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받는 인간관계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거기엔 자연스런 유연성이 없고, 의무감이 있는 관계들이다.
의무로 맺어진 관계,
일종의 사회적 합의같은 일방적인 의무가 부여된 듯한 일방적인 관계들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는 꾹 참고 이겨낼 필요가 있는 것이 돈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갑을의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
나의 부모, 형제와들과의 관계, 애증의 관계.
그래도 그나마,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혹은 의지를 총 동원해 애써 참으려는 관계라 정의하겠다.
그러나 결혼이란 과정으로 얽히며 튀어나온 관계들.
특별히 유교라는 사상으로부터 주입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치들, 효에 대한 기준선들 속 아직도 무겁게 앉아있는, 의무감에서 맺어진 이런 관계들은, 사실 이것이 없기 전보다 못한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무엇을 하든 행복감을 느끼려면 자유로움이 보장되어야 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나의 의지와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하는 것.
그러나 결혼 속 튀어나온, 대표적으로 며느리의 역활 등은 마음과 의지가 움직이기 전에 의무라는 돌덩이가 그 앞에서 마음을 짓누르고 있으니, 도리어 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고, 보고 싶은 마음이 줄어 들고, 얽히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드는 이상하고도 요상한 마이너스 적인 관계이다.
이는, 무엇을 특별히 하지도 않아도 피해의식에 쉽게 젖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 힘의 균형이 깨진 일방적인 관계이기 때문인데, 여전히 한쪽에서의 평가만이 평가되고, 대두되며, 그 평가가 좋지 않은 것이 마치 그 사람의 인성을 나타내는 양, 천천히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실상은 그렇다. 그리고 관계가 얹혀져 있는 상황은 가지각색인데, 평가의 기준점이나 의무의 정당성은 그 상황을 배려해주지 않고, '무조건' 라는 단서가 붙어 사람의 마음을 옥죈다.
그러기에 이런 관계는, 관계가 맺어지기 전부터 며느리들과 시부모와의 갈등이 뿌리처럼 심어져 있기에, 서로의 정의가 수정되기 전까지, 혹은 그 의무감의 보상으로 금적적으로 되받는 다거나 등의 보상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어 지지 않은 한 결코 좋아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인성 좋은 아이도, 시댁의 '시' 자만 들어도 싫어하는 경우가 놀랍지가 않다. 이런 마음 역시 인간의, 일종의 자기 보호본능에서 나오는 것 같다.
조선시대 때부터 유교라는 사상을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정치 사상, 국민 종교로 끌고 왔다는데
이래서 나라가 결코 잘 될 수 없지 않았었나 이런 생각도 든다.
의무감에 시달린 국민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시대가 달랐더라도
사람 마음과 본능의 구조는 동일했을 터인데,
과연 누구를 위한 종교이고 문화였을까
참고 견디며 살아온 조상들이 대단한다.
그나마, '당연한 것이다' 고 봤던, 그 시대적 배경이 그 힘듦을 어느정도 상쇄시켜 줬겠지.
뭐든, 마음이 가장 큰 역활을 하니깐.
그래서 결론.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관계속 의무감들을 탈탈 털어버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살려면,
내가 자유롭게 세상을 바라보려면,
내가 행복하고 별것도 아닌 사사로운 일 따위에 감정 소비를 하지 않으려면.
탈탈 털어버린 다고 관계가 나빠질까
의무감이 있는 관계의 끝은 결코 좋을 수 없을 뿐음을 누구나 알지 않는가.
서로를 옥죄며 벽을 세울 뿐이다.
의무만 빼버리면
그러면 평화로워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좋아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