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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Apr 05. 2020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이길 수 없다

한참을 스웨덴의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에 집중하고 있던 나에게 딸아이가 말을 건넨다.

“엄마, 맨날 그 뉴스만 보면 지겹지 않아요? 엄마 뉴스 보면 또 화나잖아요! 좋아하는 걸 해 보세요.”


맞는 말이다. 스웨덴 뉴스를 보면 화만 나기 때문에 당분간 뉴스를 보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그렇게 했는 데...

‘그래! 오늘은 기필코 다른 일을 해보리’라는 다짐을 한다.


얼마 전 지인에게 빌린 책을 읽어 보려고 두어 장 페이지를 넘겼는데 웬일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데 아이는 오늘도 도라에몽을 본다. 10대들이 k-pop에 푹 빠지듯 딸아이는 도라에몽에 속 빠져 버렸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 요즘 아이에게 많은 자유시간이 주어졌는 데 아이는 그때마다 어김없이 도라에몽을 본다.


도라에몽을 보기 위해 피아노를 치고, 수학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것에 대한 보상의 시간을 도라에몽으로 보답받는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마다하지 않는다.

 

<이젠 안보고도 그릴수 있는 딸아이의 도라에몽 사랑>


나에게 그런 일은 무엇이 있을까? 좋아하는 일? 에 대한 대답이 궁색하다. 20대까지는 책을 참 좋아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하루가 이렇게 짧을 수 있다니...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책을 정리하고 남는 시간 이 엄청난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겠지?’...

이런 건전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독서하는 습관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


많은 주부들이 그렇듯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집안을 청소하고, 요리하고, 아이의 학습에 관한 계획이나 그 스케줄을 관리하는 시간들이 훨씬 많아졌다. 이런 일들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로서 주부의 의무이자 엄마의 도리로서 수행하는 일이지 결코 내가 너무나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다.


만약 해야만 하는 일에서 해방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한국에서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적이 있었는 데, 좋아하기보다는 이일 또한 해야만 하는 책임감이 일하는 동력이 되었었다. 스웨덴에 와서도 스웨덴 한국 학교 입양아반의 교사를 1년여간 하였다. 남다른 보람과 사명감에 수업을 준비하고, 수업 전 아이들의 이름을 마음으로 부르며 기도를 하고 수업을 하였다. 수업이 잘 된 날은 기쁨이 충만하였고 끝까지 열심히 해보리라 다짐도 하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였다. 책임감이 부담감으로 변해가는 순간 한글학교를 관두었다.

선생님이 되기에는 마음밭이 넓지도 못했고 아이들을 품을 만한 그릇도, 역량도 많이 모자란 것이 사실이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알면 알 수록, 그리고 하면 할수록 가장 귀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에 집중했던 순간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니, 남편에게 처음 고스톱을 배우고 새벽 녁까지 쳤던 일, 한예슬이 나왔던 드라마를 밤새도록 보았던 일, 구영탄 만화책을 눈동자가 파열될 때까지 읽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참으로 건설적이지 못하다. 공연을 보고 쇼핑을 하는 것도 좋아하는 데 이는 매우 소비적이다.


나의 숨겨진 욕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 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될 수 있는 데, 고스톱이나, 드라마, 만화책, 쇼핑 등으로 내 인생의 시간들을 써 내려가기에는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뭔가 더 건설적인 것은 없을까? 곰곰이 사색하며 책을 뒤적이다 랩탑을 다시 꺼내 드는 것을 보니 역시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글 쓰는 일인 것 같다. 마음이 제일 편하다. 사람을 마주하지도, 누군가를 의식하지도 않은 채 나 혼자만의 고독함과 여유로움을 만나게 된다. 흰 여백이 주는 기분 좋은 설렘과 함께, 타자 치는 소리가 매력적이다. 동화 쓰기가 취미였는 데, 신춘문예의 많은 고배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써서 랩탑의 한 폴더에 처박아 두고 혼자 좋아하는 걸 보면 진짜 좋아하긴 좋아하는 것 같다.


글쓰기는 소란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으며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가장 진실되고 솔직해지려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꾸미려고도 말고, 거짓됨도 없이, 최선을 다해 나의 이성과 사고, 마음, 감정까지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거짓되거나 가식적인 글은 이제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다.

문장이 거칠고 소박할수록 좋다.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것과 그것을 찾았다는 것은 인생이 우리들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며 감사이다.

많은 이들이 찾았으면 좋겠고, 찾았다면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요즘처럼 어렵고, 힘들고, 화나고, 좌절되고, 속상하고, 마음 아플 때, 가장 큰 위로와 감사의 시간이 그대에게 찾아오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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