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닐 때는 불행하다, 힘들다 느끼면서도 안정감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 싫어하는 일을 하든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생에서 여러모로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허구언날 그만두고 싶다, 힘들다, 나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게 외치면서도, 그래도 놀지 않고 밥벌이를 지속해 왔던 행위는 만족감이라는 감정과는 다르게 아주 기초적인, 자존감을 형성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 저 밑 끝바닥부터 차곡차곡 벽돌을 깔아주는, 그런 단단함을 내면에 쌓아주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모르지만, 상황이 달라지게 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내게 참으로 소중하다. 인생의 단맛 같다.
당시, 나는 충족되지 않은 자아실현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긴 시간을 헤매며 힘들어했다, 사실 아직도 끝나지는 않았지만. ㅎㅎ
뭐, 어쨌든 흔들거리는 갈대 같은 마음을 매번 참으며, 꾸준히 돈을 벌면서 밥벌이는 하고 있었기에, 매일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하루’, ‘오늘’ 이라는 시간 안에서만큼은 마음이 조급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보다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나의 운명인가. 하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심에 어찌할 바를 몰랐 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쌓여 미래가 되는 운명 속에서 어쨌건 회사는 출근해야 했고, 오늘 하루 주어진 업무를 정해진 시간 내에 처리해야 했기에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를 살았다. 일이 하기 싫다고 대충하는 건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이라고 냉정하게 처 버리기엔 나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이고, 몇 년을 하다 보면 해당 업무에도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을 잘 했을 때 보상으로 뒤따라오는 성취감, 그리고 최소한의 인정욕구가 일정선 밑으로 내려가지 않게 유지하면서 그럭저럭 그런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몇일 전부터 현재라는, 지금이라는, 내가 서 있는 이 시간 속에서 조급함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여전히 젊으며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창창한 나이임에도, 새로운 것을 탐색해 가는 과정 속 숨어있던 나의 감정들과 맞닥뜨리고 있다.
만약 20대였다면 한시간 걸려 끝냈을 일이 지금은 일주일쯤 걸리는 듯한 느낌은 느낌 아닌 사실이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해서 하면 될 일에 쓸데없는 잡생각을 오지게 한다. 그러면서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으며 나이 먹어 하는 공부는 힘들다는 등 쓸데없이 스스로를 위로 한다. 해야 할 일 앞에서 뒷짐지고 서있으면서 불안해하는 모순적인 나를 몇 번이고 발견한다.
처음 육아 휴직을 시작했을 때는 남은 시간이 많았다. 시간이 많았기에 여유가 있었다. 여유롭게 아이들을 돌보며, 찬찬히 시간을 보내며 여지껏 왔다.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 다섯달, 여섯 달… 일곱 달…. 시간은 바람같이 지나가는데 아직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없으니 요새 들어 조급해지는 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뚜렷한 목표와 확고한 마음은 똑같이, 동일하게 내 안에 있는데, 자꾸 저편의 어떤 아이가 나와서 나를 흔든다. 가끔씩은 매우 세게 흔든다. 새벽 일찍 일어나 찬찬히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 되는데, 하기 전부터 마음이 급해짐을 느낀다.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조급하고, 공부를 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하고, 자꾸 저편의 아이가 나와 마음 속에서 내내 뜀박질을 하고 있다.
몇일 동안 이런 흔들거리는 감정을 경험하며, 스스로를 압박하는 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나를 닦달하는 것도 아닌데, 하기 싫은 의무가 주어진 것도 아닌데, 나는 앞으로 찬찬히 잘 나아가고 있는데,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 앞서는 근심과 우려의 소용돌이 속 매몰될 것 같은데 이런 불완전한 나란 인간을, 갈대 같은 나의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하지 않을까.
불안함과 초조함이라는 내가 만들어 놓은 나의 감정이 나를 집어삼켜 버릴 듯한 상황에, 평온없이 나 스스로를 엮어 맬 공포의 현실을 피하고자 마음을 다스려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확인했다. 진심으로 명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마음을 수련하며, 하루하루를 보내 보자 마음먹는다.
명상, 마음 챙김.
사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다.
마음 챙김, 명상의 중요성은 예전부터 알았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명상을 한다고 해서, 나도 한번 해볼까 호기심에 과거 몇 번 시도를 해보긴 했으나 중간에 흐지부지 끝났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명상의 종류도 가지각색이고, 하는 스타일도 다양하다 하던데, 아직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우선 하루에 10분씩 투자하기로 마음먹는다.
오늘도 일어나자 마자 10 분 명상을 했다.
조급만 마음이 평안함 속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손발과 고개를 흔들며 흔들거리며 외침을 목격했다. 괜찮아 괜찮아, 어린아이 다르듯이 괜찮다 괜찮다 심호흡을 하며 받아들였더니 점점 그 흔들림이 약해지더니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짐을 느꼈다.
호흡을 했고, 발이 바닥에 맞닿아 있는 느낌을 느끼고, 의자에 걸쳐 앉아있는 엉덩이의 묵직함. 무릎에 닿아 있는 손끝의 느낌.
10분이 지났다.
일상 속, 생각이 바다처럼 헤엄쳐 다니는 요즘 이런 시간이 필요함을 더욱 더 심각하게 느끼며 감사함 속 오늘의 명상을 마쳤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스스로의 방법을 터득해 나가야겠지.
최근에 빌린 마음챙김에 책 속 내용이다.
아직은 잡히지 않는 말들이 허공을 날라 다니기에 몇번의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행위 양식과 존재 양식.
종종 우리는 삶에 너무 쫓겨서 미래의 어느 순간에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지금의 순간들을 그냥 지나쳐버린다. 우리는 ‘해야 할일’ 목록의 항목을 하나씩 지우며 산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잠자리에 곯아떨어진 다음날 아침, 다시 쳇바퀴 같은 생활을 만복하기 위해 서둘러 일어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가 자신에게 강요할 뿐 아니라 타인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노아지는 기대감에 휘둘리는 삶의 방식 때문에 더욱 복잡 해진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 보편화된 디지털 기술에 대하나 우리의 점증하는 의존성과 높아지는 영향력 때문이기도하다.
자칫하면 우리는 ‘존재의 인간 (Human being)’ 이 아니라 ‘행위의 인간(Human doing)’이 되어 이 모든 행위를 하는 자가 도대체 누구이며 또 애당초 왜 하는지도 잊어버리기 쉽다.
여기가 바로 마음챙김이 필요한 지점이다. 마음챙김은 주의와 자각(알아차림)을 활용해 행위 양식에서 존재 양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존재 양식으로 옮겨 갈 때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존재에서 나와 더욱더 통합되고 효과적일 수 있다. 더욱이 자신의 몸과 우리가 살아있는 유일한 이 순간에 머무는 법을 배움에 따라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소진 시키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진짜 겨울이 오나보다. 밖이 춥다.
이번 가을에는 낙엽을 진짜 많이 보았다. 이렇게 낙엽이 많이 떨어지는지 몰랐다.
올해만 이렇게 특별히 낙엽이 많이 떨어졌던 걸까, 아니면 원래 가을에 이렇게 낙엽이 많았었나.
회사를 열심히 다니며 놓쳤던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역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인가.
욕심은 아니지만, 둘 모두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