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출근시켰어요

나를

by 박기복

새벽에 잠이 깼다. 2시 47분. 잠옷이 축축할 정도로 땀을 흘렸다. 이불을 돌돌 감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 곧 5월인데 여전히 두툼한 솜이불이다. 몸을 식히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누워 얇은 담요를 덮고 다시 잠을 청했다. 잠들기까지의 고요가 어색해 음악을 틀고 30분 뒤에 꺼지도록 타이머를 맞춰둔다.


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첫 알람에 일어날 수 있는 날도 있지만, 오늘은 안타깝게도 그런 날이 아니다. 10분 단위로 반복되는 알림을 부지런히 미뤄가며 6시 40분에야 겨우 소파에서 일어난다. 기분이 좋은 날엔 눈이 번쩍 떠지고 몸이 가벼운데 대부분의 아침은 영 쉽지 않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들은 미정의 대사를 떠올린다. 소를 몰듯이 어렵게어렵게 나를 끌고 간다는 말. 그 말을 듣고 구씨도 안하던 청소를 했었다. 나도 그 말을 되새기며 느릿느릿 욕실로 향한다.


의식을 차리자마자 어제 생각이 난다. 어제는 월요일이었다. 오래되고 고약한 지병, 월요병을 여러 해 앓고 있다. 단축수업이라 네 시간이던 수업이 두 시간으로 줄었는데도 즐겁지가 않았다. 꾸역꾸역 억지로 해냈다. 잘못 보낸 하루 같은 기분으로 남았다. 괜스레 위축되어 오늘 아침까지 기분이 안 좋은 건가 보다 하다가 문득, 고작 하룬데?라는 생각을 한다. 내내 잘 살다가 고작 하루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인데 왜 기분이 안 좋아야 하나, 너무 깐깐한 거 아닌가 스스로에게 서운하다. 나에겐 매 순간 너그러움과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음악들을 골라 듣고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10분의 아침 명상과 그 밖의 아침 루틴들을 도장 깨듯 해가며 서서히 텐션을 올린다. 남들이 볼 땐 그냥 편하게 입었구나 생각하겠지만 나름 고심해서 옷을 골라 입고 마음에 드는 양말을 골라 신고, 등굣길 차 안에서 마실 음료를 고민한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니까 달달한 게 좋겠지. 캔커피를 챙겨 가방에 넣는다. 까탈스러운 아이를 다독이고 얼러서 등교를 시켜야 하는 엄마처럼 나는 그렇게 아침마다 나를 돌보고 겨우 달래 출근을 시킨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우울한 기분이 때때로 찾아오고, 그 여파로 무기력에 빠졌던 고난의 시기를 겪은 뒤로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참 많은 일들을 한다. 나의 아침 루틴은 말하자면 하루를 망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가끔 너무 기분이 다운되는 날이면 출근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뒤에 아예 매트를 깔고 가만히 삼십 분쯤 누워있다가 출근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가면을 쓸 수 있다. 사회적 동물로 하루를 잘 버티다 돌아올 수 있다.


밖으로 나서기 직전 창밖을 봤다. 하늘이 파랗고 땅은 젖어있다. 밤새 비가 왔던 모양이다. 비 온 뒤 말끔한 하늘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화요일은 남편이 차 없이 출근하는 날이라 가는 길에 내려주는데 오늘따라 조잘조잘 떠들고 싶어진다.


-와 하늘 봐. 날씨 너무 좋다. 아 기분 좋아. 나는 날씨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거 같아. 오빠, 나는 햇빛이 왜 이리 좋지? 나는 아무래도 식물인가 봐. 식물인간…은 좀 그렇고 그래 식물성 인간! 나는 동물성 인간이 아니라 식물성 인간이야.


남편의 심상한 대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기분이 좋다. 깨우고 씻기고 입히고 기분을 달래느라 아침부터 엄청 애썼는데 오늘은 살살해도 될 뻔했다. 모든 것이 쨍한 하늘 덕분이다. 햇살에 환장하는 나는 진정 식물성 인간. 식물성 인간이라기엔 고기를 너무 좋아하긴 하지만. 이래 봬도 취미는 광합성이다.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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