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쌍둥이를 임신하고 출산했을 때, 의사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쌍둥이 임신 당시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에 고위험 담당 산부인과 의사를 거의 2주에 한번씩 1년을 넘게 만났다. 새벽 3시에 진통이 와서 대충 짐을 싸서 병원에 갔고, 담당 의사 선생님은 헐레벌떡 뛰어오셨고 쌍둥이는 무리 없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선생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를 느꼈고, 한편 그의 역할을 질투했다. 출산이란 경험을 통해, 의사란 직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그 가치와 힘을 느꼈고, 너무 멋지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2019년 뇌하수체 종양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다행이 양성이어서 수술없이 양처방으로 충분히 일상생활이 가능한 병인데,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손품을 팔아 관련 분야에 유명한 병원들 유명한 선생님을 예약하여 진료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도 의사란 직업에 반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업의 가치는 그 어떤 일보다 의미 있어 보였다. 한평생 의사란 직업은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직업이었는데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아픈 곳은 많아지고, 병원에 찾아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의사들은 병을 치료해준다. 세상 제일 똑똑한 사람들의 리그, 돈도 많이 벌고 명예 속 화려하게 비춰지는 직업으로만 인식했을 뿐, 그 직업이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의 크기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몇 일전, 잠을 잘못된 자세로 잔 후 오른쪽 어깨와 목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으나 심해질 뿐이었고 남편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신경외과 병원을 개업하였다 하여 다녀왔다. 병원은 예상보다 컸고, 친구의 직업은 병원의사 일뿐 아니라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친절한 배려와 꼼꼼한 치료로 목은 다시 제상태로 돌아왔다.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 의사 친구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고, 부러웠다.
의사 외에도 세상에는 가치 있는 직업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각자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선호되는 직업이 다르고, 직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과 의미는 가지각색이다.
나와 남편은 월급쟁이로 살아온 지 15년쯤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한 순간부터 내 주위는 온통 회사원들뿐이었고, 회사원의 시각으로 15년을 살았다. 30대 초반 까지는 그래도 종종 졸업 모임도 나가 사업을 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듣고, 새로운 인맥을 쌓을 기회도 종종 있었지만, 차차 그런 모임은 시들해졌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회사 동료들과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술을 마시며 특별한 비전없이 쳇바퀴 도는 삶을 살면서 나는 이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정년퇴직 직전까지의 정해진 삶의 방식이라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던 것 같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그 업무의 가치는 달라진다.
회사원이라도 다 똑같은 회사원이 아니다. 목표의식을 가지고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선배들 후배들도 주위에 많았다. 만족하며 즐겁게 다니는 이들도 있었고,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동료들이 종종 부러웠다.
회사에 쏟아 붙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하자 난 친한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지금 회사 프로젝트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쌍둥이 육아로 너무 힘들어서 그래. 좀 쉬다보면 돈이 필요해서 어차피 다시 복귀할 수밖에 없으니 맘 편히 쉬고 와. 그런데 니가 지금 10년 넘게 한 이 직업이 니가 가장 쉽고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인데 이해를 못하겠다, 얼른 꿈 깨.
나는 내가 만난 의사들처럼, 나의 잠재력과 재능과 능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그 직업 속 나의 가치관과 맞물린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그 직업은 돈을 벌어주는 수단으로 끝날 뿐, 삶의 충만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사고의 전환 만으로도 동일한 직업의 가치는 변할 수 있음은 안다.
나는 내년에 회사에 다시 복귀하게 될까?
이렇게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