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추억
그들을 처음 만난 건 2020년 2월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슬슬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새 학기를 앞두고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업무분장에 따라 우린 2학년부라는 같은 부서에 배정되었다. 일 년간 한 교무실에서 동고동락할 예정이었다. 팬데믹이 향후 2년이 넘도록 일상을 삼킬 것임을 아직 몰랐지만 전에 없던 개학 연기 사태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온라인 개학으로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며 불안과 불만 속을 헤매던 혼란한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앞일을 알 수 없었다. 현직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학사일정과 관련된 모든 것은 뉴스로 전해 들어야 했다.
개학이 연기되었지만 출근은 했다. 학생, 학부모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가며 첫인사를 했던 것을 시작으로 위기대응을 위해 수차례 회의를 하고, EBS 온라인 클래스, zoom을 이용한 실시간 수업으로 몇 차례나 난리를 치렀다. 학년부장님과 12명의 담임교사들, 이렇게 13명은 그야말로 험난한 파도를 함께 넘었다. 조회부터 종례까지 모든 건 원격으로 이루어졌고 매시간 출결을 명확히 확인하는 것이 담임의 최대 업무였다. 등교했다면 품을 따로 들일 것 없이 처리되는 일이지만 원격수업에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학생들이 주어진 수업을 챙겨 들었는지를 확인하는 건 교과 담당 교사의 일이지만 마감이 임박하도록 수업을 듣지 않고 버티는 아이들이 기어이 수업을 이수해서 출결을 인정받도록 하는 것은 담임의 몫이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독려하고 독촉했다. 안되면 학부모를 독려했다. 연락이 닿지 않고 말을 도통 듣지 않는 반 아이들을 향해 토해내듯 쏟아내는 푸념들을 서로 받아주며 그렇게 파도를 넘었다. 나 혼자 타고 있는 파도가 아니라는 것에 위안받아가면서.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좋은 동료였다. 다들 배려가 몸에 밴 사람들이었지만 쉼 없이 발생하는 돌발상황 속에서 머리를 모으고, 마음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학년부장님의 리더십 덕분이기도 했다. 모두 스스로가 복 받은 존재임을 또렷이 알았다. 그해 우리가 근무했던 교무실은 늘 웃음으로 시끌벅적했다. 그렇게 즐거운 근무환경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어제 정식으로 첫회식을 했다. 13명이 합법적으로 모일 수 있게 되기까지 참 오래 기다렸다. 2020년 2월에 만나서 2년도 더 지난 2022년 5월에. 그 사이 부장님은 어느 중학교의 교감선생님이 되셨고 12명의 담임교사 중 7명이 다른 학교로 적을 옮겼다.
회식 장소는 일산의 어느 고깃집이었다. 만남의 순간 괴성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반가운 얼굴들. 특히 그 해를 마지막으로 근무지역을 옮긴 나는, 정말로 오랜만의 대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은 긴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일 년을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어려움을 함께 통과한 사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내 맘 같지 않은 학교 분위기에 대한 성토와 에너지를 동나게 하는 힘든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일상은 늘 마르지 않는 대화거리였다. 그 사이 누군가는 둘째를 갖게 되고, 또 누군가는 자랑할만한 상을 받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들을 함께 축하했다. 병원 신세를 질 예정이라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지만, 좋은 일도 안타까운 일도 진심을 다해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 줄 것이었다. 7월의 어느 주말로 1박 2일 MT 날짜를 못 박고 나서야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매일매일 만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참 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도 물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 13명이 한자리에 모여 근무할 날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매 순간 자각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강물처럼, 때론 화살처럼 지나갔다. 아침 출근을 하고 나니 내 곁의 동료들이 새롭게 보인다. 올해도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게다가 유례없이 순하고 착한 아이들을 만나기까지 했다. 오늘도 귀한 시절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 복된 만남을 까먹지 말기를. (2022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