말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게 좋아. 이건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아' 같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주목한다는 것이다.
나는 밀크티를 좋아한다. 유자차도 좋아하고, 고구마라떼도 좋다. 스타벅스에 가면 자몽 허니 블랙티를 즐겨 마시지만, 카페인이 있다고 해서 늦은 밤에는 마시지 않는다. 커피는 별로 안 마신다. 왜냐면 단 걸 좋아하니까! 케이크 먹을 때도 단 음료를 시켜 마시다보니 커피는 저절로 안 마시게 되더라고. 싫어하는 음료는 뭘까. 딱히 없다. 단지 커피 보다는 티가 좋다! 나에겐 티를 줘. (아 커피 중에서는 토피넛 라떼 갠춘)
참고로 자몽 허니 블랙티 마시고 잠이 안와서 30시간 가까이 깨어있던 적도 있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한다. 좋다는 걸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그렇게 된건가.
근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뭐가 별로고 싫은지 말해주고 싶지 않다. 그걸 공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말하고 싶지 않더라구. 물론 이것은 음료나 디저트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이라든가, 더 깊고 내밀한 이야기들. 물어보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해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말하고 싶은 것들. 그러니 먼저 묻지마세요. 내 취향은 내 것이니까, 비밀입니다.
+) 내가 어떤 음료를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어도, 지금 현재 무엇을 마시고 싶어하는지 물어봐주는 사람. 그런 다정함을 갖고 있는 사람, 어릴 때 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