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향한 고해성사
아버지는 2012년에 일흔의 연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신 뒤에도 꾸준히 운동하시고 등산도 다니셨지만, 몸은 점점 굳어만 가셨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학원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 곁에 자주 머무르지 못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정성껏 보살피지도 못한 채 늘 일에 매달려 살았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기 바빴으니, 돌이켜보면 참 모진 딸이었다.
엄마가 부재중일 때는 식사를 챙기고 잠시 돌보는 정도였지만, 정이 깊지 못하다 보니 온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일들이 나의 시간을 빼앗는 귀찮은 일이라 여겼으니, 지금 생각하면 죄스럽기 그지없다. 아버지께서 혼자 힘으로 움직이기 어려워졌을 때조차, 나는 단지 식사를 챙기고 침대를 점검하는 정도로만 돌보았다. 나머지 모든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왜 조금 더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을까. 왜 함께 있을 때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사람은 이렇게 어리석다. 아버지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고 나서야, 아프셔도 곁에 계셨던 그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순간이었는지 깨닫는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떠나시기 몇 달 전, 온 가족이 함께 떠난 여행이 마지막이자 가장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 시간은 지금도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소중한 기억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의 죽음은 내 마음속 깊은 상처이자 아픔으로 남아 있다.
삶과 죽음의 깨달음은 한순간에 오지 않았다. 그것은 파도처럼, 잊을 만하면 다시 밀려와 나를 덮쳤다. 저녁길의 굽은 노인을 볼 때, 빛바랜 사진 속 젊은 아버지를 마주할 때, 혹은 문득 고요한 순간에 스며드는 향기 같은 추억 속에서 나는 늘 같은 아픔을 느낀다. 그 아픔은 아마도 죽는 날까지 치유되지 않을 상처로 남을 것이다. 병환이 조금씩 아버지의 시간을 갉아먹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묵묵히 견디셨다. 남한산성 언덕을 오르내리며 삶을 버텨내시던 그 걸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시절 내 세계의 중심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친구들과의 약속, 내가 원하는 자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외출을 준비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이것 좀 부탁하마.”
그 말에 이유 모를 짜증이 치밀었다. 왜 꼭 지금이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마지못해 부탁을 들어드린 뒤 문을 나섰다. 그때 나는 그 부름 속에 깃든 외로움과 간절함을 알아차리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른 날에는 더 거칠게 말했다. 그 거침이 훗날 내 심장을 찌르는 비수가 될 줄, 그땐 몰랐다.
아버지께서 떠나시던 날, 화장터의 불꽃 속에서 당신이 사라져 가는 장면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눈물 한 방울 한 방울로 죄의 무게를 받아내야 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 길 위에서, 나는 하얀 머리의 아버지를 보았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그 순간, 나는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이 산을 오르실 때 한 번도 손을 잡아드리지 못한 것, 괜히 모진 말을 쏟아낸 것, 그 모든 순간이 가슴에 박혔다. 그제야 알았다. 작은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가 훗날 이렇게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가족에게만큼은 더 아끼고, 더 다정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분명한 진실을 나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깨달았다.
"아버지, 이제는 다 드리지 못한 사랑을 엄마께 드릴게요. 아버지 몫까지 더 잘하며, 눈물이 아닌 감사로 하루를 채우겠습니다. 엄마를 보살피는 일이 바로 아버지를 그리는 나의 또 다른 방식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죽는 날까지 아버지를 그리며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께 미처 다 건네지 못한 사랑을 어머니께 모두 드리며, 가족에게 따뜻함을 아끼지 않고 전하며 살겠습니다. 오늘 하지 않은 사랑은 내일 하면 너무 늦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 사랑을 내 남은 생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