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게 꿈틀꿈틀

by 사십대 소녀

뭔가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현재까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하다가 잘 안되면 쉬고, 멈췄다가 놀고. 으악. 일정이 하루 이틀 자연스레 뒤로 밀려간다.


아, 시작하기가, 아니 집중하기가 왜 이리 힘든 걸까.


고작 2주 지났을 뿐인데, 마음이 벌써부터 초조하고 불안불안, 앙상한 가지에 달린 나뭇잎 마냥 흔들흔들 바람에 휘날려 떨어질 것 같다. 너무도 익숙하여 그 역할마저 잊고 있었던 키 큰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고 보니, 그렇게 동경했던 자유 뿐 아닌, 불안감이란 녀석도 함께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고 파도처럼 철썩거린다.


인생이 참으로 신기한 게, 15년 직장생활 했던 나의 과거가 벌써부터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직장에 다니는 것만이 답이라며 꾸역꾸역 힘겹게 그렇게 나의 20대 중후반과 30대를 보냈다. 빈틈없는 출/퇴근형 대다수의 평범한 회사원의 스케줄표에 따라 그렇게 성실하고도 지겹게 나의 젊음을 흘러 보냈는데,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항상 마음 속 빈틈이 있었던 과거의 시간. 잊고 싶어 그런 건가.



과거가 무엇인가 돌이켜보게 된다.

그때는 회사생활이 참으로 힘든 나의 현실이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꿈이 되어 버렸다. 꿈은 무의식의 세계라고 들 하는데, 난 별 의미 부여 없이 흘러 보내고 잊어버린다. 잊으려 하지 않아도 잊혀 지는게 꿈이다.


어찌 보면 과거는 꿈 같다. 꿈같이 흘러가버리는 과거.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기억으로 남은 과거를 들들 볶아 혼자 정신승리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내가 미련해 보일때도 종종 있다.


암튼, 직장인이었던 나의 과거는 이렇게 꿈처럼 스쳐 지나가 버렸다. 현재의 나를 통해 그 시간이, 그 시간 속 내가 있었음을 증명할 뿐, 과거는 마치 꿈처럼, 기억 이외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꿈과는 달리, 과거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과거와 전혀 다른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지금의 삶을 바라보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하게 있음을 까먹지 않게 해주는 감사한 비교의 대상이 되어 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메세지를 던져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종종 해준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가.



과거와 달리, 현재 나는 너무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 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너무나도 똑똑하게 자기합리화 시스템을 바로 돌려버린다. 이유를 대고, 허락을 묻고 스스로 승인한다. 무엇을 해도 뭐라 하는 이 없으니 입사한지 몇일 밖에 되지 않은 경력? 아니, 이 분야의 신입사원이 대담하게 휴가를 쓰고 여행을 다녀왔다. 보통 회사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다. 입사한지 몇일이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휴가를 쓰는가. 눈치 보며 적응하기도 벅찬데 추가로 눈치밥을 먹는 건 굉장히 현명하지 못하다.


암튼, 이전 회사 퇴사 직전 바로 전날, 복지차원으로 제공되는 미사용한 숙박권이 괜스레 아깝단 생각에 서둘러 예약을 잡고 아 휴가나 가자. 하나밖에 없는 직원이자 사장인 난 그렇게 정하고 휴가를 다녀왔다. 그럼에도 사실, 여행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걸 보면, 눈치 주는 이가 아무도 없던 것은 아닌가 보다.


반짝반짝


휴가는 바람처럼 지나가고, 눈을 다시 떠보니 책상 앞이다.

남편은 회사원 답게 회사로 출근했고, 난 초조함과 불안감에 휩싸여 몇일 노느라 돌처럼 굳어진 머리야 어서 빨리 돌아오렴 발을 동동거리며 초조함에 앉아 있다. 몇일 놀았다고 머리가 띵한 게 죄책감과 걱정 아래, 아아, 할 수 있을까 아아아아악.


가장 어려운 건 꾸준함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의지.


이 역량은 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 해당되는 것 같다.


작년 한 해 참으로 고마웠던 독서, 사색, 명상과 기도의 습관들. 그것들로 인해 많은 기쁨과 배움, 깨달음과 평온함을 얻었음에도, 지속적인 수련을 멈추는 순간, 수련의 결과물들은 너무나도 쉽게 머릿속 지우개로 지워진다. 머릿속과 가슴, 마음이 과거의 상태를 항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회귀해 가는 경험.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래서 체계라는 것이 필요한 건가. 학교나 회사. 꾸준함과 지속함을 지탱해 줄 수 있는 통제의 힘.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에 차 다짐을 하며, 떵떵거리며 마음 속 굳은 결심을 한지 몇일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불안과 초조함에 예민해진 현재의 마음을 느끼며, 인간은, 나는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임을, 그러기에 항상 겸손해야 함을 다시금 마음 속에 새겨 넣는다. ㅎㅎ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 단번에 지켜지는 일도 쉽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일들도 많다. 마음은 조급함과 욕심, 불안감에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시간 속 여유로움을 쉽사리 붙잡지 못하네.


좀 필요한 것 같다, 회사 내규 같은 규칙.


꾸준함을 가져가기 위한 나와의 약속.


우선적으로 나의 행동양식을 좀 시스템화 시켜야 할 필요성.


워워, 그리고 급할 건 아무것도 없다.




이번주 다녀왔던 대천 해수욕장.

눈으로만 담기지, 사진으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100% 그대로 담을 수 없다.


바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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