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끊자, 금주

by 사십대 소녀

오래전부터 술은 나와 애증의 관계였다.


나는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한다기 보단, 그냥 술이 좋은 것 같다.

술 한 모금 씩 마시면서 느껴지는 알딸딸한 기분. 한잔 두잔 마실 때마다 현실세계에서 빠져나와 살짝 왜곡된 나만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행복해졌다가 용감 해졌다가 한없이 즐거웠다가. 웃다가 울다가 또 웃는다.


처음에는 술이란 게 신기해서 마셨다.

그렇게 처음엔 호기심으로, 그러다가 재미있어서, 그러다가 짝사랑과 사랑에 울고 불면서.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전공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고민 시시때때로. 그러다가 습관이 되고 취미가 되고, 회사가 힘들다고 한잔, 인생 한탄 한잔.


그러다 술 마시는 것에 대한 문제점은 처음 몸에서부터 나타났다.


30대 중후반부터 체력이 받쳐주지 않기 시작했고. 술 마신 다음날이면 깜쪽같이 사라질 신비로운 취기 앞에서 나는 왜 이렇게 나의 몸을 혹사 시키는가. 몸이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나절만 고생하면 괜찮았었다. 저녁이 되면, 술이 또 보고싶어 지기도 했으니깐.


그런데 문제는 정신도, 그리고 미래도 함께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의 숙취는 하루 이틀 점점 길어졌고, 몇 잔 안 마셔도 1주일 정도가 지나서야 우둔해진 정신이 제자리로 찾아왔다. 술로 인해 낭비되는 시간과 에너지. 침해당하는 나의 온전한 정신에 대해 미련이 생기면서 후회가 시작되었다. 이런 상태에 점차 예민해졌다.


근데 그러면서도 술을 못 끊었다.

빈도와 양이 많이 줄긴 했지만 못 끊었다, 아니 사실 안 끊었다. 그래도 그렇지, 술의 매력을 어떻게 져버려.


이게 미련한건가 아님 인간적인 건가. 정상적인 건가. 다들 이렇게 사니 특별한 건 없나.



오랜세월 허우적 거리다 요새들어야 술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술은 그대로 있는데, 이것이 옆자리에 바짝 다가 앉아 존재감을 과시한다.


온전한 정신.


말짱한 정신다. 내가 가장 많은 것을 catch 할 수 있는 상태. 부지런해지고 무의미하거나 부정적으로 세상을 대하지 않고, 세상과 사람들을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상태. 나를 관찰하고 내게 힘을 주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게 해주는 정신. 나만의 정의로 표현한다.


술에 취한, 숙취에 빠진 정신과는 정반대의 정신이다.

게을러지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힘들고, 뭐든 대충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 두통에 머리는 아프고 짜증나고 그냥 침대 속 잠만 자고 싶은 멍한 정신.


술이 주는 선물도 있다. Momentary Happiness. 근데 이게 나에게 뭐가 그리 이득인가.






이제는 졸업할 때가 온 것 같다.

흐트러지기 싫다.


나는 2021년을 변화의 해라고 정했다.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온전한 정신으로 살자.

최소한 뭔가 실질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절대 금주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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