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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월산에서 만난 역사의 숨결

경주 기림사, 5번째 관음성지 순례

by 복작가

7월 말,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5번째 관음성지를 찾았다. 이번 순례의 목적지는 경주 함월산에 자리한 기림사. 신라 시대에 창건된 뒤 원효 스님에 의해 중창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기림사’라는 이름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최초의 사원인 ‘기원정사의 숲’을 의미한다.

절 이름처럼, 기림사는 오랜 세월 숲 속에서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기도와 수행의 터가 되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도 이곳에 잠시 머물렀으며, 해방 전만 해도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다고 전해진다.


마침 하늘에는 솜처럼 부풀어 오른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그 아래 오래된 전각들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단청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바래 있었고, 나무 기둥과 서까래에는 수백 년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겉으로는 고요했지만, 그 속에는 오랜 기도가 켜켜이 쌓여 있는 듯했다.

기림사에는 다섯 개의 약수가 있다 하여 모두 찾아가 마셔 보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단이슬 같다는 감로수,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화정수,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이 난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그리고 까마귀가 쪼아 먹을 정도로 물빛이 맑다는 오탁수. 우연히도 이번 관음성지 순례 순서인 ‘5’와 같은 숫자여서 더 뜻깊게 느껴졌다. 오정수를 마신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였지만, 산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 마음을 읽은 듯 살짝살짝 스쳐 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걷히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풍경이 한층 또렷해졌다. 기림사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과 절, 그리고 나무가 한 장의 수묵화처럼 어우러졌다.

오늘 이곳에서 느낀 것은 단순히 오래된 사찰을 보았다는 기록이 아니다. 세월과 자연, 그리고 나의 마음이 한 호흡으로 맞닿았던, 그 깊고 고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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