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지금의 삶이 내게 충분한가?
열심히 공부하여 닦아 놓은 나의 길, 졸업한 학교, 일한 회사, 직업, 가족들, 배경 그런 간판들을 제거하고 나면, 진정한 알맹이가 남는데, 그 알맹이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공장에서 찍어내어 나온 것처럼, 삶에 대한 사유 없이 동일한 목표를 향해 배우고, 달려오고, 여전히 공장 레일 처럼 쭉 뻗어진 앞으로 뛰어가고 있는 삶.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것인가?
우리는 언제부턴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안에서 밖으로 응애응애 태어나 모든 것이 궁금한 유년기를 지나, 명문대학 입학을 목표로 여러 과목들을 공부한다. 대학입시영역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한 지식의 가치는 사치스러운 것이 되고, 꼭 “해야만 하는” 공부에 몰두한다. 성공스레 대학에 입학하고, 자랑스레 졸업하고 취직하여 사회에 진출하고 나면, 그래, 열심히 공부한 만큼 우리의 길은 어느정도 뻔하게 깔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논스톱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쉼없이 돈을 향해, 지위를 향해, 가족들의 안정된 생계 활동을 위해 그 무엇을 위해 나는 끝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직장생활 위기는 보통 3년 주기로 온다고 하나? 내 앞에 깔려진 삶의 모습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는게 맞나? 앳된 우리들의 질문에 어른들은 대답한다. 인생은 원래 이런 것이니 배부른 소리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남들 다 하는 걸 혼자 유난 떨지 말고.
부모를 통해, 학교를 통해, 사회를 통해 주입된 정보와 지식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머릿속에 성벽을 세워놓았다. 성벽이 세워지는지 도통 알아채지 못했는데, 커서 보니 굳건한 성벽안에 내 삶이 가두어져 있다. 하늘까지 치솟은 성벽에 답답함을 느낀 나는 성벽 밖에 과연 어떤 삶이 존재할까, 기어이 기어올라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벽 밖 밑으로 내려갈 용기는 생기지 않아 주위만 두리번 두리번.
엄마가 말하고, 선생님이 말하고, 친구가 말한다.
집 사야지, 애들 키워야지, 학원 보내 야지, 노후 준비해야지.
개꿈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돈이나 벌어. 꿈깨.
물음의 조건은 무지, 앎이라고 한다.
몰라야 물어볼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또 물어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겠지.
인간은 본성적으로 앎을 추구한다.
알고자 하는 것이 지향점, 그러나 선지식이 나의 물음을 방해하고,
너무 많이 알고 있을 때, 알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할 때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들 중, 실제로는 모르고 있는 것들이 태반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에도, 그럼에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인양, “사실”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내가 맞네 니가 맞네 어쩌네 저쩌네 도토리 키재기를 하면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고작 30을 보내고, 40대가 되면 어느 정도 살았다는 섣부른 판단이 시작한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이제 어른으로 칭송되지 않는가. ㅎㅎ 세상을 알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 시작하며, 이것저것 판단하기 시작한다. 나의 주관적인 잣대가 진리인양 무엇이 착각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내 멋대로 살아가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 중,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우리는 성벽 밖 삶에 물음을 던져야 한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왜 사는가?
돈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 사십대 소녀는 꿈꾸는 예비 작가로, 첫 책 집필을 2024년 올해 안에 마칠 계획으로 나아갑니다.
구멍 뚫린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오다가 이제서야 천천히 구멍 메꾸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정을 함께 나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