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복의 널뛰기_제3화
각성하여 불행해진 A에 관한 이야기까지 했던가. 자신을 분석할 수는 있게 되었으나 수용할 지혜는 없었던 그 어리석은 돼지 말이다. 머무는 공간이, 꾸려나가는 삶이 흡족하지 않게 된 A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던 것처럼 별생각 없이 만족하며 살던 내게 현타가 오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 무렵이었다.
2017년부터 경기도의 야간 자율 학습이 사실상 폐지되어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던 2004년부터 십여 년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자습 감독을 했다.
2010년에는 처음으로 고3 담임을 하게 되었는데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0교시 자습 지도, 7교시 후 보충수업 2시간, 야간 자습 감독까지 하고 나면 밤 10시였다. 틈이 나면, 반 아이들의 미래를 어깨 위에 몽땅 얹은 기분으로 입시 상담을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교무실을 나설 때면 내일 뵙겠습니다 라는 인사보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가 더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될 정도였다.
그 당시 교무실에는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는 선생님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한창 팔팔한 십 대도 아닌데 고3의 삶을 똑같이 살아내려면 체력의 고갈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황이 허락할 때 잠시 잠이라도 자두어야 야간 근무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이래저래 압박감이 컸던 2010년은 다른 의미로도 특별했다. 교원 능력 개발 평가가 처음 실시됐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만족도 조사란 것이 여기저기에서 일상처럼 행해지지만 그 시절만 해도 이야기가 달랐다. 교사가 성직이냐 아니냐를 두고 토론한 기억이 멀지 않은데 서비스 업종처럼 고객(?)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 맘 편할 리 없었다.
평가하는 주체로 살다가 갑자기 평가를 받는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위축감과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게다가 평가 권한이 어린 학생들에게도 주어진다는 것이 신뢰도 낮은 평가에 무작정 내던져진 모양새라 조금 굴욕적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는 완전히 소진되었다. 이름하여 '번 아웃 증후군'.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나무위키 참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감당하느라 쩔쩔매다가 고민 끝에 정신과에 찾아갔을 때, 의사가 내려준 판정이었다.
바보 같은 말이지만, 나를 지탱하던 에너지라는 것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그것이 사라진 후에야 알았다. 사람은 밥심으로만 사는 게 아니었다. 성취감이나 긍지, 자기만족 같은 것이 에너지의 근간을 이루었다. 노력을 기울여 성과를 거두고, 뭔가 근사한 일을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에너지 삼아 살아왔다는 사실이, 뒤늦게서야 보였다. 이미 에너지는 바닥났고 누수의 주범은, 일이었다.(20231220)
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