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작가 조지 아마두.
백발의 머리에 알록달록한 비치 남방을 입고, 말하는 그의 음성은 확신에 찬 멋들어짐이 있었다.
“당신이 알다시피 우리 브라질은 흑인, 인디언 그리고 백인의 가치가 섞여 있고, 그 결과 잡종의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백인은 거의 라틴과 이베리아에서 브라질을 발견해 범선을 타고 왔죠. 인디언들은 예전부터 여기 있었고요.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으로 도착한 이들이 흑인입니다, 그 악명 높은 노예 매매로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창의력이 있었고, 독창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사람들에 우울함(멜랑꼴리)에서 우리를 지켜 낼 수가 있었습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삶보단 죽음으로 향해 가는 방향이었거든요. 인디언들은 조금 시간을 멈춘 듯했고요. 하지만 흑인들은 활력이 있었어요.”
- 다큐멘터리 “빠스칭냐, 까뽀에이라를 통한 삶”중에서
백발의 머리, 알록달록한 비치 남방, 멋들어진 말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 말을 했을 때, 특별한 영감을 주는 어떤 심연을 건드려 주는 듯했다. 그것은 항상 존재하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어떤 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마치 문이 스르륵하고 열리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가 그저 상식적으로 아는 브라질이란 나라에 깊숙이 존재하는 뻔한 다른 느낌을 알아채버린 것일지 모른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깨달을 수도 있는 법이니깐,
그것이 삼바가 되었건, 축구가 되었건, 아사이베리가 되었건, 아마존이 되었건, 갈색 피부의 모레나가 되었건 혹은 착각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마치날리아란 가수가 있다. 그녀는 현재 브라질에서 가장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삼바 가수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삼바의 제왕이라 불리는 '마칭뉴 다 빌라'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주 예전부터 삼바 음악을 해왔다. 하지만 그녀가 발표한 초기 음반은 전통적인 삼바 음악은 아니었고, '뉴, new'라는 단어가 붙을 만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었다.
그녀가 비로소 대표적인 삼바 가수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리오의 아이'란 앨범을 발매하고 공연 투어를 시작한 후였다. 그것은 그녀에게 큰 음악적인 성공뿐 아니라 최고의 삼바 가수의 이미지를 가져다주었다.
이 앨범은 전통적인 삼바 음악의 매력을 아주 깔끔하고 세련되게 표현했고, 그것은 그녀의 음악적 방향이 되었다.
이 ‘리오의 아이들’ 앨범의 첫 곡은 “마치날리아에게"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데, 바로 그녀의 삶과 음악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에 관한 것이다. 하기야 그녀의 이름은 아버지 마칭뉴, Martinho와 어머니 아날리아, Analia에서 따왔다.
"삼바는 내 핏줄에 흐르네~"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그녀가 삼바의 로열패밀리답게 삼바와 함께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재미있는 것은 끝나갈 무렵에 갑자기 앞에서 부른 노래와는 다른 노래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멋진 놀람을 선사했다.
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또 다른 노래들은 자신의 아버지 마칭뉴 다 빌라가 만든 카니발의 노래들이다. 마칭뉴 다 빌라는 자신의 삼바학교 빌라 이사베우의 많은 카니발 참가곡을 작사, 작곡하였다. 그의 이름 ‘마칭뉴 다 빌라’도 말하자면 ‘빌라의 마칭뉴’란 뜻이다.
그녀는 삼바의 도시라 불리는 리오에서도, 삼바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동네 빌라 이사베우에서, 삼바의 제왕이라 불릴만한 마칭뉴 다 빌라의 딸로 태어났다.
*좋은 밤이야 빌라 이사베우
*흑인들, 백인들, 인디언들이 여기에 다 잡종을 이루네.
*까라자스 부족들, 보름달의 밤 아루아냐! 부족 촌에서 보낸 어린 숙녀.
*1년 동안 내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라랄 라랄 랄랄 노래하곤 했지, 깐뚜아의 깜돔블레 의식에서"
이 노래에서 마치날리아는 마칭뉴 다 빌라의 여러 노래의 구절들을 절묘하게 배치했는데, 낮은음인 ‘좋은 밤이야…'는 높은음으로 시작하는 ‘흑인들… 로 이어지고, 다시 낮은음으로 시작하는 ‘까자라스 밤…’ 뒤에 높은음으로 불리는 ‘1년 동안….’을 배치해서 마치 이 모든 노래가 한 곡처럼 들리게 했다.
특히 높은음으로 시작되는 ‘흑인들, 백인들, 인디언들 여기에 다 잡종을 이루네’라는 구절의 멜로디는 너무 아름다워서 금세 따라 부르고 싶어 진다. (이 구절은 1968년 카니발의 참가곡 ‘옷과 유행의 4세기’의 한 구절이다.)
전 세계에서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유럽의 어느 나라도 아니고 중국도 미국도 아니고, 바로 브라질이다. 브라질에선 어디서나 가톨릭 성당을 만날 수 있고, 또한 가장 많은 이름을 차지하는 것도 성모 마리아의 이름인 마리아이다. 그러다 보니 브라질에서 교황의 방문은 브라질 국민 전체에 뜨거운 관심이 된다. 특히 1980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는 브라질이란 나라가 생긴 이후 가장 큰 이벤트라고 할 정도였다.
교황은 1980년 6월 30일 도착해서 12일 동안 13개 도시를 돌면서 브라질 사람들은 만났다. 브라질의 각 도시는 거대한 성당이 되었고 사람들은 교황을 보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공식적으로 이때가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동되었다고 기록되었다.
교황의 방문하는 각 도시 들은 재정비되었다. 버스터미널은 변경 개조되었고, 치안의 유지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고, 심지어 은행과 행정 기관이 문을 닫기도 했으며, 공연과 쇼는 연기되었다.
이 기간에, 다양한 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교황을 직접 만났다. 특히 여러 계층을 대표한 사람들은 교황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인디오 부족을 대표해서 한 남자가 교황을 알현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 자리에서 아주 뜻밖의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의 땅은 침입당했습니다. 우리의 땅은 빼앗겼습니다. 사람들은 브라질이 발견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스러운 아버지, 브라질은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브라질은 브라질의 인디오에게는 침입당하고 빼앗긴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이야기돼야 할 진실의 역사입니다.”
그 날은 1980년 7월 11일, 장소는 아마존의 도시 마나우스였고, 연설한 이는 마샬 지 소우자, 인디오식 이름은 작은 신(God)이란 의미의 뚜파이였다. 그는 과라니 니앙데바 부족의 리더였다.
그는 인디오 땅이 몰수되고, 인디오의 영토가 불법 개발이 되며, 인디오를 노예화하고 심지어 인디오 어린이를 매매하는 추악한 브라질을 고발하고 싸웠다.
그는 남미 인디오들에게는 지칠 줄 모르는 수호인 이였다.
3년 뒤 그는 결국 총상으로 살해를 당했는데, 총알은 모두 그의 입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를 살해한 사람은 그와 인디오 토지 문제로 마찰을 빚은 농장주였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단 10년을 보낸 후 사면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마샬 지 소우자, 혹은 뚜파이는 살해되기 얼마 전에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예고 살인을 당할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조지 아마두는 바이아 출신의 백인이고, 마치날리아는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의 흑인이며, 마샬 지 소우자는 마투그로수 두 수 출신의 인디오이지만 그들은 모두 브라질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 자신도 얼마나 다른 인종의 디엔에이를 가졌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