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마주 앉는 나

by 사십대 소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여기까지 왔다.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서, 잠깐 뒤돌아 묻는다.


나는 나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아주 어렸던 유아시절은 잘 기억나지 않고, 대충 기억 언저리에 남아 있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뒤척여 본다. 가슴 속 반짝거리는 보석을 간직하며 성장하다 파도를 만나 산산히 부서진 느낌이다. 방황했던 대학교 시절, 불행하다 느꼈던 회사생활, 그리고 결혼이란 제도 속 관습적 의무로서 부여되는 역할들과의 쉼 없는 내적 싸움. 결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어떤 세계와의 만남을 열어주었다. 나란 존재의 일부, 어떤 일정 부분의 주도권을 상실한 느낌에 쉽게 미련을 못 버리니 이렇게 사는 삶이 맞나. 여전히 복잡하다.


감사하게도, 여지껏 특별한 이벤트나 외적 역경은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나의 과거 삶을 행복했다 정의하기 보다는 힘들었다고 정의하려는 모양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평탄하지 않고 힘들다. 결과가 별게 없을 지라도 과정은 항상 힘든 느낌이다. 아니, 결과가 별게 없기에 과정은 더욱 더 힘들고, 더 힘들었다 회고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길은 오직 나라는 인간만이 온전히 걷고, 걸으며 느끼고 배우고 깨닫고 그러며 시간 따라 바람 따라 변화했기에, 나의 삶은, 누군가의 삶은, 당사자를 제외한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동일한 경험 속에서도 각기 다른 가치와 깨달음을 얻기에, 그 누구도 같을 수 없고 객관적 판단은 의미가 없다.


뭐, 많은 책에서도 삶이 힘든 것이 당연하다 했다. 그런데 왜 힘든 것일까? 만약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생이 쉽다면 왜 쉬운 것일까? 세상에 태어나 주어지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안에서 무엇을 얻으며 살아가야 하는건지. 어떤 이들은 이런 질문 자체가 의미 없다 하지만, 내게 있어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 여기에 있음을 최근 깨달았다.

인생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의 모습과는 별개로, 나의 내면을 풍요롭게 성장시킨다. 성장과 배움이 풍성한 삶을 동경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너무도 쉽게 내 내면의 외침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모범생이 였던 난 대학생이 되자 마자 갑자기 정신을 잃고 맨날 술을 퍼 마시며 돌아다녔다. 당시 나는 너무도 쉽게, 아. 고등학교 때 오지 않았던 사춘기가 이제서야 왔구나. 하며 누구나 겪는 사춘기란 이름으로 그 상황을 손쉽게 정의하고 나의 외침을, 나의 목소리를 들으려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딱히 나의 20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회사를 10년 넘게 열심히 다니며 일해도, 돈을 벌어도, 아이를 낳아도, 쉽사리 만족되지 않던 한켠의 공허함. 마음의 소리를 우선순위로 챙기지 못하며 충족되지 못한 자아와 항상 충돌하며 지겹게 싸우며 살아왔다.


지쳐 포기할 만도 한데, 그런데 인생은 돌고 도나 보다.

터닝 포인트를 지나치는 듯한 요즘의 이 느낌은 뭐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란 존재에 소홀했기에, 그에 대한 댓가로 난 항상 기대하던 나와 마주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주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쌓인 충족되지 못한 삶의 열망들과 결핍들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동력들이 되었으니.

결국 인생의 경험은 버릴 것 하나 없이 돌고 도는 것 같다.


이렇기에, 바람처럼 빨리 흘러가는 세월의 무서운 속도에서도 그나마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쌓고, 배우고 더 크게 깨달 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니깐.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요즘 들어 눈을 감고 앉아 찬찬히 나를 마주하면,

내가 아는 나는 여기 있고, 내 마음 저편에는 또 다른 한 아이가 앉아 있음을 알아챈다.


나는 분주하고 바쁜데, 그 아이는 다소곳이 앉아 내게 뭔가를 말할까 말까 줄까 말까 가만히 앉아있다.

속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 아이는 또 다른 나인가, 아니면 신인가.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나의 심장을 뛰게 하고,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게 해주며,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가만히 있다 보면, 나는 껍데기 뿐 인 듯한 느낌이다.


그 아이와 매일 새벽 소통하려 마주 앉는다. 곧 마음의 문을 열어 친해지게 되기를 바란다.


내면의 외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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