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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Jan 09. 2020

양파와 버터 그리고 반창고

나는 내 아이를 위한 버터가 되고 싶다던 콜린을 회상하며

   

   미국 유학시절 특수교육 전공과목 중 <가족의 역할과 기능>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당시 변변치 못한 나의 영어 실력은 수업시간마다 위태위태한 상황을 연출하기가 일 수였다. 매번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수업시간이 끝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가 축 처진 채 강의실 밖으로 걸어 나오던 기억이 선하다. 그리고 특히나 이 과목은 팀별 발표, 그룹식 토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나에게는 사실 윈터 타이어 없이 살얼음을 운전하는 최고의 긴장감을 가져왔던 수업이었다. 한 가지 어려움을 더 보탠다면 교수님의 남부 발음과 속사포처럼 빠른 말의 속도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등에 닭살이 돋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시절 천사를 만났다.

힘든 시간 속에 만난 콜린이라는 친구는 파란 눈, 금발머리를 한 뉴욕 태생의 미국인으로 자녀 둘을 혼자 키우며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이혼녀였다. 남부 악센트를 쏟아 내던 공포스러운 교수님이 맺어준 팀별 과제 파트너였던 그녀와의 만남은 가뭄 든 땅에 촉촉한 단비처럼 참 고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과 파트너가 된다는 것이 실망스럽고 유쾌한 일이 아님을 익히 많은 친구들의 얼굴 표정으로부터 느끼고 있던 나로서는 콜린의 거리낌 없는 환한 미소가 정말 고마웠다.


   파트너가 정해 진 후, 곧 수업 시간 토론과제가 주어졌다.


가족의 아픔을 주변의 사물과 연결 지어 작성하고,

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또 다른 사물과 연결 지어 발표하되,

그 희망적인 다른 사물은 가정 내에서의 자신의 역할과 연결 지을 것


   과제 해결 시간은 2시간이었고 나머지 한 시간 동안 각각의 팀들이 바로 발표하고 점수는 그 자리에서 주어진다. 지금 봐도 아찔하다. 콜린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과목을 재이수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콜린은 망부석처럼 과제만 눈으로 읽어 내리는 어리바리한 나에게 재차 과제에 대한 설명을 차분히 해 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말하듯 천천히, 또 천천히 말하던 콜린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과제가 이해되고 곧 우리의 브레인스토밍이 시작되었다.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사물들:

칼, 총, 바늘, 은행계좌, 설거지, 집안일, 전쟁, 병원, 저울, 넘어진 상처….. 그리고 양파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는 사물들:

빵, 밥, 김치, 돈, 버터 냄새, 화장품, 잘 생긴 남자 포스터, 카페라테… 팝콘


콜린이 곧 대화를 이끌어갔다. 눈물의 단어들과 기쁨의 단어들을 조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는

<그러니까 넘어지면 아프지, 아프면 상처가 나지, 상처가 나면 반창고를 붙이면 되지, 가족과 연결 지으면 가족이 아플 때 반창고를 붙여주면 되지 않을까? 나의 가정 내에서의 역할은 반창고??>


   콜린이 내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좋은 생각이지만, 너는 절대 반창고 하지 마! 반창고는 상처가 치유되고 난 뒤에는 버려지는 거거든!"

정말 콜린은 머리 좋은 천사임에 틀림없다. 겨우 쥐어 짜낸 내 아이디어의 단점을 한 순간에 파악하다니 말이다. 몇 번의 브레인스토밍 후에 콜린이 말했다


<양파와 버터 어때? 새로움을 기대하며 까보고 또 까보지만 항상 눈물만 주는 양파를 가족의 아픔으로 표현해 보자. 또 양파를 프라이팬에 놓고 버터에 녹여내 매운 향이 사라지게 되는 과정을 희망으로 매치하는 거… 그리고 우리가 이 매운 양파를 녹여내는 버터와 같은 역할을 가정에서 해 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와! 콜린, 넌 천재야! 나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할 수 있니?”

 콜린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어쩌면 이건 내 얘기인지도 모르겠어. 사실 내 막내아들이 중증 장애아거든. 걔는 맨날 양파처럼 똑같고, 나는 항상 울지만 내 아들에게만큼은 버터와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 우리가 만들어 내는 요리가 결국 무엇이 될지 궁금하지만 말이야.”

  

"그래, 콜린! 나도 버터 할래, 반창고 안 할 거야. 사실 상처는 반창고를 안 붙였을 때 더 잘 치유되는 것 같아. 반창고는 상처를 더 물러지게도 하더라.”


  콜린과 나는 대화를 마치고 프리젠 테이션을 만들어 갔다. 당시 콜린은 파워 포인트를 서툴게 다뤘었고, 이로 인해 나 또한 발표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참 기뻤다. 그리고 우리가 즉석에서 만든 짧은 발표는 남부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교수님으로부터 에이플러스라는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발표 이후에 콜린과 커피를 마시며 콜린의 더욱더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혜영, 사실 나는 반창고였어. 우리 아들의 장애를 사람들이 아는 것이 싫어서 밖으로 내 보내지도 않고 늘 집에서만 숨어 지낸 게 맞아. 결국 그러면서 남편과 이혼도 하게 된 거고…. 그 반창고 밑에서 내 아들은 숨도 못 쉬고 상처는 더 물러 터지고 있었던 것 같아.”


   콜린을 만난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정작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일궈 나가며 드는 생각은 가정의 아픔을 녹여내는 과정이 그리 녹록지 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아픔과 함께 나를 녹여내는 것보다 반창고로 감춰 버리는 게 훨씬 쉬워서 자꾸만 반창고를 붙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 앞에 버터가 되고 싶다던 콜린을 회상한다. 콜린은 지금도 버터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내고 있을까? 이미 아들과 함께 새로운 요리들을 탄생시킨 건 아닐까? 달무리 진 어두운 겨울밤, 오래도록 만나보지 못한 버터가 되고 싶어 했던 그녀를 회상한다. 

그녀가 참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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