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을의 연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희 Mar 29. 2018

을의 연애 5

네가 날 진짜 사랑했어도 공감을 안했을까?


주환은 정말이지 연애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연애를 떠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았다. 그는 늦게 일어난 것도 아니었으면서 하루의 첫 연락을 밤 10시에 했다. 복희는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억눌렀다. 바쁘겠지, 뭔가를 하겠지, 이따가 연락 오겠지. 정말 참지 않아도 될 상황에 참을 인을 새겼다.


가끔은 밤 10시 보다 연락이 일찍 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복희가 필요해서였다. 핸드폰을 바꿔야하는데 혼자 못하겠어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혼자 돌아다니면서 비교할 자신이 기 때문에.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취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기 위해. 친구랑 놀 거 다 놀고 집으로 바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 항상 본인의 욕구를 채워야 할 때에만 일찍 연락했다. 가끔 일찍 오는 연락이라 할지라도 복희에겐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카톡을 남겨도 읽지 않았다. 점점 복희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 걸다 지칠 때쯤 주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태연했다. “응. 왜?”라는 말 한마디였다. 왜 연락이 안 되었는지는 절대 먼저 설명하지 않았다. 복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핸드폰에 대고 엉엉 목 놓아 울었다. 그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다는 듯 행동했다. 아니, 모르는 척이 아니라 정말 몰랐다. “복희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내가 갈까?”라고 했다. 그 말이 복희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연락 한 통 안 해놓고 복희가 우는 이유를 모르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복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는 엉엉 울고 있는 그녀에게 말 안하고 울고만 있을 거면 제발 끊으라고 다그쳤다. 할로윈 데이에 친구랑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제발 분위기 망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복희에게 같이 놀자는 말은 단 한마디도 안했으면서 친구를 만나 놀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백 번 양보해서 친구를 만나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어떻게 복희 연락만 무시하고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았을까. 남자친구가 맞는지 복희 혼자 짝사랑을 하는건 아닌지 헷갈렸다. 할로윈데이가 연인의 기념일은 아니지만 다들 기분 좋게 신나게 노는 날 복희는 방구석에 박혀 눈물을 흘려야 했다.


복희가 열 살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였다. 그녀는 너무나도 힘들어 했다. 남자친구에게 장군이가 죽었다고, 너무 슬프다고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답장은 한 글자였다. “헐.” 그 답장을 본 복희의 감정도 정말 ‘헐’이었다. 시리가 그런 대답을 해도 욕이 나오는 상황에 남자친구가 그런 대답을 했으니. 복희는 장군이가 아니라 차라리 그가 죽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죽음도 공감 못 하는 그가 복희의 힘듦을 공감해 줄리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두 글자였다. ‘애도’. 정말이지 미친 것 같았다. ‘애도’는 주환이 즐겨하는 게임에서 좋지 않은(등급이 매우 낮아 가치가 없는) 캐릭터를 뽑은 사람을 약 올리기 위해 채팅장에 유저들이 도배하는 말이었다. 이 두 글자는 복희의 친구가 자살 했을 때 한 말이었다. 고등학생 때 꽤나 가까운 사이였는데 별 것도 아닌 일로 멀어진 친구였다. 복희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이나 흐른 상태였다. 그 친구가 문득 떠오를 때면 연락할까 고민하다 ‘잘 지내겠지’ 생각하곤 연락하지 않았다.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친구가 이 세상에 없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복희는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한 번이라도 연락을 해봤다면, 그 친구가 죽음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 ‘애도’라니. 정말이지 비둘기 깃털보다도 가벼운 새끼.


복희는 주환과 정서적인 교류를 할 수 없었다. 군인일 때는 복희의 모든 감정을 이해한다고 했으면서, 더 이상은 그녀가 힘들고 외로운 걸 지켜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복희는 슬퍼도, 화가 나도, 그가 원하지 않으니 행복한 척을 했다. 그래도 정말 참을 수 없을 땐, 전화를 걸어 지금 이러한 일이 있어서 힘들다고 말해봤지만그의 반응은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보다도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을의 연애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