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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철 Jan 13. 2019

<브라질 팔도유람>
03.3 리오 데 자네이루

모호 혹은 파벨라

모호 혹은 파벨라


리오에는 유독 이파네마의 일몰의 풍경에 보이는 ‘도이스 이르망이스’ 같은 바위산이 많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에게는 설탕산, 빵산, 설탕 빵산이라고 불리고 영어식 표현인 슈거로프로도 불리는 빵 지 아쑤까이다.

한 청바지 회사의 상표와 비슷한 그림의 이 두 개의 산과 그 사이를 연결하는 케이블카는 바로 리우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설탕빵산이란 이름 덕분에 이 언덕은 한스와 그레텔의 이야기에서 나올 것 같이 설탕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는 않고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이다. 그리고 리오에서는 이런 바위산 혹은 언덕이 많이 융성되어있다. 모호란 말은 그야말로 산이나 언덕을 뜻한다. 그래서 도이스 이르망이스 모호, 빵 지 아수까 모호라고 불린다. 


과거 사탕수수 무역이 성행했을 때 설탕을 고깔 모양으로 설탕 덩어리를 만들어서 수출하였다, 그것을 사람들은 설탕빵이라고 불렀다. 

고깔 모양의 설탕 덩어리와 똑같이 생긴 이 산은 자연스럽게 같은 이름인 설탕 빵인 빵 지 아쑤까가 되었다.

빵 지 아수까는 아주 먼 옛날 아프리카 대륙과 남미 대륙이 붙어 있다가 분리되었을 때 융성해서 만들어진 바위라고 한다. 그러니깐 나이로는 약 6억 년 정도 되었다.

이 높은 바위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광경 역시 환상적이다. 주위에 탁 트인 대서양, 과나바라만, 반대편에 있는 니테로이 등, 이 도시의 모습이 아름답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큰 바위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보통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빵 지 아수까 산은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상으로부터 이 두 개의 산을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있다.

리오에 관광을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케이블카를 다시 설탕 빵 정상에 올라갈 정도로 이 케이블카는 명물이다.

이 케이블카는 물론 편도는 없고 왕복이고 유료이다. 


만일 이런 케이블을 공짜로 타고 모호로 올라가고 싶다면 모호 다 프로비덴시아로 가봐도 좋다.

우리로 치면 서울역에 해당하는 중앙역 앞에는 바가스 대통령 대로가 있다. 과거 우리의 광화문이나 종로처럼 도시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대로의 상징이다. 왕복 16차선에 4차선마다 인도가 있을 정도로 거대한 대로이다. 

이 거대한 대로 앞에는 중앙역과 늠름한 까시아스 궁전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예전에 브라질의 국방부였다. 브라질의 수도가 브라질리아로 옮겨지기 전에 이곳은 브라질의 국방을 책임을 지는 곳이었다.


이 대로의 뒤편, 중앙역의 뒷골목에는 무언가 사뭇 다른 분위기의 거리가 나온다. 시끌벅적한 버스들과 행상인들, 그리고 그 뒤로는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커다란 언덕이 보인다.

이 언덕이 바로 ‘모호 다 프로비덴시아’이다.

이 중앙역 바로 뒤편에 케이블카를 운행하는데 이 케이블카는 모호 다 프로비덴시아로 올라갔다가 반대편인 감부아로 간다.

이 중앙역의 뒷골목과 감부아는 검은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젖줄이자 고향 같은 곳이었다. 삼바를 비롯한 흑인의 영적인 에너지가 이곳에서 시작해서 퍼져나갔다.

감부아는 특히 흑인 문화의 역사지구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역사적인 장소가 있다.

이곳에는 시다지 두 삼바(삼바 도시)라고 불리는 삼바의 펜타곤이 있다. 이곳은 삼바 학교의 거대한 삼바 공장과 같은 곳이다.

마우아 광장과 무제우 아망냐(내일 박물관), 현대 미술관도 이 동네에 있다.


<모호 다 프로비덴시아>

모호는 언덕 혹은 산, 봉우리 등의 의미지만 보통 달동네의 의미로 사용이 된다, 우리나라도 가난한 서민들이 달동네 같은 높은 언덕에 살았듯 브라질도 그러했다.

이런 의미의 말은 모호 말고 파벨라라는 말도 있다. 

모호는 지질학적 의미의 단어라면 파벨라는 빈민촌이라는 사회학적 의미가 있는 말이다.


모호 다 프로비덴시아는 브라질의 첫 번째 파벨라였다.

파벨라라는 말이 생긴 것과 ‘모호 다 프로비덴시아’가 첫 번째 파벨라가 된 것은 모두 카누도스 전쟁에 기인한다,

그것은 모두 브라질 연방 공화국이 새롭게 시작했을 때 있던 일이었다. 브라질의 연방 공화국은 노예해방이 있던 이듬해인 1889년 건국되었다.

왕정이 폐지되고 새롭게 시작된 공화정의 큰 시련은 바로 카누도스란 지역에서 있었던 내전이었다. 이 전쟁은 바이아주의 카누도스란 지역의 지도자 안토니오 콘셀레이루와 그 추종자들이 정부군과의 충돌로 시작된 전쟁이었다. 

처음에 이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서 쉽게 진압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브라질 정부의 연방군은 3차례의 총동원 끝에 겨우 진압시킬 수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당시 연방 공화국의 수도였다. 카누도스 전쟁의 군인을 모집할 때 정부는 전쟁에서 승리해서 돌아오면 집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하지만 군인들이 승리해서 리오의 중앙역으로 돌아왔을 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군대는 해산이 되었다.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하고 집도 없던 군인들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들은 지금의 중앙역과 국방부 뒤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거처로 삼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을 과거 카누도스 전쟁 때의 카누도스에 있던 지역인 파벨라와 비슷하게 생겨서 파벨라 언덕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 언덕은 군인들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거주하게 되었기 때문의 ‘대책(프로비덴시아)의 언덕’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파벨라는 빈민 거주 지역이란 말로 통용되었다.


노예해방이 되고 나서 많은 해방 노예들은 일거리를 찾아서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리오로 몰려들었다. 노예들은 자유를 찾았지만, 어찌 보면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이었다.

중앙역의 뒤편에는 중앙역을 만들기 시작하던 19세기 중반부터 중앙역 공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거주하던 밀집 지역이 있었다. 해방된 노예들은 그 지역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 지역을 사람들은 돼지머리라고 불렀다. 

이 돼지머리는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무엇보다 커다란 대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유로 1893년 강제 철거를 당한다.


브라질의 연방 공화국은 프랑스를 닮고자 했다. 프랑스의 정치와 문화는 브라질의 따라가야 할 목표였다.

밸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을 일컫는 프랑스말)는 브라질 엘리트들에게는 가장 선진적이고 그들이 나아가야 할 롤 모델이었다.

연방 공화국의 수도 리오는 그런 방향으로 도시 건설이 재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의 심장부에 있는 불결하고 없어 보이는 하층민의 주거지 돼지머리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되었다. 돼지머리에 살던 흑인들이나 하층민은 고결한 벨 에포크 도시 이상을 위해서 중앙에서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은 모호 혹은 파벨라에 다시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만 했다.


<마우아 광장과 그 앞으로 히우브랑쿠 길이 시작된다. 이 아름다운 길을 위해서 100여년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쫓겨났다.>

흑인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고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많은 해방 노예들이 집결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리오로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점점 더 많은 모호 혹은 파벨라가 형성되어갔다.

현재 리오에는 763개의 파벨라가 있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리오의 상징은 예수상이나 빵 지 아수까 혹은 해 질 녘의 이빠네마 해변같이 관광엽서에 등장하는 상징도 있겠지만 또한 파벨라 또한 어떤 의미로든 그것이 악명 높은 이미지이든 아니면 삼바나 서민들을 대변하던 리오의 상징이 되었다.

어느 도시나 이름은 다를지언정 이런 빈민촌이 존재한다. 모호, 파벨라, 달동네, 샨티타운, 게토 등등.

브라질의 리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파벨라가 있는 도시이고 그중에 호싱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파벨라이다. 그렇게 브라질의 파벨라는 전 세계에서 빈민촌의 대명사가 되었다.

파벨라가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이곳이 마약상이나 갱단의 활동 본거지가 된다는 점이다. 리우의 파벨라는 마약상이나 갱단이 장악했으며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접근하는 것은 조차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런 마약상, 갱단에 대한 경찰의 대립은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살벌하다. 이런 전쟁을 통해서 유명한 갱단의 우두머리를 사살하기도 한다.

이는 리우나 브라질이 위험한 도시로 낙인찍힌 것은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 이유에는 역시나 부패한 관료나 경찰에 있다.

또한, 처음에 아무런 대책 없이 자신들의 도시가 관광엽서처럼 아름 다운과 발전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사람들을 내몰아 버린 것에 대한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또한,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방관하던 지역의 엘리트나 정치인 행정가 등도 이런 파벨라가 팽창하는 것에 한몫했다. 

예전에 단순히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태양의 햇살밖에 없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에 마약이 유입되고 그것을 뇌물로써 눈감아 주던 경찰들. 

방치된 이곳은 마약과 범죄의 자체 경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자체 경제의 규모는 정말 거대해졌고 대규모 범죄조직이라는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이 경제와 조직은 이미 국가가 통제할 수준을 넘어섰다.

자신들의 만의 시다지 마라빌료소를 만들고 싶던 이기적인 마음들. 공존보다는 분리와 방치를 했던 지배계층들.

더 나아가서 갱단과 마약상과 결탁했던 부패 등이 지금의 파벨라를 더욱 견고한 범죄의 소굴로 만들었다.

결국, 그들이 사는 도시는 더욱 위험해졌고 그것을 통제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

브라질은 브라질리아의 정치인들이 국가를 통치하지만 파벨라를 통치하는 것은 마약상, 갱단이다.

실제로 파벨라는 수많은 길과 계단 등이 거미줄보다 더욱 복잡하게 연결이 되어있어서 이런 갱단들이 숨어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파벨라로 알려진 호싱냐에 ‘벵치베’라는 유명한 갱단 리더가 경찰에게 사살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경찰은 파벨라의 주민으로 위장하여 거의 1년간을 잠복하는 작전을 통해서 그의 거처를 알아냈고 수많은 총격전 끝에 그를 사살했다.

나는 그때 호싱냐의 친구 집에 가보았는데 동네 분위기는 놀라웠다, 시끌벅적한 동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동네는 아주 조용하다 못해 정적이 흘렀고 정말 커다란 검은색 조기가 여기저기 내 걸렸다.

그곳에 사는 보통 주민들은 그 갱단의 죽음을 기뻐했을까?

분명 그곳의 주민들은 또 다른 갱단이 호싱냐를 접수하기 위해서 또 다른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런 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 도시의 이야기이다.

리오는 분명 아름답고 신나고 멋진 도시이다. 그 누구도 이 도시의 이름이 시다지 마라빌료사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시다지 알레르타 (경종의 도시)이기도 하다.

모호는 수많은 삼바의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한 곳이다. 있는 것이라고는 태양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삼바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현재의 그 이면에는 파벨라라는 의미가 주는 어두운 이미지가 잠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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