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의 책 이야기

주얼 '여름의 한가운데'(이스트엔드)

by 안현희 마리스텔라

오래전에 보았던 TV 베스트극장과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 5편을 본 듯한 느낌이다. 한 여름 땡볕 지면에 떨어지던 흙 비린내 나는 빗줄기처럼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고 환한 햇살이 나오던 여름날의 향기와 같던 가슴 한쪽이 일렁이는 느낌이 나는 소설이다.

내 나이 딱 그때쯤인듯하다. 25살의 나는 우울했다. 이유가 없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할 때는 밝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울했다.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다. 그때 보았던 국도에서 사과 파는 여인이라는 드라마다. 배수아 작가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가 원작인 베스트 극장 드라마가 떠올랐다. 이 책 또한 그런 젊은 날의 감정이 일렁인다.

"멋진 하루"에서의 추억은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을 가끔 꺼내어 되새김질해 볼 수 있기에 아련함과 애틋함을 준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으로 묻어두어 살아가면서 좋은 자양분으로 쓰일 수 있다. 나의 지나간 연애에서 상대가 잘생겼는지, 키가 큰지, 돈이 많은지, 좋은 사람이었는지 나쁜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에게 남겨진 좋은 경험과 추억들만이 가슴 한구석에 아름다운 향기로 머물러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파주 가는 길"은 읽으면서 아빠 생각이 가득하다. 2010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때 당시는 병환 중이셔서 슬픈지 어쩐 지도 모르게 장례를 치렀다. 그러다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이 떠오를 때면 뜨거운 눈물이 쏟아진다. 파킨슨병으로 조금씩 몸이 굳어 가실 때 아빠는 산에 열심히 다니셨고, 그때 한 번도 아빠와 함께 하지를 못했다.


일에 메여 늘 바빴던 나는 이제야 그 아쉬움을 후회한다. 더 이상의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엄마와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고, 호캉스란 것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녀보고, 결혼도 안 한 딸자식 걱정이 크시지만, 그것 외에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사랑한다 말도 자주 한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을 테지만.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소중하다. 각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우리가 다 느끼며 살아왔을 법한 이야기이기에 더 공감이 되고 아련히 남아있는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보게 된다. 촉촉하게 수분기 가득 채운 심장의 감정들을 느끼며 우울한 감정과 즐거움 그리고 그 중간쯤을 오고 가는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어느덧 나이가 채워져 중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러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큰일 날 것처럼 그 수분을 잔뜩 머금은 감정들을 고온으로 바짝 말려 덤덤하고 아주 메마르게 살아오고 있었는데, 그런 건조함에 장맛비를 뿌리듯 메마른 감정들을 일렁이게 하는 소설이어서 좋다. 순수한 시절에 겪었던 방황과 모자람 그 속에서 느꼈던 슬픔들을 느끼게 해서 설레고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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