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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May 19. 2020

한식이 제일 좋아요

맛있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고기가 타기 전에 드셔야 하거든요.” 잘 익어 갈색 빛의 아우라를 풍기는 삼겹살 한 조각을 남편의 지도교수님 접시에 철퍼덕 넣어 드리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표정이 또 한번 연출된다.

“괜찮아요. 괜찮아… 우린 원래 이렇게 먹어요. 한국식이에요. 한국식당에 오셨으니 한국 식으로도 한번 드셔 보셔야지요.”


어색함이 묻어나는 “Okay!”를 연발하시는  지도교수님이 안쓰러운지, 나보다 훨씬 영어에 능숙한 남편이 다시 한번 설명에 들어갔다.


“한국 부모들은 식사할 때 자식에게 제일 맛있는 음식을 떠서 밥그릇이나 숟가락 위에 얹어 줘요. 자식에게 주는 일종의 사랑의 표현이지요. 한국식 표현으로는 <정>이라는 건데, 저희는 그래도 침묻은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하하하.”


맛있다며 삼겹살을 몇 점씩 한꺼번에 입에 넣으시면서도 자신의 앞접시를 허락 없이 침범하며 고기를 넣는 방식에는 호기심반 의심반으로 바라보는 파란 눈의 미국인 교수가 재미있다.


옆에 앉은 어린 딸아이가 때마침 밥을 숟가락에 얹고 고기를 올려달라는 시늉을 하며 숟가락을 내밀었다. 딸아이의 숟가락에 고기를 얹어 주니 아이가 먹음직스럽게 받아먹는다.


"교수님도 한번 해드릴까요?”라는 물음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많이 드세요!>


<I>와 <You>로 구분되는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에게 자신 앞에 놓인 접시는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더 먹고 싶으면 본인이 선호하는 음식들을 고르고, 먹을 만큼만 각자의 접시에 올려 먹는 <개인의 선택>이 참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서양식 식사법은 가족 간에도 예외 없이 지켜진다.

이와는 달리 <우리>라는 공동체 문화에 익숙한 한식 문화는 <네 것>과 <내 것>이라는 구분과 소유의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중 가장 먹음직스러운 부분을 상대방의 밥그릇에 살짝 얹어 주는 우리의 식문화는 연인이나 가족, 타인의 밥그릇에 제일 좋은 것을 얹어 주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어릴 시절 아버지는 노릇노릇 정성스럽게 구워진 갈치구이가 상에 올라올 때마다 젓가락으로 가시가 있는 몸통의 양옆 부분을 분리해서 자신의 밥그릇에 올려놓고, 가운데 부분의 가장 도톰한 생선 살만을 어린 우리들의 밥그릇에 차례대로 올려 주곤 하셨다. 지금도 가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갈치구이의 몸통을 양보하신다. 그리고 이제 그 갈치구이의 몸통 부분은 내가 아닌 그때의 나만큼 어렸던 딸아이의 밥그릇으로 가는 모습을 본다. 아버지였던,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신 묵묵한 가장의 사랑은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말없이 밥상 안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말 하지 않아도 .... 사랑이 보인다>



매해 여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는 Korean Culture Festival (한국 문화 축제)이 열린다. 이 날은 스웨덴 각지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부스를 마련하여 한국 음식을 판매하고, K-pop, 태권도, 전통놀이, 한국식 메이크업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부스들이 푸르름이 가득한 스톡홀름의 아름다운 공원 광장에 펼쳐진다.

<한국 문화 축제>

한국의 맛과 멋을 두루 경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스웨덴 사람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국 교민들도 찾아들게 하는 힘을 갖는다. 그리웠던 한식의 향이 교민들의 마음을 넉넉히 채워주고 한국문화에 호기심을 갖는 스웨덴 사람들의 궁금증을 맞이한다.

< 시장 떡볶이처럼요! 맛 알죠? 한국문화 축제에서>

공원의 분수대에 앉아 남편이 부스에서 사 온 도시락을 펼쳐 먹으려는데, 옆에 앉은 젊은 스웨덴 남녀 한쌍이 우리처럼 도시락을 편다. 살짝 쳐다보니 비빔밥이다.

서툰 젓가락질을 하며 음식의 재료와 성분을 궁금해하는 대화 소리가 들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딸아이가

"엄마, 저 사람들 비빔밥 이상하게 먹어요."라는 말을 하였다.

슬쩍 다시 보니 딸아이 말처럼 비빔밥을 숟가락으로 비벼 먹지 않고, 시금치 하나, 고사리 하나, 콩나물 하나씩 따로 젓가락에 걸치듯이 건져 먹는 모습이 보였다. 프렌치프라이를 케첩에 찍어 먹듯이, 야채를 하나씩 건져내어 빨간색 고추장 양념에 쓱 한번 찍고, 맵다 싶으면 하얀 밥을 숟가락으로 먹고 있었다.


우리의 음식을 서툴지만 그렇게 맛보고 있는 그 스웨덴 커플이 참 고마우면서도, 비벼 먹는 맛을 알려주고 싶은 과거 선생 기질이 올라왔다. 낯 모르는 커플에게 결례가 되기 싫어 나의 욕구를 딸아이에게 돌린다.


"비빔밥을 왜 비벼 먹는지 아니? 맛과 향이 다른 음식들이 비벼지면 더 새로운 맛을 내 거든. 엄마가 시골에서 선생님 할 때는 애들하고 가끔 커다란 양푼에다가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어. 어떤 애는 김치도 가지고 오고, 콩자반, 오징어 볶음... 된장 가지고 온 애도 있었는데...."

"엄마, 그게 맛있었어요?"

"그게 말이야... 안 먹어 본 사람은 몰라. 하하."

"우와, 진짜 부럽네요."



우리네 밥상, 한국인의 음식과 식사법은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인의 모습과 정신이 보인다. 고추장, 된장, 간장은 오래 참으며 인내한 한국 여인네들을 떠 올리게 하며, 슥슥 비벼 먹는 비빔밥은 품앗이로 모내기를 하고 경작을 하며 함께 일하시던 마을 어르신들의 공동체 의식이 엿보인다. 우려내어야 맛이 있는 육개장은 숙련된 장인이며, 가장 맛있는 음식을 허락 없이 건네며 밥 위에 얹어주는 우리의 식사법은 한국인의 <정>이 보인다.


직장과 학교에 가는 남편과 딸아이의 아침은 매번 토스트나, 팬케잌, 샐러드와 쥬스로 시작한다. 우리의 음식의 향이 혹여나 타인들에게 낯선 이질감을 안겨줄까 한식을 먹을 때에도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저녁은 다르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청국장도 스스럼이 없다. 김치는 기본이고  불고기나 제육볶음, 잡채, 고등어 조림 등의 주요리를 선택해 식탁에 올려 놓으면  <자알 먹었다> 배부른 만족감으로 하루동안 쌓였던 긴장감이 풀리고 부족했던 무언가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에 몸이 나른해 진다. 


외국에 나와 오랜시간 살아가며 현지식사가 익숙해 질 만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늘 그립고 가장 반가운 것이 한식이다. 동네에 팔지 않는 배추를 구하기 위해 멀리 운전을 하고, 멸치액젖이 없어 국적불명의 피시소스로 대체하고 김치를 한다. 먼 곳으로 여행을 할 때에도 라면과 참치캔, 맛김을 잊지 않는 우리들에게 한식은 무엇일까?

한국의 맛! 그 맛에도, 먹는 법에도 <대한민국 사람>이 보인다.  언제 가도 반갑게 한상 차려 내시는 주름진 어머니의 사랑과 고기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얹어주시는 아버지의 정이 우리들, 대한민국 사람들의 상에는 흐른다. 나는 언제나 맛도 있고 멋도 있는 한식이 제일 좋다. 정말 그립다.

<푸짐하게, 얼큰하게, 소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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