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2005년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으로 2020년 스톡홀름이라는 북유럽의 한 도시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소중한 만남들, 어렵고 힘들었던 삶의 순간들, 함께 웃고 함께 나눴던 많은 추억들이 어두운 밤을 채운다.
# 자전거를 타고 출산하러 간 친구 <미국에서>
당시 모아두었던 돈을 어학연수비에 투자하고 있었던 그녀에게 인터내셔널 오피스에서 일하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풍요롭지 못한 경제적인 상황에서 하는 늦깎이 어학연수인지라 그녀는 그녀보다 한 참 나이 어리고 쿨해 보이는 부잣집 한국 어학연수생들과의 만남이 영 불편하던 차였다. 인터내셔널 오피스에서 만난 Patricia는 그녀에게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추천해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인터내셔널 유학생 와이프들의 모임>이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오래된 고향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편해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명랑하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던 그녀는 곧 일본, 대만, 터키, 브라질, 말레이시아, 한국으로 이루어진 International cooking club을 창시하였다. 영어도 익히고 서로의 문화와 요리, 인생을 주제로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녀에게 새 인생이 펼쳐졌다. 유학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생활의 많은 지식들을 배웠다. 쿠폰 활용법, 중고 마트, 시간대별 쇼핑 할인 정보 등은 알뜰할 뿐만 아니라 배워가는 재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말레이시아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임신한 상태의 말레이시아 친구가 그녀에게 연락이 온 날은 고정적으로 cooking club의 만남이 있는 날이기도 하였다.
"안녕, 나야... 다들 모였어? 사실은 오늘 나는 못 갈 거 같아, 방금 애를 낳았거든."
"뭐라고? 애를 낳았다고... Oh, my god... 왜 얘기 안 했니? 병원까지 태워다 줄 수 있었는 데..." 그 당시 유일하게 차가 있었던 (10년이 넘어가는 엘란트라였지만--) 그녀는 출산일이 다가오던 말레이시아 친구에게 재차 당부를 해두고 있던 터였다. 언제라도 라이드가 필요하면 달려가겠노라고 말이다.
출산 소식에 놀란 그녀에게 말레이시아 친구가 조용히 웃으며 얘기하였다.
"음, 괜찮아. 자전거 타고 왔어.. 걱정 마."
그녀보다 대여섯 살이 어렸던 말레이시아 친구의 대답에 그녀는 또 한 번의 잔잔한 깨달음을 얻는다.
<강하다> 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는...
<오래된 사진첩에서>
# 진정한 중산층의 삶을 살아내는 Penny <영국에서>
그녀가 만난 첫 영국친구 Penny는 키가 183cm였다. 그녀도 한국 여자의 평균 키보다는 훨씬 큰 키였지만 Penny의 키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Penny는 심리 상담사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는 데, 똑똑한 영국 캠브리지 사람들 사이에서 학사 자격증을 가진 심리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하였다. 남편 Richard는 목수일을 하는데, 이것도 수입이 좋진 않다고 하였다. 그녀와 Penny는 캠 강을 거닐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Penny는 그녀에게 자신이 왜 자연주의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철학에서부터 삶의 가치관, 본인이 읽은 책을 많이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녀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Penny가 하는 선택들에 관한 것이었다.
Penny는 항상 여행을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하였는 데, 이번에는 돈을 좀 많이 모았다고 하였다. 그녀에게 4월 부활절 방학에는 기필코 아들 Harry를 데리고 런던에 가서 공연을 보고 오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녀도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하지만 얼마 뒤, Penny는 그 돈을 Brexit을 반대하는 London strike에 참여하는데 모두 쏟아부어 버리고 말았다. Penny를 만난 4년여간의 세월 동안 Penny는 늘 그런 식이 었다. 자동차를 수리할 돈으로 채식주의자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인다는 자연주의 캠프에 가서 명상을 하고 돌아와 사시사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Penny가 소비하는 돈의 주된 흐름은 늘 Penny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관과 삶의 철학이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였다. 유럽인들에게는 중산층을 구분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가 일정 수준의 좋은 아파트나 차의 소유와 같은 소득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지닌 가치관을 지켜낼 용기가 있는가? 의 물음에 Yes!라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 그녀에게 Penny는 말 그대로 진정한 영국 중산층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Penny>
# 투쟁적인 난민 친구들의 삶 <스웨덴에서>
40이 넘은 나이에 도착한 스웨덴은 그녀에게 여러 가지 도전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백기를 든 스웨덴어 배우기에 한창 열심이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믿었다. 본인도 스웨덴어를 곧 배울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3개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그즈음 그녀는 스웨덴어를 접어 버렸다. 그녀를 둘러싼 많은 핑곗거리들이 오락실 앞에 두더지들처럼 도처에 고개를 쑤욱쑤욱 시도 때도 없이 내밀고 올라왔다. 아무리 망치로 때려 보아도 결국 두더지는 다시 올라왔고, 그녀의 스웨덴어는 그렇게 저 멀리 가버렸다.
그녀가 잊지 못하는 건 짧은 3개월 동안 그녀가 배운 스웨덴어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인연이었는데, 사연들이 참 다양하였다. Sara는 어린 아들과 딸을 둔 아르메니안에서 온 친구였는데 남편과 함께 둘째 딸을 데려오기 위해 6,000 euro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오전에는 어린이 집에서 일을 하였고, 오후에는 수업을 받는 생활을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히 이행하였다. 페루에서 온 친구 Ann은 26살이었는 데, 40이 넘어가는 그녀의 나이를 묻고는 뒤로 넘어갈 듯이 놀라워하였다. 그녀에게 "너 우리 엄마랑 나이 똑같은 거 알아?" Ann의 말에 그녀도 너무 놀라 뒤로 넘어갈 뻔하였다. Ann은 오전에는 빵을 구워 케이크를 팔고, 오후에는 수업을 받으러 온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그녀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쉽지 않은 사연들이 있었고 그 사연 앞에서 말을 잇기가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신기한 것은 대부분 그런 우울한 이야기들이 주된 화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웃고 떠들 수 있는 짤막짤막한 화제들이 더 주된 화두를 이루어 가는 것이었다. 유학생활 나름 고생하였다고 자부하였던 그녀에게 하루하루 투쟁적인 삶을 살아가던 그 친구들이 준 교훈이 크다.
<행복하자!!!>
# 만남
만나지 않았었으면 더 좋았을 법한 인연들도 있다고 한다. 그녀가 감사한 건 스쳐 지나간 인연들조차 의미 있고 진중했던 만남들이 그녀의 해외 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국적을 달리했던 많은 친구들의 삶 속에서 나눔의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쁨이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녀도, 그녀의 그리운 친구들도, 자신의 인생을 가볍게 살아내지 않았던 그 시간들에 신의 조그마한 축복이 있었으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