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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제일이다

by 사십대 소녀

아픈 덕에 좀 쉬었다.


대략 10일 전 따스했던 어느 날 오전, 오른쪽 아랫배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서 응급실에 다녀왔다. 아이 출산 전 고통과 유사했고, 충수염인가 의심했다. 병명을 확인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난소 물혹 터졌음을 확인했다. 출혈이 심하지 않아 별도의 응급 수술은 필요하지 않다 하여 진통제를 맞고, 진통제를 처방받고 퇴원했다.



퇴원 후 몇일동안 걷는데 불편했다. 책상에 앉기도 불편하여 푹신한 소파나 침대에 누워 책만 읽었다. 핑계거리가 생기니 마음이 편했다. 어쩔 수 없는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시키며, 가끔 아플 만도 하네. 통증의 강도가 참을 만해 지니 인간의 마음은 역시나 간사해진다. 별 생각 없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온전히 마음가는대로만 움직이며 1주일을 보냈다. 단순하고 심플했다.








아이들 출산의 고통은 그 이유가 너무 분명하여 고통스러웠지만 답답하진 않았다. 고통의 목적이 명확하니까. 그러나, 이번 아픔은 육체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너무도 답답해 병명이 확인되기 전까지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았다. 응급실 밖으로 뛰어나가 맘껏 숨쉬고 싶었다. 외상이라도 있으면 원인이라도 알지, 몸 속을 내 맘대로 들여 볼 수도 없고 찢어 볼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내 몸을 내어주는 일, 그리고 기다리는 일 밖에 없었다.


응급실 병상에 누워, 한참을 기다려 소변검사를 하고, 또 한참을 기다려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고 CT를 찍었다. 각 단계마다 간호사와 의사의 답변을 기다린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맞나. 나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는 게 없다. 나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끼고, 한계를 깨달았다.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역설적이게도, 내 몸이 나의 주인인 것 같았다. 그게 맞는 거 같다.



그동안 너무 자만했던 건 아닌가.


아프니 눈 앞이 까매지고 우선순위는 명확하게 뒤바뀐다. 뻔한 진실을 새삼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된다.

건강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구나.


응급실 병상에 누워 진통제 좀 달라며 미간에 풀 수 없는 주름을 잡고 씩씩거리던 나는 물었다. 돈 많은 부자가 되었건, 유명하건, 꿈을 이뤄 어떤 최상에 위치에 있건, 그 어떤 것을 성취했던 간에, 만약 몸이 건강하지 않다면, 건강을 잃었다면, 그런 부와 명예, 꿈 꾸던 자아실현과 성취물들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로 남겨질 것인가.


돈 많은 병자와 평범하지만 건강한 사람. 이 중,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분법을 사용하긴 싫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이로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의 깨달음은 항상 경험을 통해 단계적으로 온다. 그러기에 무엇이든 자만하면 안 된다. ‘건강한’ 몸이 default 로 제공되는 것이 아님을, 매력적인 40대 이후의 삶에 행복하게 진입하기 위해서는 좀 더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는 소중한 메시지를 선물 받았다.








응급실에서 7시간의 Lesson을 마치고 집에 왔다. 진통이 심했을 때는 식욕도 없다가 진통이 가라앉으니 어김없이 식욕이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김밥을 먹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이후, 몇 일 동안 집에서 요양을 하다가 뜬금없이 햄버거가 먹고 싶어, 아픈 배를 움켜잡고 신발을 질질 끌고 집 앞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와 프라이드를 먹었다. 엉덩이를 걸치고 삐뚤게 앉아 우구적거리며 먹었다. 맛있었다.

따사로운 햇살 속 창 밖으로 건강한 두다리로 사뿐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멀쩡하게 불편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꼭 고통에 처해봐야 아는 것인가. 생각의 얇음과 습관적인 삶의 경솔함을 또 다시 마주하며 항상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지, 마음에 되새긴다.

사실, 나이 불문 멀쩡하고 건강한 육체만큼 멋지고 매력적인 게 없는 것 같다. 그 만큼 행복과, 활력, 용기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건강을 챙기리라 다짐 몇일 만에 아픈 배를 움켜쥐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욱적거리며 맛있게 먹는 꼴이라니. 역시나 인간이 참으로 모순적이구나 피식 웃는다.


아픔.jpg 아프지 맙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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