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랄라 Mar 20. 2020

너무 느려서 괴로워요

스웨덴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다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지 내일이면 딱 2주가 된다.

   2020년 3월 19일... 확진자가 1400여 명을 넘어선 스웨덴 당국에서는 아직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우리 딸은 무단결석이다. 남편과 여러 번의 토론 끝에 결정했는 데, 기저질환(천식)을 가진 남편의 건강이 가장 큰 선택의 결정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이 편찮으셔서 학교에 못 나오시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들이 감기에 걸려도 그 선생님이 코로나인지 감기인지 알 수가 없다. 스웨덴 당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500여 명으로 늘어갈 무렵, 중증 환자나 고위험군이 아닌 코로나 의심 환자에 대한 진단 검사를 전격적으로 멈춘다는 발표를 하였기 때문이다. 진단에 쓰이는 인력과 노력을 중증환자를 돌보는 데 더 써야 한다는 정부 방침은 병원 시설 및 의료관계 종사자들의 부족으로 선택적 집중을 해야만 하는 상황 앞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여론도 있었지만 나와 같은 많은 일반인들에게는 동시에 공포감을 불러온 뉴스이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닌 불확실성이라는 전제 조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선택과 결정의 장애를 불러오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선생님들의 감기로 보이는 증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인지 실제 감기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학교에서는 건강한 아이들은 학교에 나와야 된다는 방침을 주고 있으니, 나처럼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내기 시작하는 학부모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딸아이 담임 선생님의 학부모 알림에는 15명, 17명, 결국 오늘은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결석을 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몇 달 전에 신생아를 출산한 네 자녀의 아빠이기도 한 담임 선생님의 고충이 하루하루 느껴지는 상황에서 아직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조치와 상황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3월 17일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관에는 스테판 총리의 기자회견에 대한 안내가 공지되었다.

< 주 스웨덴 대사관의 스테판 총리 기자회견 안내 공지사항>


   대학교와 고등학교, 성인 대상 교육기관이 전격적으로 원격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지만 아직 그보다 어린 학생들에 대한 정부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하였다. 의료진들의 자녀 케어 문제가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고, 의무교육을 봉쇄하는 데 있어, 선제적으로 제정되어야 할 법이 있다고 하는데 그 법을 오늘 오후 4시경 의회가 정한다는 것이다. 잠시 산책을 다녀와 보니 학부모 단체 채팅 방에 3월 21일부터 의회가 스웨덴 정부에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폐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결정의 속도가 느려도 참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결정할 때 다수의 회의를 거쳐 모든 의견을 수렴하고 여러 번 심사숙고함의 과정을 거쳐 일이 결정되는 중장기 플랜에 강한 스웨덴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신속한 결정이 최우선인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 가족이 사는 스톡홀름도 지역감염이 이미 시작되었고, 고위험군의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검사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2주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서 많은 상념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혼자 셀프 패닉인 상태도 되어 보고, 스웨덴 정부와 보건 당국, 학교지침에 울화가 치밀어 보기도 하고, 한 때는 될 대로 되라등의 자포자기일 때도 있었다. 지금은 스웨덴 정부에 대한 바람이 사라진 상태이다.


   스웨덴 의회, 정부, 보건당국, 학교에 이르는 꼼꼼한 결정 과정이 성격 급한 아줌마에게 ‘선택도 개인이, 책임도 개인이 지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배짱을 안겨다 줘 버렸다. 오늘도 마음 편하게 아이의 결석을 학교에 보고한다. 많이 결석해서 출석에 불이익이 생긴다고 해 본들 유급밖에 더하겠는가? 가족의 건강과 안전이 우선이지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1년 더 같은 학년을 다닌다고 아이의 유구한 인생에 그다지 큰 영향이 있을랴?라는 살짝은 비정상적인 생각이 지금도 유효하다.


   조급하고 안절부절못한  대한민국 토종 아줌마의 스웨덴 살이는 새로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출현 앞에서 이제 적응이 아닌 내 식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혀 버렸다. 오늘도 한국과 스웨덴 뉴스, BBC, CNN을 떠돌며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소식들을 살펴본다. 역시 한국 뉴스가 제일 편하다. 한국 정부가 제일 좋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계속 기다리라고 얘기하는 스웨덴 정부 앞에 항복한다. 나는 학교 안 보내련다. 우리 아이!!!

매거진의 이전글 무뎌져 가는 마음 다시 세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