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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휴먼 Sep 26. 2021

혼자사는데 왜 나는 골드키위를 두 팩씩 사는 걸까


 마트 판매대에 오른 골드키위를 보면 괜히 혀가 아린  같아 침을 삼킨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혹은 무의식으로 매대 앞으로 걸어가  팩을  집어 계산대로 향한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지도 않은데. 집에 돌아와  익은 말랑한 키위를 두어  골라 껍질을 얇게 벗겨내고 먹기 좋게 슬라이스 한다. 그렇게 하루에   정도 먹다 보면 다음날 여지없이 혀끝이 아린다.


딸기나 방울토마토는 한 팩을 살 때도 가격이나 양을 보고 고민하면서도, 더 비싼 골드키위는 두 팩, 하루에 서너 개가 기본단위 었다. 그 결과로 얻은 아린 혓바닥을 스읍하면 살짝 맴도는 피맛은 그 익숙한 맛의 기억을 불렀다.

내가 왜 그렇게 골드키위를 먹게 되었는지.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고 아빠와 지내고 있던 시기에 둘째 고모가 출산을 했다. 아빠는 둘째 아들로 위로 큰고모가 한 명, 아래로 둘째 셋째 고모가 있었다. 아빠는 일하러 나가는 자신을 대신해 막내 고모를 우리 집에서 지내게 하면서 나를 돌보게 했는데, 이때 둘째 고모가 출산 후 아이를 데리고 와 우리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친할머니며 고모들, 아기까지 15평 남짓되는 우리 집을 그들은 산후조리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덕분에 한 여름에도 보일러를 켜는 일과 산모와 갓난아기에게서 얼마나 많은 빨래가 나오는지 잘 알게 되었다. 아빠는 점점 집에 들어오는 날이 줄어들고 있었다.


 골드키위를 처음 본 건 그때였다. 둘째 고모의 아이가 조금씩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할머니랑 고모는 다양한 과일을 사 오곤 했는데 그중에 골드키위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지금으로 치자면 신비 복숭아나 애플망고같이 한 팩에 값이 꽤 나가는 귀한 과일이었다. 이유식을 만들 때 옆에 알짱거려 한 번 맛본 골드키위는 키위 같지 않게 달달해서 맛있었다.


 어느 날 하교 후 남아있던 골드키위를 발견하고는 신나게 몇 개를 까먹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있었으니까. ‘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은 스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내 돌아온 할머니와 고모에게 나는 눈물이 펑펑 날 정도로 혼났다. 내가 열한, 두 살 즈음이었다. ‘왜 네가 그걸 먹냐’는 내용인데 정확히 무슨 말을 들었는지 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표정은 기억한다. 적대감과 짜증, 분노에 가까운 얼굴이 금방이라도 나를 짓눌러 없앨 수 있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가슴이 아린 것, 서럽게 슬픈 마음이 뭔지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이곳은 우리 집인데, 더 이상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 얹혀있는 곳 같았다. 언제든 그들에게 집을 뺏기고 쫓겨날 것 같았다. 아빠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 더 적어졌고 연락도 거의 없었다.


 일련의 일들로 내가 외갓집에 다녀온 후, 외할머니는 이모 삼촌들이 있는 외갓집으로 나를 데려와 키우셨다. 나는 이 시기에 정말 많이 혼나고 또 보듬어지며 자랐는데, 이때 혼나는 일은 그때처럼 공포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골드키위를 아주 아주 잔뜩 먹었다. 지나가는 말로 저걸 못 먹게 했다고 말했던 것 같다. 평소에는 살가운 편이 아니시지만 손녀 먹는 건 끔찍하게 챙기셨던 할아버지는(아기 때 돌봐주시는 동안 이유식을 매끼 새로 해서 주셨단다) 원이 풀릴 때까지 먹어보라고 내가 질려할 때까지 골드키위를 사다 주셨다. 그때 나는 키위를 정말 많이 먹으면 혀가 아리고 피가 난다는 걸 경험해서 알았다. 그리고 한 동안 골드키위는 찾지 않았다.


 잊고 살았던 골드키위의 역사(?)를 떠올려 생각한 날에는 조금 웃고 울면서 키위를 먹었다. 글을 쓰는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전화해서 이야기라도 할 텐데. 이제 골드키위는 욕심내서 먹지도 않고 그렇게 먹고 싶지도 않은걸 보니 그때 원이 다 풀린 것 같다고. 친구들에게 ‘나 예전에 혓바닥에 피날 때까지 키위 먹어봤어~’ 하면서 농담처럼 이야기도 한다고.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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