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값 외상
그해 겨울은 유난히 매서웠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살갗이 얼얼해지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버스를 기다리며 차가워진 두 손을 비비던 그때, 어디선가 은근한 단내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털모자를 푹 눌러쓴 호떡 아저씨가 하얀 김 속에서 반죽을 뒤집고 있었다. 막 구워진 호떡은 마치 겨울 한가운데 놓인 작은 난로 같았다.
“호떡 하나 주세요.”
손바닥을 금세 뜨겁게 데울 만큼 갓 구워진 호떡을 받아 들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달콤한 설탕과 고소한 반죽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잠시나마 겨울의 찬 기운도, 버스를 기다리던 지루함도 잊힐 만큼 따뜻한 맛이었다.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다 나는 멈칫했다. 익숙해야 할 촉감이 손끝에서 사라져 있었다. 조급하게 주머니와 가방을 뒤졌지만 지갑은 어디에도 없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순전한 당혹감 때문이었다.
“죄송한데… 지갑을 안 가져온 것 같아요. 제가 다음에 꼭—”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아저씨는 빙긋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다음에 오면 되죠. 이런 추운 날엔 따끈하게 먹는 게 먼저예요.”
그 말 한마디가 얼어붙었던 마음을 스르르 녹였다. 그날 나는 호떡 한 장 값의 외상을 남기고, 묘하게 따뜻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그 가판대를 찾아가 외상값을 갚았다. 아저씨는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또다시 환한 미소를 건넸다. 그 순간, 그 미소가 호떡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늘, 오랜만에 그 길을 지나다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 가판대도, 아저씨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겨울의 냄새, 김 서린 풍경, 손난로 같던 호떡의 온기, 그리고 아저씨의 선한 마음만은 여전히 그대로다.
살다 보면 고마운 순간은 금세 흘러가지만, 그때의 온기는 오래도록 마음 한켠을 데우고 있다. 호떡값 외상은 그날 바로 갚았지만,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에 대한 외상은 아직도 내 안에서 조용히 이자를 불려가며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