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점이 뭐니?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에게 정답은 첫째도, 둘째도 <자연>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도시 주변은 물론이고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무한히 펼쳐져 있다. 자연은 사람이 만든 유적지와 예술품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살아 움직인다.
인간의 삶도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치는 것처럼, 자연도 계절과 시간을 맞추어 간다. 그리고 계절에 맞추어 그 아름다움이 달라진다.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참 다르지만 그 가운데 숨어 있는 진리는 모두 다 아름답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처럼.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도 자연은 참 위로를 준다. 스웨덴은 개인에게 자유를 허용하고 책임감을 지우는 위기 대응 방식을 취하고 있어 개인들은 각자의 책임하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어느 정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집에 머무르고, 저녁 식사 후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여 집 뒤의 공원을 조용히 산책한다. 공원은 어두워지면 켜 졌는지, 안 켜졌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주변을 밝혀 주는 데, 어두워도 조심조심 걸을 만한 시야를 확보해 준다.
정리되고 드넓은 잔디밭 사이로 넓게 펼쳐진 산책길도 확 트인 아름다움이 있지만, 우리 가족이 택하는 길은 숲과 언덕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좁은 길, 애초에 공원 길로 계획되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하나 둘,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자연 산책로이다. 가끔 한 두 사람 마주칠 때도 있지만 서로 멀찍이 상대의 존재를 확인하고 한쪽으로 거리를 확보하여 상대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무언의 약속이 잘 지켜지는 곳이다.
가족이 산책을 하며 나누는 대화는 매우 다양하다.
어제는 뿌리가 뽑혀 넘어진 커다란 나무 뒤로 연약해 보이는 어린 나무가 서 있는 걸 보았다.
"엄마 나무가 넘어져서 아기 나무가 슬퍼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하니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바로 우리 남편,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
"나무 종이 다르잖아."
그러면 다 같이 키득키득 웃어 버리고 또 다른 화제를 꺼내 든다.
아이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엄마 U.F.O 가 떠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꺼내니, 곧이어 남편이
"응, 저 구름은 적란운이라는 거야. 따라 해 봐
적. 란. 운!"
세상을 0 아니면 1로 본다는 수학에 업을 둔 전형적인 이공계 남편과, 유년시절 6년 동안 문예부에서 활동을 한 전형적인 인문계 와이프,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난 딸아이의 대화는 항상 평행선을 그으며 진행되지만 자연 안에서는 그것도 유쾌한 유희와 삶의 여유를 준다.
자연은 이야깃거리가 많다. 나무 위의 둥지를 바라보며 저 둥지 위에 알을 품었을 가족은 찌르레기가 아녔을까?라는 상상을 시작으로, 찌르레기 부부의 만남과 사랑, 위기, 갈등, 알의 탄생... 새들이 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간이 걷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것 같기도 하고... 상상이 또 다른 상상으로 나래에 나래를 편다.
옆을 돌려보면 호수 위로 두 마리의 백조가 석양을 뒤로한 채 아름답게 물살을 가른다. 저 백조들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 다시금 혼자만의 상상을 하며 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면 지루할 틈새가 없다.
딸아이도, 남편도, 때로는 자잘한 수다를 떨며, 때로는 묵묵히 걸어가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할 테지만 그 조용한 산책길을 걸어가는 우리 세 가족의 통일된 마음은 이 저녁 산책을 무엇보다 즐긴다는 데 있다. 잘려 나간 나무 그루터기의 나무테를 세는 남편과 그루터기 안에 마법의 힘을 가진 초록뱀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는 딸아이가 바라보는 나무의 그루터기는 각자 다른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