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랄라 May 12. 2020

이 시절이 지나면

 모든 게 회복되기를

코로나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전 세계를 뒤덮은 거대한 판데믹 앞에서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될 이 비극 앞에서 모두들 노력하고 있는 데, 개인이 지닌 상실감을 토로하는 것이 미안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글을 써 본다. 느끼는 감정에 더 솔직해 보고, 그 감정들을 글로 차분히 정리해 보면서 지쳐가는 정신적 피로감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니 나는 착한 학생 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별 말썽 없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온 평범하고 착한 학생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96학번 이었던 대학 시절은 학생 운동권 시절은 아니었지만, IMF라는 국가적 위기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IMF를 몰고 온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에 열심히 동참하고 싶어 했던 기억이 있다.


금반지 하나 없던 나로서는 당시 엄마를 설득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는 데, 강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엄마 금 있으면 저 좀 주세요. 금 모으기 운동하게요.”라는 말을 했다가 엄마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네가 돈 모아서, 네가 금 사서 그 운동해라, 나한테 주라 하지 말고.”라는 답을 받았었다.


결국 금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에는 동참했었다. 97년, 한국에 개봉된 ‘타이타닉’은 그즈음 금 모으기 운동과 함께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 열풍도 몰고 왔었는데, 어쨌든 나라가 힘드니 도와야 한다는 열정과 소신은 마음 가득했었다.


돌이켜 회상해 보면, 평범하고 순수한 한 대학생의 마음에는 <막대한 부채에도 불구하고 방만한 경영을 주도했던 수많은 기업들과,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쳐도 무지했던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에 대한 비판보다는> 나라가 어려우니 우리가 똘똘 뭉쳐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내야만 한다는 애국심과 긍정적 사명감이 가득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나와 함께한 동아리 친구들도 모두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에 동참했었다.


지금 이 스웨덴에서 그때의 과거를 회상해 보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스웨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내 나름의 노력 같은....그리고 밀물처럼 자꾸만 밀려드는 상실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감정의 요구 때문이다.


사망자가 3,300여 명을 훌쩍 넘어서도 스웨덴 사람들이 보건 당국과 정부에 대해 보내는 신뢰와 지지는 실로 막강하다. 70%를 넘어서는 지지율과 긍정적인 여론에 힘입어 스웨덴 보건 당국과 정부 정책 관계자들은 오늘도 그들의 정책을 성실히, 꾸준히 펴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 정책들은 많은 부분 <나>라는 개인이 지닌 일반상식과는 참 다르게 흘러갔고, 지금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지방에 스키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14일 동안의 자가격리조치를 내리지 아니한 것도,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하지 않는 것도, 2,000여 명의 과학자들이 WHO의 권고를 따르라는 서명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것도, 무증상 감염환자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현재까지 진행 중인 것도 내가 소화하기에는 벅찬 사실일 따름이다.


그리고 사망자와 확진자의 증가에도 건강한 모든 아이는 학교에 보내라는 스웨덴 보건당국의 지침 사항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에 발맞추지 못한 아시아에서 온 한 이방인 아줌마가 2020년 2월 마지막 주를 기점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지도 두 달 반이 지나가고 있다.


어제 뉴스에는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스웨덴이 유치원, 초, 중등학교를 닫지 않음으로써 이루어낸 경제적 가치를 계산한 소식들도 보였다. 기가 찬 뉴스 같은데 스웨덴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사망자 수를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게시글도 눈에 들어온다. 공포감을 조성할 뿐이라는 의견에 'Good point'라는 답글이 보인다. 가슴이 답답하다. 세계를 뒤덮은 막대한 위기에도 자유를 속박하지 않는 스웨덴의 독특한 위기대응 방식에 박수를 보내는 스웨덴 사람들이 많다. 나와는 너무나 다르다.


스웨덴 시민들은 이 코로나 사태의 시작부터 사재기를 하지도 않았고, 정부를 함부로 비판하지도 않았다. 부족한 마스크와 손소독제의 물량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으며, 의료장비와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스톡홀름 보건관계자의 기자회견 이후, 많은 의료물품과 의료봉사를 직접 자원한 사람들이 바로 스웨덴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러한 시민의식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스웨덴 시민들이 스웨덴 자국에 보내는 순수한 애국심과 시민의식에 존경심 마저 든다. 대학시절 IMF라는 국가 위기 앞에 정부를 비난하기보다 ‘타이타닉 보지 않기 운동’에 동참하고 엄마에게 어려운 나라를 위해 금을 요구했던 순수했던 그 시절 나와 나의 친구들, 우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맞이했던 첫 국가 위기사태 때의 나는, 스웨덴 사람들처럼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직면한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는 소시민적인 애국심이 있었고, 무언가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이 있었다. 어쩌면 이들도 의심의 눈으로 스웨덴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언론과 따가운 시선 앞에 자신의 나라를 보호하고 힘을 보태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진정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IMF라는 국가 위기가 그 당시 성실하고 묵묵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소시민들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서민들이 그 희생을 치러냈고, 그 이후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책임이 다시 회자되며 정리가 되어 갔듯이 오늘의 스웨덴도 이 시절이 지나면 그런 평가를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망자와 개인의 희생이 과연 어디까지 불가피한 것이 었는지, 정책적 결함으로 인해 치러내야 했던 아픔들이 무엇이었는지, 뒤돌아 보며 차분히 반성하고 평가받기를 바란다. 개인의 순수한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분별함을 잃지 않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힘든 시절이 지나야 좋은 시절이 온다는 말처럼 이 힘든 시절이 가고, 다시 오는 좋은 시절에는 나와 같은 이방인의 관점도 두루 둘러볼 수 있는 여유와 포용이 생겨나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뒤에 물러서 있던 이들의 상실감이 회복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마른 나뭇가지에 잎이 돋을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의 자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