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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Apr 26. 2020

바이러스의 비밀을 찾아서

딸에게 들려주는 창작동화 한 편

** 오늘 적어본 창작동화입니다. 4학년 된 딸아이에게 들려주니 반응이 좋아 브런치에도 올려 봅니다^^ **



비가 많이 내리는 오후입니다. 바깥바람이 아직도 쌀쌀합니다. 버드의 친구 앵그리가 문을 두드립니다.

“버드, 빨리 나와, 지금 모두 모였다고!” 앵그리의 재촉에 버드는 문고리에 걸어둔 두꺼운 비옷을 챙겨 입으며 문을 열었습니다. 버드와 앵그리, 민트, 그리고 칩은 오후가 되면 항상 산에 가야 합니다. 산에 가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산의 흙이 씻겨 내려가 걸을 때마다 질퍽거리고 움푹 파인 지반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먹을 것이 부족한 베네그렌 마을에서 비는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가 오는 날에는 오덴 마을의 원주민들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 사냥감을 빼앗길 위험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오늘처럼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는 날에는 토끼굴에 물이 찰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져 봅니다. 비가 많이 와서 토끼 굴에 물이 차면 토끼들이 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사냥이 쉽게 되기도 하거든요.


버드, 앵그리, 민트, 칩은 로다베리 초등학교에 다니는 열 살 난 남자아이들입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다녔는데, 온 지구를 뒤덮은 미세먼지와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는 학교가 아닌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지요.


전 세계를 순식간에 휩쓸어 버린 끔찍한 바이러스는 신기하게도 열다섯 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에게는 덮치지 않아 집에서 가장 건강한 열 살부터 열다섯까지의 어린아이들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살아남은 어른들은 하루 종일 기침과 고열에 시달리며 아이들이 잡아오는 토끼나, 새알, 가끔은 덫에 걸려든 어린 사슴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살고 있었어요. 어린 여자아이들은 사냥보다는 집안의 편찮은 어른들을 돌보면서 감자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밭에 심어둔 어린 씨알 감자들이 떠내려 가지 않도록 밭의 고랑들을 한번 더 파 내는 수고로운 작업을 해야만 한답니다. 고랑을 잘 정리하지 못하면 그동안 지어놓은 농사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거든요.


베네그렌 마을에는 4명의 마을의 생계를 책임진 버드, 앵그리, 민트, 칩 외에 감자 농사를 도맡은 루시와 얀이라는 12살 된 여자아이도 살고 있었어요. 루시와 얀은 아침부터 밤까지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섯 명의 마을 어른들의 열을 내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입니다. 차가운 수건으로 어른들의 이마와 손, 발을 밤낮으로 닦아 주고, 감자에 토끼고기를 넣은 죽을 끓여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와 빨래, 사냥이 잘 되지 않는 날들을 대비해 감자를 많이 저장해 놓아야 하는 일들을 맡았어요.


얀과 루시는 일이 고되고 힘들 때마다 학교를 다니며 마음껏 뛰놀았던 그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어른들이 모두 낳으면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서로 의지하고 노력하며 생활하고 있었어요.


베네 그렌의 마을에는 힘든 생활고와 배고픔 이외에도 수시로 쳐들어오는 오덴 마을의 원주민들이 늘 문제가 되곤 했어요. 이 원주민들은 키가 140cm를 넘지 않는 단신족이에요. 신기한 것은 전 지구의 90퍼센트의 인구가 바이러스에 살아남을 수 없었는데, 오덴 마을 원주민들은 아무도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지요.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요. 수많은 과학자들이 오덴 마을의 원주민들이 왜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는지 조사하려 그 마을에 들어가는 순간 모두가 기억 상실증에 걸려 버리고 마는 거예요.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기억 상실증에 걸린 과학자들은 오덴 마을의 원주민들에 대한 연구를 포기해 버렸답니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오덴 마을 사람들은 자꾸만 베네 그렌 마을에 쳐 들어와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먹을 것을 내놓을 때까지 그 마을을 떠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원주민들이 나타나면 이제까지 숨겨 놓았거나 저장해 두었던 감자나 비상식량을 줄 수밖에 없었지요.

원주민들이 하는 알 수 없는 말이 “식량을 주지 않으면 너희들 전부를 죽이겠다!” 아니면 “식량을 주지 않으면 이제부터 전쟁이다!”처럼 들렸거든요. 아이들은 원주민들이 나타날 때마다 공포에 떨곤 했어요.


오덴 마을의 원주민들의 인구는 50명이나 되었어요. 지구 상에 남은 가장 큰 마을이지요. 아이들은 오덴 마을 원주민들이 인구수가 많아서 아무리 힘을 내어 사냥을 해도 먹을거리가 항상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꾸 베네 그렌 마을에 내려온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사실 오덴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바이러스와 미세먼지가 없던 시절에는 베네 그렌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 주기도 하고, 부모가 없는 어린아이들을 보살펴 주기도 했어요. 오덴 마을 원주민들이 키우는 귀여운 새끼 강아지들을 형제가 없는 외로운 어린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던 착한 사람들이었답니다.


아! 오덴 마을의 원주민들은 집집마다 작은 강아지 푸들을 키워요. 베이지색 작은 푸들은 인형처럼 귀엽게 생겼어요. 특징은 바람을 맞을 때마다 입 꼬리를 올리며 웃는 거예요. 모두가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미소를 짓게 되지요. 오덴 마을의 원주민들은 푸들과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 있었는 데, 그 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덴마를 원주민 빼고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루시는 오늘도 오덴마을 원주민들이 감자를 훔치러 오는지 살펴보기 위해 마을의 전망대 위로 올라갔어요. 비가 세차게 내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동쪽 산마루를 쳐다보고 있자니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푸들을 데리고 오덴마을 원주민 네 명이 베네그렌 마을로 오고 있었어요. 루시는 전망대에서 급히 내려가 얀에게 감자 창고를 빨리 닫으라고 소리쳤어요.

“오덴마을 사람들이 오고 있어!, 빨리 감자 창고를 닫아 야만 한다고!”

“알겠어, 내가 잽싸게 닫아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얀이 소리쳤어요.


곧 오덴 마을 원주민들과 강아지 푸들 한 마리가 감자 창고 앞에 도착했어요.

루시와 얀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더 이상 저희 감자를 훔쳐 가는 일은 그만두라고요”

“게에리우 를자감 야어주 이들희너 더 해복행 고라거는지” 역시나 알수 없는 원주민 어를 하고 있네요.

“어누나 야어주 이 이상세 될복회 수 어있…는리우 를희너 말정 고하구 어싶.”


결국 이번에도 루시와 얀은 오덴 마을 원주민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왠지 모를 힘에 이끌리어 닫아 놓았던 감자 창고문을 열고 감자를 50개 나누어 주었어요. 원주민들은 다시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감자를 받아 들고 오덴마을로 되돌아 갔답니다.


루시는 얀에게 이야기했어요.

“원주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너는 그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궁금하지 않니?”

얀이 대답했어요

“아니, 난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결국 감자를 주지 않으면 우리가 창고문을 부수겠어! 빨리 감자를 내놔! 뭐 이런 게 아닐까? 매번 알 수 없는 힘으로 우리가 창고문을 열어주게 되는 걸 보면, 결국 그 사람들이 창고문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공포의 에너지가 우리에게 전해져서 그럴 수도 있어.”

루시도 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마음 한구석에서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사냥을 나간 버드, 앵그리, 민트, 칩은 쏟아지는 장대 같은 비에 손이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았어요. 다행히 토끼굴에 물이 차서 토끼굴 옆에 미리 쳐 놓은 덫에 토끼 두 마리가 잡혀 있었어요. 토끼들은 생명이 붙어 있었지만, 앵그리가 토끼의 머리를 콩 때려 기절시켜 버렸어요.

앵그리는 추위에 몸을 다시 한번 부르르 떨며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어요.

“더 이상 추워서 오늘 사냥은 무리일 것 같아, 토끼 두 마리면 베네그렌 마을의 저녁식사로는 충분할 거야! 이제 돌아가자!

버드, 민트, 칩도 너무나 추워서 일단 마을로 돌아가자는 앵그리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어요. 장대 같은 비 속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오덴 마을의 원주민 4명이 버드, 민트, 칩, 앵그리 앞에 나타난 것이었어요. 비옷도 없이 쏟아지는 세찬 비를 맞으면서 말이에요.

원주민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를끼토 장당 줘아놓! 이간인 를기고 수을먹 는있 은것 지로오 이물동 을명생 해다 로으적연자 을었죽 때 고라이뿐! 이들희너 왜 에스러이바 지린걸 말정 니겠르모? 다 의연자 을칙법 고기어 의상세 걸 든모 로으심욕 고려하배지 기하 야이문때!”


앵그리는 차가운 비를 맞으며 애쓰게 잡은 토끼를 가지고 집에 가려던 찰나에 나타난 원주민들이 너무나 미웠어요.

“이 나쁜 놈들아! 왜 매일 우리가 사냥할 때마다 이렇게 나타나서 소리를 지르고 우리가 잡은 동물들을 죄다 가져가는 거야? 제발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우리도 정말 배 고프단 말이야.”


앵그리는 화가 나서 엉엉 큰소리로 울며 이야기했어요.


버드는 앵그리를 진정시켰어요. “앵그리, 괜찮아! 그래도 원주민들이 우리를 해치지는 않잖아, 그냥 잡은 동물만을 가져갈 뿐이야. 이번에도 어쩔 수 없어. 잡은 토끼를 다 줄 수 밖에는…”


앵그리는 화가 나서 벌벌 떨리는 손으로 토끼를 주지 않으려 안감힘을 썼지만 이번에도 원주민들이 지닌 알 수 없는 에너지로 인해 손이 저절로 움직였어요. 그리고 결국 잡은 두 마리의 토끼를 원주민에게 주고 말았지요. 원주민들은 토끼를 소중히 안고 오덴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앵그리는 화가 풀리지 않아서 나무에 손을 쿵하고 치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버드가 말리는 데 민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얘들아, 저기를 좀 봐, 저 멀리 까마귀 떼들이 하나둘씩 날아드는 것 같아. 한번 가보자. 금방 죽은 동물이 있을 수도 있어.”


앵그리, 버드, 민트, 칩은 재빨리 까마귀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민트의 말처럼 늙은 사슴이 비에 쏟아져 내린 흑 더미에 갇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칩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정도 사슴이면 우리 마을 사람들이 일주일은 충분히 먹을 수 있겠어, 오덴 마을 원주민들도 돌아갔고, 이제 안심이야. 얼른 까마귀들이 더 몰려들기 전에 사슴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자고!”


화가 났던 앵그리도 금세 신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커다란 나뭇가지를 사슴의 다리 사이에 놓고 질긴 풀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한 줄로 나뭇가지에 묶인 죽은 사슴을 서로의 어깨에 메고 베네그렌 마을로 무사히 되돌아왔습니다.


루시와 얀은 남자아이들이 커다란 사슴고기를 들고 오자 기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곧 요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사슴 갈비는 양념에 재워 놓고, 사슴의 안심과 등심은 아주 얇게 저며 바이러스로 힘들어하는 어른들에게 줄 것입니다. 얀과 루시의 입에서 저절로 콧노래가 나옵니다. 오늘은 모두에게 참 행복한 날입니다.


요리를 한참 하던 루시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얀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얀, 항상 원주민들에게 감자를 나눠 주고, 사냥한 동물을 뺏긴 날 뭔가 행운이 생기는 거 같지 않니? 그날은 어른들도 감자죽만 먹어도 뭔가 병세에 차도가 있었던 것 같아”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우연이겠지… 아마도…”

“그래, 우연일 거야!” 루시가 얀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루시와 얀은 편찮은 어른들을 위해 얇게 저민 사슴고기를 부드럽게 요리한 뒤 감자죽과 함께 대접하였습니다. 고열에 시달리고 기침을 심하게 하던 어른들도 오늘은 어쩐지 식사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루시는 얀과 함께 네 명의 남자아이들과 사슴 갈비를 맛있게 굽고 버터 감자구이를 하여 만찬을 즐겼습니다. 장작불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려옵니다. 아이들 모두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장작불을 조용히 바라보던 버드가 말했습니다.

“원주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니?”

“어쩜 오늘 루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니, 너희들 통하는 데가 있구나!” 얀이 이야기하였습니다.

루시가 버드의 말에 눈을 반짝입니다.

“버드, 너도 궁금했니? 나도 원주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말 궁금해. 그리고 원주민들이 우리 마을에서 감자를 가져가고 너희들이 사로잡은 동물을 가져간 날에는 마음 편한 저녁이 계속되었던 것 같아. 아직도 원주민들이 두렵기는 하지만 정말 무슨 말을 우리에게 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


얀은 버드와 루시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그렇게 궁금하면 너희들이 한번 오덴 마을을 찾아가 보는 건 어때?”

다른 아이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버드와 루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곳에 갔던 많은 과학자들이 실종되거나 기억을 상실하고 돌아왔어… 그런 무시무시한 오덴 마을을 찾아간다는 생각은 잊어버리라고”


앵그리도 이야기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오덴 마을에 찾아가서 기억을 잃기라도 한다면 나는 원주민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제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마.”


버드와 루시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운 날 사냥을 나갔던 남자아이들과 감자를 뺏겨 속이 상한 얀은 피곤하였는지 곧 단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루시도 자 보려고 했지만 왠지 잠이 오지 않아 열이 나는 어른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러 편찮은 어른들의 방에 가 보았습니다. 오늘따라 열이 펄펄 끓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루시가 방으로 돌아가려는 데, 편찮은 어른들 중의 한 명이 루시의 팔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매우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였습니다.


“루시, 아까 버드와 네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어. 너희들 정말 원주민들의 언어가 궁금하니?” 원주민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 있어…<욕심 없이 알고자 하는 순수 영혼은 기억을 잃지 않으며, 거꾸로 보는 언어는 세상을 구한다>라는 … 버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렴. 너희들은 누구보다 영혼이 순수한 아이들이니 ….”


루시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원주민들의 언어와 그들을 알고 싶은 마음이 다시 솟구쳤습니다. 루시는 잠자는 버드를 깨웠습니다. 버드에게 아까 들은 이야기를 전하니 버드도 가슴이 두근거려왔습니다.


버드와 루시는 아이들이 잠자는 틈을 타서 손전등과 비상식량을 챙겼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짧은 쪽지를 남겼습니다.


<우린 꼭 돌아올 거야>


버드와 루시는 따뜻한 방한복을 챙겨 입고 손전등을 비추며 곧바로 오덴 마을로 향하였습니다. 오덴 마을은 베네그렌 마을과는 13km가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어두운 밤 조용히 걷고 있자니 벌써 태양이 새벽을 알립니다. 어슴프레 밝은 빛이 루시와 버드의 머리카락을 비추기 시작할 때즘, 오덴 마을의 입구가 보입니다. 크고 작은 자작나무들이 오덴 마을을 아치처럼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비친 은빛 자작나무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마을의 입구 문 앞에는 커다란 표지판이 보입니다. 루시의 손을 잡았던 그 어른이 했던 이야기가 베네그렌 마을의 언어로 적혀 있었습니다.


<욕심 없이 알고자 하는 순수 영혼은 기억을 잃지 않으며, 거꾸로 보는 언어는 세상을 구한다>


버드와 루시는 손을 잡았습니다. 오덴 마을을 찾았다는 기쁨과 두근거림이 아이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오덴 마을의 이 입구를 건너는 바로 그 순간 버드와 루시의 기억은 모두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수 없이 오덴 마을을 방문하였던 세기의 과학자들처럼 말입니다. 루시와 버드는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오덴 마을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리고 입구의 문을 열었습니다.

한발, 두발, 세발, 문을 열고 들어간 루시와 버드는 눈을 살며시 떴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루시가 소리쳤습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니” 루시는 너무나 놀라 버드를 쳐다보았습니다. 버드도 루시를 쳐다보았습니다. “루시, 이 세상을 좀 봐..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는 정말 처음이야.”


오덴마을은 따사로운 햇살과 온갖 열매의 향긋한 내음,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뒤덮여 있었습니다. 공기는 청량하고 부드러웠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은은하게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에는 자유로운 동물들이 오색찬란한 숲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습니다. 동물들은 풀을 뜯기도 하고, 서로 털을 비비기도 하고, 나무의 열매를 따 먹기도 하였습니다. 버드는 클로버 풀을 뜯어먹는 다리 다친 토끼 두 마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두 마리의 흑갈색 토끼는 어제 사냥에서 오덴 마을의 원주민에게 빼앗긴 바로 그 두 마리의 토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토끼 옆에는 꾸벅꾸벅 조는 강아지 푸들들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원주민들이 우리에게서 가져간 많은 동물들이 이 마을에서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버드의 눈이 휘둥그래 집니다. 루시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갑자기 원주민들의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유쾌하고 명랑한 푸들이 짓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베이지빛 구불거리는 털이 사랑스러운 푸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오덴 마을의 손님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며 루시와 버드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물소의 우유를 짜던 원주민과, 지빠귀 새의 알을 살펴보던 원주민이 루시와 버드에게 다가왔습니다.


“오덴 마을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루시와 버드는 깜짝 놀랐습니다. 원주민들이 원주민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원주민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항상 이 마을에 찾아와 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억을 잃지 않는 순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만이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요. 버드 님과 루시 님은 알고자 하는 마음에 욕심이 없는 순수 영혼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오덴 마을에 도착하고 기억을 잃어버린 이유가 있어요. 그들 모두가 과학과 지식으로 자연을 정복하려는 욕심이 가득했답니다. 이 오덴 마을의 중심부에는 가이아라는 자연의 어머니가 살고 계세요. 가이아는 그런 욕심을 가진 과학자들의 기억을 지워버리게 된답니다. 그 끔찍한 욕심이 바로  이 지구와 자연을 이렇게 파괴시켰기 때문이에요.”


원주민들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어요.

“지구가 멸망한 것은 인간들이 자연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는 일들을 벌였기 때문이에요. 자연을 정복하려는 과학의 발전은 조절하는 능력을 이미 잃어버렸어요. 인공태양을 만들고, 전쟁을 하고, 희귀 동물을 죽이고, 오염물질을 지구에 쏟아 내었죠. 거기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파멸의 바이러스와 미세먼지예요.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와 백신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욕심을 버리고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랍니다.”


원주민의 이야기에 루시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였습니다.

“아, 그래서 저희가 감자를 나누어 주거나 사냥한 동물들을 당신들에게 줄 때마다 우리 마을 어른들의 병세가 좋아졌던 것이로군요. 바로 욕심 없는 나눔의 백신이 어른들의 병을 치료하고 있었던 거예요.”


버드는 “거꾸로 언어도 이제 이해가 돼요. 우리가 자연의 삶에 역행하고 살아가서 당신들이 우리 마을에 올 때마다 언어가 바뀌는 것이었어요.”


“네…” 그렇답니다.


루시와 버드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습니다. 이제 모든 게 다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덴 마을의 원주민들은 태초부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루시와 버드는 오덴 마을 원주민들의 성대한 환영을 받은 뒤, 다시 베네그렌 마을로 향하였습니다.

가슴속 깊이 차오르는 기쁨과 희망으로 13km나 되는 거리가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숨 가쁘게 산을 가르고 너무 빠른 발걸음에 수십 번 넘어졌지만 루시와 버드는 넘어질 때마다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미소 지었습니다.


베네그렌 마을의 뒤편으로 은은한 달빛이 물결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비추는 달빛입니다.


루시와 버드가 소리쳤습니다.


“앵그리, 민트, 칩, 얀! 우리가 돌아왔어.”


베네그렌 아이들이 문을 열고 루시와 버드를 향해 뛰어 옵니다. 저 멀리 오덴 마을의 가이아가 베네그렌의 달빛을 더욱 밝게 비쳐 줍니다.


-The end-


** 원주민 언어 해석**


“게에리우 를자감 야어주 이들희너 더 해복행 고라거는지”

“우리에게 감자를 주어야 너희들이 더 행복해지는 거라고”


“어누나 야어주 이 이상세 될복회 수 어있…는리우 를희너 말정 고하구 어싶.”

“나누어 주어야 이 세상이 회복될 수 있어… 우리는 너희를 정말 구하고 싶어.”


“를끼토 장당 줘아놓! 이간인 를기고 수을먹 는있 은것 지로오 이물동 을명생 해다 로으적연자 을었죽 때 고라이뿐! 이들희너 왜 에스러이바 지린걸 말정 니겠르모? 다 의연자 을칙법 고기어 의상세 걸 든모 로으심욕 고려하배지 기하 야이문때!”


“토끼를 당장 놓아줘! 인간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동물이 생명을 다해 자연적으로 죽었을 때 뿐이라고! 너희들이 왜 바이러스에 걸린지 정말 모르겠니? 다 자연의 법칙을 어기고 세상의 모든 걸 욕심으로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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