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산지도 벌써 15년이 되어간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러 버렸다.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외국 살아보니 좋아?>
가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가까운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 속에서 유독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 ‘외국 살아보니 좋아?’라는 질문이었는데, 그 질문에 난 참 많은 대답을 했었던 것 같다.
처음 3년 정도는 온갖 종류의 미사여구를 동반한 갖가지 모험담과 색다른 경험을 잘 조합하고 각색해 가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었고, 애를 낳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던 때에는 가족과 함께 한국에 사는 너희들이 참 부럽다는 얘기도 종종 했었다.
해외 생활이 좋았을 때는 조기 유학, 이민의 성공사례, YOLO, 워라벨을 주창했었고,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내 몸이 아프고,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때에는 인종차별과, 극복하기 힘든 언어, 의료문제, 느려도 너무 느린 행정처리 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때 했던 많은 얘기들 중 거짓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유치원을 경험하고, 스웨덴에 와서 초등교육을 받는 딸아이에게
"한국이 좋아? 외국이 좋아?”라는 질문을 나도 한번 해 본다.
“엄마! 한국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 좋고, 외국은 친구들이 있어 좋아요. 다 똑같은 거예요!” 아직 만 열 살이 되지 않은 아이가 사십 중반을 넘어가는 엄마에게 정답을 던져 주었다.
<친구가 있어 좋아요>
친한 지인이 종종 이야기하던 <질량 보존의 법칙>이 떠오른다. 질량은 형태가 변하더라도 그 총 양은 보존이 된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은 우리 인생에도 적용된다는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뜻 하지 않던 행운이 찾아들기도 하는 우리들의 인생에서, 결국 각자가 짊어져야 할 삶의 총무게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변화될 수 없는 무게라면 불평하기 보단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방법들을 더 고민하고 생각해 봄이 옳을 것 같다.
인생은 짧은 담요와 같아서, 끌어당기면 발끝이 춥고 밑으로 내리면 어깨가 싸늘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무릎을 구부려 쾌적한 밤을 보낸다는 M. 하워드의 글처럼 나도 내 무릎을 구부려 보는 연습을 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