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혼자서 여행을 간다 거나, 소풍을 다녀온 적은 극히 드물다. 집 앞 산책 정도야 혼자 잘 다녔지만,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행위에 있어서는 항상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했다.
요즘 들어, 새벽녘 나 홀로 시간의 매력을 알고 나서 보니 조금 더 욕심을 내어 혼자 등산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아침, 코 자는 아이들과 남편을 뒤로 하고, 문을 닫고 나왔다. 모자를 쓰고, 발목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정산에 올라가서는 좋아하는 책을 읽고 떠오르는 글도 하나 써 야지, 책과 노트북까지 챙겨서 터벅터벅 등산로 입구까지 걸어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영장산 정상이다.
영장산은 413.5m 높이로 분당 지역의 산세를 형성하고 있는 작은 산이다. 살고 있는 집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등산로 입구다. 분당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손쉽게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내어주는 고마운 산이다.
도심에서 이렇게 손쉽게 등산이 가능한 나라는 한국 말고 또 어디가 있을까?
한국은 산의 나라. 백두산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산은 제주도에 있는 1,950m 높이의 한라산. 그 다음이 지리산 1,915m, 설악산 1,708m이다. 서울에는 대략 26개의 산이 있고, 그중 가장 높은 산은 837m의 북한산이라고 한다. 영장산은 북한산 높이의 대략 반으로, 작고 유명하진 않은 산이지만, 아파트 빌딩숲 성냥갑처럼 빽빽한 거주지 내,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터벅터벅 등산로 입구로 가는 길이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제 갈 길로 바삐 움직이고 아무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음에도 나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마냥 혼자 쭈뼛했다.
약간 무섭기도 했다. 어둠이 가신 아침이긴 했지만, 길을 잃어버릴 까봐, 혹여나 산행 중 나쁜 사람과 맞닥뜨리면 어쩔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막상 발걸음을 옮기고, 앞서 등반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안심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에 비해 겁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많아지기도 한다. 문뜩 나의 젊은 시절 생각이 났다. 거의 매일 술 마시고 헤롱헤롱 정신없이 기억이 끊긴 채 택시 타고 집에 돌아오던 세상 무서운지 뭘 모르고 무식했던 나의 어린 시절. 그 시절을 별 문제없이 별 탈없이 지나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에 세상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산을 올라갈 때는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새소리와 곤충소리와 바람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올라갔다. 벌레를 워낙 싫어해서, 집 안에 조그만 벌레만 나와도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오도방정을 떨곤 했는데, 그래 산은 너희들 집이지, 귀에 왱왱 거리는 모기 소리도 그리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고, 길을 따라 잘 올라갈 수 있도록 쏟아준 누군가의 땀방울과 노력과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며 산을 올랐다.
산 중간중간 위치한 표지판들과 사람들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정상까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옳은 길로 가고 있구나 확신을 주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울 뿐, 시작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의 막연한 두려움은 무시하면 되는구나. 두려움을 느끼고 있구나, 그걸 알아채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가족들과 종종 등산을 하기도 했지만, 성인이 되어 등산을 해 본적은 손에 꼽힌다. 걷다 보니, 왜 사람들이 더운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고 등산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 산 정산에 올라가면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무겁게 가방까지 지고 올라가는데, 거추장스러워졌다. 힘겹게 오른 산에서 책을 읽고, 노트북을 꺼내 글에 집착하기 보다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자연과 소통하고 싶어 졌다. 하늘도 보고, 푸른 나뭇잎들도 보고 바람을 느끼면서 정기를 받아야지.
대부분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어르신 들이다. 오늘이 평일 오전임을 감안해 봤을 때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이 시간에 이렇게 등산할 여유가 없다. 주말에도 이런 여유를 내는 분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삶의 방식과 태도는, 가치관과 식성조차 많은 것들이 시간에 따라 경험에 의해 변화하게 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삶이 나이때에 맞춰 유사하게 흘러간다. 만약 내 삶의 20대 때, 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더라면, 무엇이 어떻게 변화했을까?
1시간 정도 쉬지 않고 올라오니 힘이 든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내가 정상까지 올라 갈 수 있을까? 정상까지 꼭 올라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만하고 그냥 내려갈까? 그 때 내 옆으로 몇몇의 사람들이 쭉쭉 나를 지나쳐 올라간다
앞서 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씩 힘이 더 낸다.
무조건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 같다.
요즘 명상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한다. 머리를 비우고,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고. 그런데 이렇게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 명상이 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곧게 뻗은 나무들과 푸른 나뭇잎들을 보며, 자연의 흙을 밟으며 올라가다 보면 땀이 송송. 산행 중 만나게 되는 산들바람은 얼마나 소중하고 매력적인지 모른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음에, 건강한 육체에 감사한다. 두 다리가 튼튼할 때 열심히 걷자.
몇 번의 깔딱 고개가 있긴 했으나 별 무리 없이 정상에 올라왔다.
풍경이 그리 감동할 만큼 멋지지 않다. 올라오니 별거 없네. 하는 느낌이 정답이다.
정상이 이렇게 멋지지 않음에도 이렇게 등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과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허무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려오는 길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며 천천히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이 더 위험한데 어디가 끝인지, 어디로 내려 가야 하는지 길을 알고 있기에 마음은 편안하다.
맨발로 걷는 몇몇의 사람들도 보았다. Earthing이라고 맨발로 땅을 밟으면서 자연과 교감하고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처음 홀로 해본 등산은 힘들지만 묘미가 있었다.
굳건하게 서 있는 산은 등반이라는 과정을 통해 삶에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를 키워 줄 수 있는 근사한 학교 같은 곳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등산이 삶과 비슷하다고 하는구나.
새삼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